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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왕 예수 / 2017.8.13.
김동진 2019-03-03 추천 0 댓글 0 조회 798
[성경본문] 요한복음18:33-38 개역개정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있다. 톨킨 원작의 이 작품은 미국 백 년 동안 영향력 있는 책 백 권을 선정하는 가운데 네 번째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이 세상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할 수 있는 반지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악마와 인간, 그리고 요정들의 처절한 싸움을 그린다. 그런데 이 반지를 손에 넣은 자는 절대 권력은 행세하지만 결국 누구나 탐욕과 욕망으로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옛날 왕과 같은 절대 권력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대변한다. 오늘날 왕권을 행세하는 나라들은 많지 않다. 아직까지 영국황실은 대영제국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 저희가 뉴질랜드에 있었을 때다. 영국여왕이 방문하여 여왕의 만찬에 참석했던 한 키위사관은 여왕을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아마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수령 동지를 바로 앞에서 만났다면 대단한 영예로 생각할 것이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분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을 입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환영했던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가 로마의 통치로부터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왕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죠. 예수님 주변에 칼이라도 찬 병사들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환영했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불과 며칠 되지 못하여 그들이 왕이라고 생각했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왜 이런 변덕이 생겼을까?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손에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진 것은 새벽녘이었다. 아니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새벽부터 야단일까? 성가신 요청에 빌라도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예수를 맞는다. 유대인들은 그를 못된 행악자라 하는데 빌라도가 보니 도저히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반문한다. “너의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냐?” 빌라도는 대답한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도대체 네가 무엇을 잘못하였느냐?” 이게 빌라도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내용이다. 사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몰린 예수를 풀어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오히려 강도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의 아우성소리를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여러 번 갈등한다. 아무 죄 없는 예수를 죄인으로 판결해야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세 번씩이나 말한다.(18:38,19:4,6,) 그러면서 “보라 너희 왕이지 않느냐!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19:14-15) 했다. 그런 줄다리기 후에 떠밀려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지만 여전히 죄 패에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쓰게 했다.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하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써야하지 않겠소?” 라고 했더니 그는 “나의 쓸 것을 썼다.” 답변한다. 무슨 말일까?

 

첫째, 예수님은 참 유대인의 왕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사람마다 예수 보는 시각이 다르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시기의 대상이었을 것이고 유대인들은 기적이나 떡고물이라도 바랐을 것이며 제자들이라 해도 기대치는 달랐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유대인의 왕으로 입성하신 분이긴 하지만 나귀새끼 타신 모습이 너무 초라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부은 정신 나간 여인을 보면서 심하게 꾸짖지도 아니하시고 오히려 두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왔던 메시야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빌라도는 자신을 고소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아무런 저항도 안 하는 예수가 오히려 두려웠다. 그가 갈릴리를 사방 다니며 기적을 행하고 병자들을 고친다는 소문을 총독으로서 듣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총독의 줄기찬 질문에 아무 대답도 않는 예수. 다만 유대인의 왕이심에 대한 몇 마디 들었을 뿐이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말에 상당히 두려웠다. ‘뭐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래서 그는 다그쳤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왔소?아무 대답이 없다.빨리 말하시오. 내가 당신을 풀어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않소?” 이때 주님 입을 여신다. “위에서 권세를 주시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도 없었을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훨씬 권위 있고 더 높은 분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현실이 그를 십자가로 몬 것뿐이다. 그래서 결국 <유대인의 왕 예수>라 썬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등장하셨을 때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었지만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고백했다. 하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책임을 맡은 로마군대 백부장도 예수의 죽으심을 목격하고서 고백했던 말이 바로 “이분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메이스필드<대화시>라는 작품 속에 빌라도의 아내는 로마 백부장과 대화 나눈다. 예수라는 사람이 한 말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일 사람이 어떤 것을 믿고 그것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믿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백부장은 대답한다. “그는 죽었나요? 빌라도의 아내가 다시 묻자 아뇨. 죽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금 어디에 있죠?” “로마인이든 유대인이든 아무도 그가 말한 진리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에서 그는 자유롭게 살아 있습니다. 부인.

 

그렇다. 수제자 베드로와 의심 많았던 도마처럼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분은 여전히 살아계신다. 오늘 우리 모두가 드려야하는 신앙고백이 이것이다. 오늘날까지 교회는 이러한 고백을 드리는 사람들 위에 세워졌다. 사람마다 믿음의 정도가 다르다. 그 깊이가 다르다. 나의 삶에 주께서 얼마나 많이 개입하시는지가 개인 신앙의 척도이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은 항상 살아계시며 나의 주 나의 왕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심을 고백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나의 고백을 원하신다. 이 시간 주님께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기를 축원한다.

 

둘째 진리의 왕이시다.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는 질문에 예수님은 당당히 “내가 왕이다. 하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함이다.” 하셨다. 빌라도는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를 심문하는 가운데 이렇게 깊은 대화는 사도요한만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빌라도가 더 이상 예수님의 대답을 듣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는 재촉하는 유대교지도자들과 관정 밖에서 웅성거리는 유대인들을 의식했다. 결국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참된 진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음이 그에게는 엄청난 손실이요 실패였다. 그의 인생을 망하게 한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오늘 수많은 인생들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어젯밤 한 채널에서 만신을 섬기는 무당 신어머니와 제자의 일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왕 무당이 채널을 사서 보내는 방송이었다. 세상에 거짓이 판치고 있다. 이단들이 득세하고 있어도 청년들이 분별하지 못해 빠져든다. 신천지는 거짓말을 묘략이라 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속아간다. 그들은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게 아니라 믿는 성도를 낚아가면서 추수라고 한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구원의 확신가지고 깨어있는 믿음생활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한동안 내 마음대로 살지만 어느 순간 이슬처럼 사라지는 인생이다. 죽음 이후를 모르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영원한 세계는 의심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기분 좋은 날도 있지만 마음에 갈등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때때로 죄악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 때가 있다. 온갖 염려와 큰 풍파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다.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도 있다. 이렇게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참 구원의 진리가 되시며 십자가로 우리 구원을 성취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며 진리의 왕이 되신다. 왕은 힘으로 통치하는 분이다. 주님이 나를 온전히 다스린다면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분이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며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어드리기 바란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며 나는 종입니다. 주님은 나의 왕이시기에 나는 주님의 신하이며 백성일 뿐입니다.” 고백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결단해야 한다. 듣기만 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주전 300년경 알렉산더대왕이 세계를 정복하던 때였다. 알렉산더는 적은 군대로 큰 성을 정복하려고 나섰다. 그 성 밖에서 성주를 만나겠다고 소리쳤다. 성주가 나타나자 “성주는 당장 항복하시오.” 알렉산더의 말에 성주는 비웃었다. “내가 왜 항복하지요? 우리 군대가 훨씬 많은데.” 알렉산더는 군사들을 한 줄로 세우고 30m 넘는 절벽으로 행진을 명령했다. 그의 군인들은 한 사람씩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오금이 저리는 충격이었다. 알렉산더왕은 열 사람이 떨어져 죽은 뒤 행진을 멈추게 하고 돌아오게 했다. 그 성주와 군인들은 즉시 항복했다. 왕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도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을 이길 군대는 없다.

 

주께서 여러분의 왕이시면 주께 항복하는 삶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알렉산더의 군인처럼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복종한다면 여러분의 삶에 어마어마한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복종은 완전히 엎드린다는 말이다. 이유를 묻지 않고 내 생각을 덧붙이지 않는다. 내 소유 더 이상 내 것 아니다. 목숨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을 주님께 맡기며 신뢰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행복한 인생이 없다. 유대인의 왕 예수를 여러분의 참된 왕으로 모시며 진리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한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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