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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도 되는 것, 먹어서 안 되는 것
황규홍 2020-02-07 추천 0 댓글 0 조회 378
[성경본문] 창세기3:1-7 개역개정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0.01.12. [주일성결회 ; 푸른초장영문]

 

 

 

먹어도 되는 것, 먹어서 안 되는 것

 

 

 

창세기 3:1-7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7일은 안식일로 선포하시고 창조하신 모든 것들 특별히 인간과 함께 동산을 거니시면서 교제하셨습니다. 특별히 아담과 하와는 말씀으로만 창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생김새와 매무새를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비롯한 모든 창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그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벌칙(罰則)까지 부가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것이 아니라도 특별히 부족할 것이 없는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상과 하나님의 동산의 관리자로,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며 대화하는 존재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수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불청객 사탄이 침투해 온 겁니다. 사탄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시기하여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피조물인 뱀을 통해 사람을 유혹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유혹에 넘어간 인간의 타락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관리하라고 맡겨주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동산지기로 파견된 사람이었습니다. 에덴은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꾸미신 정원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낙원을 선물받은 득낙원(得樂園)의 이야기가 창세기 2장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은 하나님이 주신 낙원을 사람이 잃어버리는 실낙원(失樂園)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은 득낙원(得樂園)의 축복을 실낙원(失樂園)의 비극(悲劇)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1-7 본문은 바로 거기에 대해 대답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경 원본에는 장절 구분이 없습니다.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장절 구분의 시도가 계속되다가 현재 우리가 쓰는 장절로 확정된 것은 1560년 발행된 제네바성경부터입니다. 본래 형식대로 3:1상반절 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했다.”2장 마지막절인 25남자와 그의 아내는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와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의미있는 교훈이 발견됩니다본문 3장 첫 구절인 1절의 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더라.”라는 말씀에서 "간교하더라.”의 히브리어 원어는 아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2장 마지막절인 25절의 벌거벗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아룸임입니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아재개그, 말장난 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단순한 말장난만은 아닙니다. 발음이 아주 비슷한 단어로 인간의 벌거벗음에 뱀의 간교함을 표현했음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게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뱀이 다가갔음을 상징합니다. 유혹이 누가 봐도 이거 유혹이다 알아차릴게 나타나면 이기기 참 쉬울 텐데요, 안타깝게도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이것이 유혹인지 아닌지 모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 아룸”(간교)한 뱀의 모습으로 아룸임”(벌거벗고 있는)한 하와에게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영분별의 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아룸임한 삶을 이용하여 들이대는 사탄의 아룸한 간계를 물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부터 뱀과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들여다보겠습니다.(3:1-5). 이 대화는 유혹을 목적으로 뱀과 여자가 벌이는 치열한 논쟁입니다. 이 대화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놓고 뱀이 묻고, 여자가 대답합니다. 먼저, 뱀이 하나님의 지시사항에 관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게 정말이냐?”(3:1). 뱀의 말은 정말 간교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그게 정말이냐?"고 따져 묻습니다. 이에 여자가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아,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돼. 하니만 하나님께서는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그러면 너희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3:2-3)

 

여인의 대답에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여인의 말을 본래 하나님의 말씀(2:16-17)과 비교해 보면 여인은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라고 하셨다고 과장시켜 대꾸하고 있습니다. 뱀이 던진 그게 정말이냐?”는 과장된 질문에 여인이 먹는 건 고사하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과장되게 대답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함정(陷穽)이었습니다. 이제 뱀과 여자의 논쟁은 중심점을 향해 빠르게 이동합니다. 뱀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너희는 결코 죽지 않아. 하나님이 너희가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간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에서 악까지 모든 실상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거야.” (3:4-5).

 

뱀은 하나님의 명령이 절대적 진리라는 것을 부정합니다. "결코 죽지 아니리라.”라고 말합니다. 뱀은 죽지 아니하리라고 여자의 말을 부정한 후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을 내린 동기를 나름대로 추측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서 그렇게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염려했다는 것입니다. 뱀의 유혹 속에 담긴 내용은 에덴동산의 이 부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는 초대장을 주는 것입니다. 뱀의 유혹은 지켜야 할 명령 아래 살지 말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결정할 능력 아래 살라는 것입니다. 뱀은 인간에게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위를 인간들도 가질 수 있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유혹의 정체가 있습니다. 여기에 타락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실낙원(失樂園)의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를 고발하는 이야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당면했던 유혹이라는 문제는 사실 오늘 우리 인간들이 벌리고 있는 죄악의 현장을 고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가인이 왜 하나님께 분을 품고 애매한 아벨을 죽였나요? 제사를 받으시고 말고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다. 인간의 기준에서 공평하게 하시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에 내 생각을 강요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바벨탑이 왜 쌓여졌습니까? 광야에서 황금 송아지가 왜 만들어 졌습니까? 이스라엘이 왜 왕을 세우려고 했습니까?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교황이 왜 면죄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문제, 정통 교단과 교회의 세속화와 교권화의 문제, 심지어는 진화론, 유물론, 막시즘같은 무신론, 또 다른 양상의 범신론이 왜 나타났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하고, 또 될 수 있다는 끝도 없는 유혹에 빠진 인생들의 범죄와 타락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저와 여러분들도 이러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날마다 기도로, 말씀으로 나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아, 혹시 약한 부분이 발견되면 그 분분을 대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저 바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 유혹 앞에 벌거벗을 채로 노출되어 있는 영적 실존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합하여 장사됨으로 새로이 부활하는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유혹의 결과는 매우 빠르게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습니다. 뱀의 유혹에 설득되자마자 여자는 그 나무가 매우 좋고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순식간에 믿게 됩니다.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스럽게 보였고, 그 열매를 먹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 같았다.”라고 말합니다. (3:6) 본문이 전하고 있는 포인트는 지혜에 있지 않고, 범죄(犯罪)가 주는 쾌락에 있습니다. 죄짓는 일은 그것이 순간의 쾌락(快樂)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죄짓는 일에는 항상 공범(共犯)이 있기 마련입니다. 여자는 그 나무의 실과를 먹고, 이어서 남편에게 거리낌 없이 주고 맙니다.(3:6) 유혹당한 자가 유혹자가 된 것입니다. 남자도 그것을 곧장 먹고 맙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모든 것을 180도로 돌변하고 맙니다. 그것을 본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실상을 보게 되었다.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서 임시로 몸을 가렸다.” (3:7). 이 구절을 2:25과 대조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남자와 그의 아내는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2:25). 타락하기 전에는 벌거벗었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끄럽지 않았었습니다그들은 본래 내 뼈 중의 뼈, 내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할 정도로 친밀(親密)했던 사이었습니다.(2:23) ‘나와 다른 네가 아니라 우리라는 하나의 몸, 하나의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타락 이후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수치(羞恥)라고 여기게 됩니다. 친밀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치마로 앞을 가리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조화가 깨진 것입니다두 사람 사이를 무화과나무의 치마로 가로막아야만 서로 마주 설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런 깨진 인간관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것을 비극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벌어진 틈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숨으려고 하는 인생으로 몰아가게 된 것입니다(3:3).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가장 행복한 존재가 하나님을 피해 숨는 불행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 이야기는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의 경계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히 버리시지 않으셨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찾아오셨음을 이야기합니다.(3:9).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서 숨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그 인간을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이 이야기는 하나님은 인간을 정죄(定罪)하시지만, 그 정죄 속에 인간을 위해 배려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5). 이것은 유혹과 악을 정복하게 되리라는 격려이고 약속입니다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와 유혹을 극복하고 하나님과의 일그러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드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죄와 유혹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6:20에는 그러면 어느새 평화의 하나님께서 두 발로 사탄을 땅바닥에 짓이겨 주실 것입니다. 늘 예수께서 주시는 최고의 것을 누리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아담에게 계속해서 자기 아내를 하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3:20) 하와란 이름은 생명(生命)”,“살아있다.”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벌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으셨음을 이야기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3:21). 하나님은 인간을 정죄하셨지만 결코 저주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이것이 곧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이야기로 발전합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전개된 하나님의 구속 역사로 발전합니다.

 

푸른초장 군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유혹과 타락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결국, 이야기는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온갖 죄악과 범죄를 고발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죄(), 무엇이 타락(墮落)인지를,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줍니다하지만 이 이야기가 씁쓸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구원의 문제를 푸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이야기를 찾으시고, 그 이야기를 바로 나의 이야기, 나에게 임하신 구원의 이야기로 고백하시는 크신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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