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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황규홍 2019-12-10 추천 0 댓글 0 조회 418
[성경본문] 요한복음3:16 개역개정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요한복음13:34-35 개역개정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9.12.08. [주일성결회;푸른초장영문]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요한복음 3:16, 13:34-35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푸른초장 모든 가족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오심이 행복한 사건이 되시고, 이 절기가 가슴 설레는 기다림의 절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1129, 광화문광장에서 올해 자선냄비시종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선냄비모금이 시작된 것은 2일 뒤인 지난 주 월요일(122)부터였습니다본영은 충정로역에서 모금을 하고 있는데, 엊그제 금요일 오후 6-8시가 저와 마진영 사관의 첫 번째 봉사 시간이었습니다. 지하철역 안이라서 춥지는 않은데, 종도 못 치게 하고, 메가폰은커녕 큰 소리도 못내게 하니 그냥 눈인사만하고 서있어야 하니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이제는 자선냄비를 알아보고 모금에도 참여하시고, 수고한다고 격려하시는 분들이 계셨다는 겁니다. 그냥 지나가시는 많은 분들도 겸연쩍게 시선을 피하시는 것을 보며 아직 그 분들 안에 사랑을 불씨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마음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두 번 있었는데요, 한번은 자선냄비를 처음 접하는 외국 여행자들이었고, 한번은 70대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자선냄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수고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던 경우입니다. “이 정부가 다 퍼다 북한 줄 텐데 뭐하려보 이 추운 날 고생하느냐?”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모금 중이기도 했고, 또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분과 정치적인 논쟁하는 것이 덕스럽지도 못할 것 같고, 또 일부 자선냄비 모금액은 정부를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주민의 복지를 위해 쓰여지기도 하고 해서 그냥 인사로 보내드렸습니다.

 

구세군에서 자선냄비를 왜 하고 있을까요? 구세군선교선언문 Mission Statement에는 모든 구세군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도움을 전하는 것을 목표(目標)로 하고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자선냄비도 최종 목표는 사회복지서비스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그 실행 방안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차별없이 도움을 전하는 사랑의 표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선냄비 이야기로 서두를 열었습니다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核心)은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이 진리의 잣대라고 생각하시나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진리의 잣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46절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떠나서는 그 누구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기독교의 핵심(核心)이고, 그분만이 온전한 진리(眞理)가 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핵심이고 진리가 되신다.’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또 처음 예배에 참석한 새신자에게 똑같은 말을 전했을 때, 과연 그 분들도 우리와 똑같이 이러한 사실을 시인할 수 있겠습니까2019년 전, 외양간 한쪽 구석에서 초라하게 태어난 목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라고 말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해석(解釋)의 문제가 있습니다. 성서 기록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해석하여 성서의 각 책들을 기록하였습니다또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그 해석을 위해 신학적 작업을 해왔습니다. 오늘에도 많은 강단에선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해석되어지고 있습니다. 또 이를 위해 수많은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없는 도움을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개인적인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읽고, QT를 하고,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기도하는 중요한 이유도 그 해석의 문제에 있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처럼 지나간 개인 또는 공동체의 신앙의 역사는 해석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해석의 과제는 앞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가져야 할 영원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신앙의 과제를 위해 얼마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2019번째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 절기를 보내면서 예수님과 그 오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계십니까혹시 지난 해 해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베끼고 계시나요? 아님 부모님의 해석에 기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모범답안을 암송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사람마다 삶의 자리가 다릅니다. 아무리 친근한 부모자식지간이라고 해도 삶의 자리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마진영 사관을 사랑한다고 해도 삶의 자리가 같을 수 없습니다. 또 지난해 12월의 내 삶의 자리와 지금의 삶의 자리가 같을 수 없습니다.  삶의 자리가 다르면 그 다른 자리에서 만나고 계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다르고, 예수님과의 만남의 해석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12시에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부탁드리는 이유도, 매일 1절이라도 좋으니 말씀을 보셔야 한다고 권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특별히 12월은 이 땅에 낮고 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달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 절기를 보내시면서 과연 우리는 신앙의 핵심이고 진리라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 시간에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해석과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해석을 살펴봄으로 작은 예수로서 나는 어떻게 내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해석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기 해석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분은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것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범죄하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멋지게 당신을 해석해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해석해 보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던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만물의 창조자, 통치자, 보존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셨겠습니까? 꼭 당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입고 오시는 길만이 그 해석의 방법이었겠습니까? 말씀만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말씀 한마디면 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굳이 성육신의 방법이 아니었을지라도 하나님께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찾아오심으로 그 모진 일을 당하였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 그 사랑에 근거한 해석의 방법이었습니다. 이처럼 그 사랑을 해석하기 위해 더 큰사랑을 행하셨다는 데 그 진가(眞價)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를 해석해 보이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사랑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해석은 어떠하셨는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본체(本體)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데, 갈릴리 목수의 아들로 베들레헴 마구간의 초라한 출생을 선택하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로마 황제 아니라 그 이상의 자리도 주관하시던 당신이 이 땅에 오신다면 로마 황제나 그 이상의 자리로 오실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그런 자리보다는 당신이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는 낮은 자의 자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그 분의 가르침도 먼저 찾아가 세상을 섬기는 삶, 낮아지는 삶, 베푸는 삶을 통해서 그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해석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고난과 죽으심을 해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의 핵심이며 진리의 척도라고 고백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해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과연 성삼위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提示)하고 있습니다내가 새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불신자를 만났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또 무엇을 통하여 우리가 가진 구원의 기쁨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기표현 방법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셨던 자신을 표현 방법입니다. 그것이 불신자, 새신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아 무엇인가 다르다라는 청량감과 함께 우리의 모임을 사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모임에 참석하여 예배와 성경공부 등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발견할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된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의 세례(洗禮)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 신앙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분만이 진리의 척도가 되신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사랑하고 계십니까? 당장 새로운 영혼이 들어왔을 때 그에게 전해질만큼의 사랑의 따뜻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사랑으로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랑의 계절입니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해석을 통해서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습니다흔히 신앙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또 사랑을 성결의 완성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건전하게 사랑하는 - 그래서 축복받기에 합당한 존재로 자신을 만드는 - 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고 책임입니다.

 

예전에 어느 교계의 원로 한 분이 그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12월에 실시되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온 교회의 체면(體面)을 살린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교회의 체면이 무엇을 통해서 세워집니까? 잘 세워진 건물, 많은 교인, 막강한 재정을 통해 세워집니까? 교회의 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전해질 때만 세워집니다.

 

하비콕스라는 신학자는 그의 저서 세속도시에서 봉사(奉仕)는 사회를 치료한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봉사(奉仕)라는 사랑의 행위(行爲)를 통해서 사회를 치유(治癒)하여, 나아가 사회성결(社會聖潔), 사회구원(社會救援)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랑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원을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육신(成肉身)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가장 잘 표현되었습니다.

 

이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재해석(再解釋)되고 세상 가운데 재현(再現)될 수 있었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어떻게 마구간의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해석하시겠습니까? 특별히 저 같이 무식한데다 고집까지 센 사람을 만나신다면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아니 자기 자신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습니까?

 

사랑하십시오. 입술이 아닌 가슴으로 사랑하십시오. 머리가 아닌 손과 발로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특별히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끝가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나의 가족, 친구, 이웃, 친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십시오. 가장 큰 사랑을 전하시는 길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대강절기의 기다림 속에, 성탄절의 만남 가운데 사랑의 결단과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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