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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 / 2017.07.16.
김동진 2019-03-03 추천 0 댓글 0 조회 627
[성경본문] 요한복음17:9-15 개역개정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늘날 자녀를 믿음 안에서 바르게 양육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러분도 느끼실 것이다.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마지막만찬을 나누며 제자들과 함께 드린 마지막 고별기도였다. 십자가 길을 앞에 두고 자신을 위해 간결하게 기도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길게 기도하신다. 주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 칭하면서 제자들에게서 하나님께 감사할 신앙의 조건들을 열거하신다. 첫째,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사람들이라고 한다.(6)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이시며 아버지께서 보내신 줄 믿었다고 기도한다.(8) 이것은 제자들의 신앙 본바탕을 말한다. 이 정도의 신앙이면 주님께서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연약한 그들이었기에 주님은 간절히 하나님아버지께 기도한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제자들이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다.(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이지만 제자들이 다 하나님아버지의 소유임을 인정한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사실도 감사한다. 왜 그러셨을까? 주님은 곧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지만 제자들은 세상에 여전히 남아있어야 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 여러분, 하나 되는 이것이 얼마나 귀한 능력인지 모른다. 세상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 되기가 왜 어려울까? 이미 제자들 사이에 우열을 가리는 일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주님은 여러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그럼에도 제자들 사이에도 좀 더 나아 보이려 했고 높아보려 했다. 그만큼 이러한 우열과 서열이 동물사회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고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한국교회 초기 몇 개가 되지 않던 교단이 불과 100년에 200개가 넘었다. 이유는 하나 되지 못해서다. 우열을 가리며 높아지려 해서이다. 내가 정통하고 내가 옳다는 거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하나 되는 것 정말 어렵다. 그만큼 하나 됨은 주님의 간절한 마음, 간절한 바램이다. 왜냐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왜 하나 되어야 할까? 하나 됨은 핵폭탄과 같은 엄청난 힘을 가지며 뭉치면 못할 일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교회를 떠나라고 하거나 교회 떠나야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부부이지만 평생 내 것만 고집하며 상대방을 용납하지 못하는 분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달라야 한다. 남편을 존중하고 아내를 사랑하여 하나 됨이 있어야 한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는 아니다. 서로 경쟁하는 사이도 아닌데 개와 고양이 사이의 오해는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의사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이다. 개는 좋으면 꼬리를 내리며 꼬리친다. 고양이는 꼬리를 올린다. 기분 나쁘면 고양이꼬리가 내려가고 개는 치켜든다. 그러면 개와 고양이의 습관은 영원한 숙제일까? 그렇지 않다. 개와 고양이를 어릴 때부터 함께 기르면 둘 사이 적대감도 해결되어 잘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한 교회서 수십 신앙생활 하던 성도들이 서로 갈라서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서로 으르렁 거리는 이유는 나를 내세우고 나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모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금방 하나가 된다. 이웃이든 부부이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 하나 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디서든 여러분은 하나 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두 번째 주님은 주님의 기쁨을 제자들이 마음껏 누리게 되길 기도하셨다.(13)“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 이다.” 사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면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다시 어떤 직업을 가져야하는지 염려한 게 아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도 거리가 멀다. 내가 무슨 사업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전공해야 하며 어느 학교로 진학해야하는지, 어느 직장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기도한다면 예수님의 기도는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제자들이 주님 주시는 그 기쁨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 그들 일상에서 매우 중요했다. 여러분 속에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길 축원한다.

 

한 사나이가 자살을 결심했다. 자기가 이렇게 죽으면 주변사람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권총을 들고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는 별난 세계에 도착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모두 기쁨이 충만하여 있었다. 그는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뭔지 한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기쁨입니다.”라고 했다. “아니 어떻게 기뻐할 수 있죠?” 옆에 있던 여자가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대답한다. 한 어린아이에게도 물었다. 그랬더니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때 그는 알았다. 기쁨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며 단순히 말에 있지 않고 그냥 기뻐할 뿐이라는 것을! 참된 기쁨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어느 부잣집 노인이 말을 타고 가는데 앞에서 거지가 흥겹게 춤추고 있다. 노인이 묻는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 그리 기뻐 이렇게 춤추느냐?” “제가 춤추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둘째 나는 절름발이이나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불구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세상에서 날 부러워할 사람 없을 것이나 나 죽으면 하나님 품안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춤을 춥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큰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이 엄청난 비밀이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안에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제가 예수님 알고 난 후 동생들을 전도했고 신학대학 다닐 때 주의 은혜로 부모님이 교회 나가게 되었다. 부모님 모시고 교회 갈 그때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런데 30년 넘게 형의 가족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다. 형수와 형, 조카들을 인도하기 위해 온 형제들이 기도하고 권유하기를 수없이 했다. 최근 몇 개월 전부터 형님내외가 가까운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지난 주 형의 전화를 받았다. 성경이 작아서 안 보이니 큰 글자성경을 하나 사달라는 거다. 성경을 듣는 것도 있었으면 했다. 저의 마음이 얼마나 뭉클 하는지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예수 믿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이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현실에서 그렇게 잘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예수 믿고 기뻐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기뻐하기를 하나님은 잔뜩 기대하신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날 그토록 사랑하심을 알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운 계획을 확실히 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다. 그렇다. 주님주시는 이 기쁨이 내 속에 있다면 이 세상만물 다 가져다 주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 속에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길 축원한다.

 

셋째, 주님은 제자들이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기도하셨다. (14-19) 주님은 어두움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아셨다. 그 어두움 앞에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도 잘 아셨다. 그래서 특별히 악한 자에게서 제자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신다.(15) 주님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제자들도 악한 세상에서 살고는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으니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 기도하셨다.(16,17) 이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거룩하게 구별되어야하는 이유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에 있었다. 18절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 신앙은 활기를 얻게 된다. 여러분도 존귀한 분들임을 믿는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수년 동안 영국의회에 노예제도폐지를 건의했다. 어떤 성과도 보이지 않아 낙심하여 막 그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존 웨슬리는 임종하는 침대에 누워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편지를 썼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 일에 사용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다면 너는 벌써 사람들과 악마들에 의해 지쳤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데 누가 너를 해칠 수 있겠는가? 하나님보다 쎈 자가 누군가? 오, 선한 일을 하면서 낙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그분의 힘과 능력으로 계속 싸워라. 영국의 노예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웨슬리는 6일 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윌버포스는 45년 동안 더 싸운 후 그가 죽기 3일 전에 노예제도가 폐지되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친구의 격려가 소중하다. 믿음 안에서의 형제자매를 위한 기도는 더욱 중요하다. 요17:20에,“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라고 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을 통해 믿는 사람들, 곧 우리를 위해서도 이미 2천 년 전에 기도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지만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성도의 삶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하나 되고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하며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며 힘있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기 바란다. 기도하는 여러분의 자녀를 주께서 반드시 보호하신다.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와 가정이 하나 되길 앙망하자. 우리 위해 주님 기도하셨으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대신하여 간구하시는 성령의 아름다운 역사가 여러분 속에 풍성하길 축원한다. 여러분은 존귀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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