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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신앙
황규홍 2020-01-06 추천 0 댓글 0 조회 381
[성경본문] 신명기1:19-33 개역개정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9. 12. 29. (주일성결회 ; 푸른초장영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신앙

 

 

 

신명기 119-33

 

지난 6, ‘까를로 로벨리라는 이탈리아 물리학자가 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물리학의 눈으로 연구한 우주의 시간은 우리가 보통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흐르지 않는다는 주장합니다어려운 과학책으로는 유래없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13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제목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한해를 보내고 송년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우리들로서는 쉽게 동의(同義)할 수는 없지만, 한 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가는 제목입니다안타깝지만, 이 책의 주장과는 다르게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물 흐르듯이, 어떤 분들은 쏜살같이 시간이 흐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시간이 흐르십니까? 시냇물처럼 예쁘게 흘려보낸 2019년 이셨나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려보낸 2019년 이셨나요? 폭포수처럼 웅장하지만 아파서 온 몸으로 감당하셨던 2019년 이셨나요? 쏜살처럼 빠르게 하지만 정신없이 날려버린 2019년이셨나요?

 

이 시간에는 2019년 마지막 송년주일예배로 본문의 말씀을 통해 지나간 2019년을 회고하고 정리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새롭게 허락하실 2020년은 더 큰 은혜를 기대하고 예비하시기는 시간되시길 축원합니다때로 시냇물처럼 예쁜 은혜를, 강물같이 도도한 은혜를, 폭포수처럼 웅장한 은혜를, 쏜살처럼 빠르고 강한 은혜를 돌아보시고, 기대하고 예비하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시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내용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파송 된 열 두 명의 정탐꾼 이야기입니다본문은 어떤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도하는 기사 형식의 글이 아닙니다. 본문은 모세의 설교이며, 모세의 연설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지내온 삶의 자취를 회고하는 형식의 글입니다.

 

호렙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회고조(回顧調)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래 본문이 회상(回想)하는 정탐꾼 사건은 민수기 13-14장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신명기에서는 민수기에서 전하는 모든 사건들을 순서대로 자세히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본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는 이스라엘이 반드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건들만을 요점적으로 회고할 뿐입니다. 즉 신명기 본문은 어떤 요점만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요점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음을 전하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호렙을 떠나 아모리 사람의 산지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이제껏 보아온 것보다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마침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1:19)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명령에 순종하여 호렙산을 떠나 이제껏 보아온 것보다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사람의 산지로 가는 길을 따라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본문이 광야를 설명함에 있어서 크고 두려운 광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을 떠나 가나안으로 진군하는 이스라엘에게 크고 두려운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겠습니까? 게다가 가데스 바네아라는 가나안 남단에 이르는 길로 아모리 족속이 버티고 있는 산지 길로 가도록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기서 크고 우렁찬 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바로 모세가 전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아모리 사람의 산지에 이르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이 땅을 선물로 두셨습니다. 어서 가서 그 땅을 차지하십시오. 하나님 여러분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 땅을 여러분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1:20-21)

 

광야와 산지 길로 들어선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전달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이 땅을 선물로 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땅을 이스라엘 앞에 놓아두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주시겠다는 예정이나 약속이 아니라 이미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스라엘이 할 일은 두려움과 근심이 없이 올라가서 얻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입니다. 모세가 대언하는 말에 백성들이 거꾸로 반응하고 나섭니다. 먼저 정탐꾼을 보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몇 사람을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게 한 다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지, 우리가 차지할 성읍은 어떤 곳이 있는지 보고하게 합시다.”라고 말합니다. (1:22)

 

이어지는 성경 이야기는 그 주장을 모세가 받아들여 나는 그 의견을 좋게 여겨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았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탐꾼을 보내자는 발상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땅을 주셨으니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고 올라가 얻어야 함에도 그들은 두려움과 주저함으로 정탐꾼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불순종은 그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가나안 땅으로 파견되었던 정탐꾼이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그들은 길을 떠나 산지로 올라가서,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땅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의 열매를 가지고 우리에게 돌아와서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라고 전합니다.(1:24-25)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보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또다시 불신의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모리 사람 가운데 던져 버리시려고 이집트에서 끌어 내셨다. 우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신 게 틀림없어! 우리가 어떻게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거야. 우리 형제들도 그 땅의 백성들도 우리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 그들의 성읍들은 크고, 그들의 요새들은 엄청나게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거기서 아낙 자손까지 보았다.”라고 두려워합니다. (1:26-28)

 

그러자, 모세가 이들에게 또 다시 권면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여러분을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해 이집트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광야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여러분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안고 가듯이,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곳에 이를 때까지 줄곧 여러분을 안고 다니신 것도 보았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1:29-31)

 

모세의 말은 자못 구체적입니다.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광야에서 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이을 안고 가는 것처럼 너희를 안고 이곳까지 오셨다.’라고 소리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 이르렀으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군요.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여정 가운데 여러분보다 앞서 가시며 진칠 곳을 정찰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여러분들이 가야할 길을 보여주시는데도 말입니다.” (1:32-33)

 

하지만 끝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40여 년간 광야를 유랑하게 된 것은 이들의 반역에 대한 응분의 결과였습니다. 정탐꾼이 본 아낙 자손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나약하다는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을 믿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외부에 있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내부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야기입니다. 그들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부끄러운 자기들의 과거를 못내 묻어 두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입니다잘된 것은 떠들며 자랑하지만 잘못된 것은 들춰내서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본문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실패한 과거 잘못된 어제 일을 끄집어내어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본문은 실패한 과거를 들춰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억한다.’는 것은 성서적 신앙의 한 요소입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재서술(再敍述)” “다시이야기하기”(story-retelling)라고 합니다. 재서술(再敍述)” 다시이야기하기” (story-retelling)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잊어서는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과거 조상들의 삶을 다시 들려줌으로 지금의 독자들에게 너희는 누구이고’(who you are), ‘너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how you live)를 확인하도록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재서술의 목적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려는데 있지 않습니다. 재서술에는 이스라엘로 부름받은 사람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how Israel is to live in the present)를 가르쳐 주려는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시 들음으로써 오늘을 사는 신앙인의 자세를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신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다시-이야기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재서술, 다시-이야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 가운데 재현(再現)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신앙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또 하나, 우리 자신의 신앙의 이력을 재서술, 다시-이야기해야만 합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 신앙의 과거를 재서술함으로 현재의 신앙의 모습을 바로 세워야만 합니다. 웨슬리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기까지 날마다의 삶 가운데 성화의 훈련, 경건의 훈련의 과정을 쌓아가야만 하겠습니다.

 

푸른초장 군우 여러분,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정리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내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이력을 재서술하는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서 재현되는 역사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오늘까지 딱 3일 남았습니다. 2019년을 정리하시면서 함께 하셨던, 그리고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축복으로 이미 허락하신 2020년이라는 영적 가나안을 향해 두려움과 의심의 정탐꾼을 앞세우시 마시고 담대하게 나아가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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