샬롬,
이 글은 2007년 5월 30일 나누고 싶은 글월에 올린 복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속해 있는 시대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갈 수록
더욱 주님과 우리사이에 맺은 '첫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과 약속을 상기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진리를 다시 한번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히브리서를 묵상하면서 예수님과 사람의 정체성과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과 성경의 진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누구나 알기 쉽게 정리된 언어로 예수님과 사람의 정체성을 밝히고자 하는 소망으로 이글을 쓰게 되었다.
“나에게는 예수님의 구원의 진리가 필요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분이 지으신 땅의 기초위에 서 있을 자격조차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성경에는 예수님이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하늘을 지으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히브리서1장10절)
매일 땅을 밟고 생활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따스한 햇볕과 단비를 맛보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오묘함을 경험하면서 그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을 부정하는 것 그 자체가 큰 죄악임을 당신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가장 심오한 구원의 진리는 단순하다. 사람이 추구하는 끝없는 지식이나 말의 지혜가 필요 없다. 당신이 어떻게든 살기 위하여(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기 때문에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지만 살든지 죽든지 누구든지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한다. 마치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나무는 먹도록 허락되어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고 선악과를 선택하여 죽음을 스스로 택한 것처럼..) 예수님,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분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고 그분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주신 권세가 무엇인지 그 분이 당신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당신이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기 위해서도. 즉 당신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도 꼭 알아야 할 진리이다. 이 모든 진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 당신의 근본을 알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신이 무엇을 추구하든 덫 없는 삶의 미궁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하나님 그 자체가 되시고, 성령님과 하나가 되시는 분이시다. 땅과 하늘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당신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말씀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이시다. 하늘을 지으신 분이시다. ‘오늘’ 이라는 날을 만드신 분이시다. 연대가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아담이 지은 원죄의 문제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죄의 유전을 계속 받아와서 우리에게도 여전이 존재하는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독교의 근간과 뿌리가 되는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1장2절-14절)
아담의 원죄로부터 죽음이라는 존재가 태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의 선택에 대한 죄의 대가로 죽음의 권세가 사람에게 찾아왔다. 그 이후로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하나님과 한 시공간에서 사랑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사랑과 관계의 단절은 사람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감소시켰고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전략시켰다. 또한 죽음의 공포는 일생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짐이 되었고, 근심이 되었으며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불멸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공포는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영원한 세계와 또한 영원한 삶과 죽음의 존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불안일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사람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구원의 한 방법을 계획하셨다. 아담의 죄가 용서받고 죽음의 권세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죽음이라는 고난을 맛보게 하셨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아픔과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 그 아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처절한 죽음을 친히 경험하셔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죽음과 아픔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의 표현이셨다.
마침내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복음에 대한 사역을 하셨으며, 기꺼이 죽음의 고난을 선택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완성되었고 죽음의 권세는 힘을 잃게 되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이후 죽음의 권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은 또한 예수님의 구원의 진리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영생에 대한 약속으로 주어졌고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오늘도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죽음의 불안과 정체성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사람의 능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회복하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만약에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간단하다. 죽으면 그만이니까 굳이 선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매일 먹고 마시고 육신의 정욕만 좇다가 세상을 떠나면 된다. 그리고 교회에 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만일 이세상의 삶이 끝이라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만큼 불쌍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사람은 육체를 지닌 존재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다. 당신의 육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당신의 영혼을 아셨고 당신의 어머니 태속에서 지음을 받기 전부터 당신의 모든 것을 계획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모든 피조물에게 적용되는 진실이다. 유물론과 정신세계를 좇다가 세상을 하직한 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놓쳐버린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특히 당신을 사랑하신다. 한 사람도 무의미한 죽음의 상태에서 영원히 사탄의 노예가 되어 밟을 땅도 없이 영원한 구렁에 빠지길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극히 단순한 구원의 법칙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사람의 수고와 선한 행위, 온갖 종류의 지식의 축적과 자기 수련의 결과로 주어지는 구원이 아닌 “누구든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 아들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회복하기 위하여 부활하셨으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또한 부활한다는 진리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이다. 이 구원의 진리는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구원의 진리를 단순하게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과 은혜에 근거하기 때문에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다. 이 구원의 진리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당신에게도 주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바로 이러한 구원의 진리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며 선택의 주체가 되는 존재인 것이디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을 기계와 같이 다루시지 않는다. 사탄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다루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지옥에 한 사람이라도 더 끌고 들어가기 위하여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악한 영들을 도구로 사용해서 사람을 조정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원하는 마음을 존중하시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신다. 이 사실은 아담의 경우를 봐서도 알 수 있지 않는가? 아담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완전한 환경 속에 거한 첫 번째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이었다. 아담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대화하고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자연과 대화가 가능하였다. 그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나무를 마음대로 양식으로 삼을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또한 단 한가지만 제외하고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그에게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에게 주어진 많은 좋은 선택을 뒤로하고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하지 말라고 한 그 한 가지(선악과를 따먹음)를 선택함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반하는 잘못을 범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모든 사람과 만물이 지금까지도 고통으로 탄식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에게 그토록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야하는 고통이 되었는데 당신은 또 아담과 같은 선택을 하겠는가? 아담의 선택은 우리 인생에서 잠시 나그네와 같이 지내는 세월을 보내는 고통을 제공했지만 예수님의 구원의 법칙에 따라, 자유의지로 우리가 나름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주어진 구원의 선택은 영원한 삶의 문제이다. 그것은 ‘영원한 행복이냐, 영원한 불행이냐’라는 기로를 가르는 단 한번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이다. ‘오늘’이라는 날에 주어진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싶은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목적은 아담이 누렸던 원래의 행복한 에덴동산을 복원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같이 살면서 얼굴과 얼굴을 보면서 나누는 허물없는 사랑에 근거한 교재의 회복, 완전한 신뢰의 관계회복, 그리고 고통의 모든 문제를 초월하고 생명나무가 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에덴동산의 회복에 있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 있던 땅과 하늘은 의복처럼 낡아져 없어져 버리고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기록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다. 바로 그 곳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에 대한 회복의 새로운 장이 될 것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가는 곳이다. 그 밖의 사람은 사탄과 함께 영원한 구렁(볼 못)으로 떨어진다. 즉 밟을 곳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이 사라진다는 상상을 해보라?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암시로 가득하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들이 축복된 것을 선택하길 간절히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종말을 고하지 못하시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참고 오랫동안 기다려 오셨고 오늘도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를 열어놓고 계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기다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말이 온다고 한 게 언젠데 아직도 오지 않고 세상은 그대로 있으니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빈정댄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마냥 기다리신다고 하지 않으신다. 도적같이 예고 없이 세상에 종말이 다가온다. 순식간에 부활이 이루어지고 무덤이, 바다가 죽은 모든 사람들을 토해내어 죽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상에서 영위한 자기 행위와 말에 따라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자,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방법 그리고 구원의 결과를 알았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려고 하는가?
오늘날 구원의 진리를 복잡하게 하고 과대하게 포장하는 것은 진리를 왜곡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임을 알아야한다. 사탄은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없다고 사람을 속인다. 구원이 어떻게 그렇게 단순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한다. 구원의 진리는 인간의 복잡한 이성에 근거한 모든 논리를 초월한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해서는 구원의 진리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지식층의 사람들은 율법의 해부와 더불어 다양한 지식의 추구와 해박한 신학지식을 위하여 성경을 세밀하게 쪼개고 해부하고 연구했다. 그러나 단순한 구원의 진리는 부정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에 못막아 죽여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또 다른 형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나타나서 종교적인 행위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의 선한 행위도 구원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속이고 진리위에 온갖 종류의 잡다한 지식과 율법을 뒤집어씌우고 포장하여 구원의 진리를 변질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맑고 투명한 영혼으로 복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성령님에 의한 깊은 깨달음이다. 구원의 지혜를 얻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성령의 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얻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의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아예 없거나 성령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는데 있다. 우리에게는 진리에 대해 단순하게 밝히고 있는 성경, 즉 정확무오하고 성령님의 감동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이 주어져 있다. 이 성경을 매일 묵상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는 마음만 있다면 단순한 구원의 진리가 바로 당신의 삶에 가장 귀중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성경은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님)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당신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분인가? 당신을 심판하여 지옥 불에 넣을 분이신가? 이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분명히 질문하실 때가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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