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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물, 아벨의 드림
황규홍 2020-02-07 추천 0 댓글 0 조회 592
[성경본문] 창세기4:3-7 개역개정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0.01.19. [주일성결회;푸른초장영문]

 

 

 

가인의 제물, 아벨의 드림

 

 

 

4:3-7

 

요즈음 텔레비전에 연예인인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참 유전자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특별히 이 집 가족들을 보면 그렇지 않으세요? 아나운서 도경환, 가수 장윤정씨 부부와 아들 연우, 딸 하영이입니다. 영락없는 붕어빵 가족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면 가인과 아벨은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이들이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성품을 지닐 수 있었겠습니까? 문제의 발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4:3-5을 보시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4:3-5


그렇게 세월이 지나 가인과 아벨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가인은 농부(農夫)가 되었고, 아벨은 목자(牧者)가 되었습니다. 에덴에서 추방당하고, 어린아이가 어른이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성경을 이야기합니다가인은 땅의 열매 가운데서 고른 것을 주님께 제물로드렸습니다. 아벨은 그의 양 가운데 첫 새끼와 그 기름을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때 사건이 터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이 드린 것은 제물은 반기셨는데 가인이 제물로 드린 제물은 반기시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성경이 이에 대해서 정확한 언급을 하지 않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합니다. ((가설을 말하는 이유 설명))

 

흔히 아벨의 제물과 가인의 제물의 차이가 원인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아벨의 제물이 희생적(犧牲的)이어서 그렇다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의 배경으로 가나안 농경 문명과 유목 신앙의 문화적 충돌, 갈등이 그런 식으로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합니다이 주장의 진위(眞僞)떠나서, 분명한 것은 문화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가지만, 그 문화에 학습되어지고, 영향을 받는 존재 또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해 있는 가정, 교회, 직장, 사회의 문화를 그리스도의 문화로 변혁해 가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주장을 통해 생각하게 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제물보다는 제사 드리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아벨은 가인보다 믿음으로 더 나은 제물을 드렸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11:4실제로 성경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믿음을 잃고 형식화된 종교인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주장은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이 형식화/제도화되는 것을 조심하고 늘 믿음의 예배, 믿음의 삶을 드려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지만 창세기 본문은 이런저런 추정에 대해 거리를 둡니다. 아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반기시지 않았다고만 전합니다그 일로 가인이 화()를 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고 분()해합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얼굴빛을 달리하며 골()을 부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속내를 풀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4:6-7

 

가인의 마음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질책은 심각합니다. 가인이 땅의 소산을 제물로 삼아서 하나님께 드린 행위를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책망하십니다. “참으로 네가 바르게 했다면 얼굴을 들어라. 그러나 네가 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의 문에 죄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하십니다.4:7하나님의 꾸짖음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땅의 열매를 제물로 바친 행동이 어째서 올바르지 못한 일입니까? 레위기의 소제(素祭, grain offering, -민하)”는 땅에서 얻은 곡물로 드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제물이 곡물이나 양이냐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반기지 않으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인이 땅에서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하나님께 바쳤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아벨의 드림은 양의 첫 새끼였습니다. “이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인의 경우에는 첫 새끼, 맏배에 상응하는 첫 열매, 맏물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비교; 26:2)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드림을 제물로 받으셨습니다.4:4b가인이 제물이라고 드린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제물이라고 한 것을 가리켜 도리어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인의 신앙은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사람 중심의 종교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제물의 만듬새를 자기가 정한 뒤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기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있었습니다관상기도로 유명한 독일의 로마 가톨릭 사상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우리가 우리의 뜻을 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된다.”라고 말한 것도, 어쩌면 이런 이치에 닿아 있는지 모릅니다.

 

반면 아벨의 신앙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자기의 드림이 하나님 반기시는 제물인지를 하나님이 판단하시도록 하였습니다. 자기의 드림을 제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아벨을 보시고 아벨의 드림을 제물로 받아주셨습니다.  가인(קַיִן 카인)이란 이름이 철기를 다루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아벨(הֶבֶל 헤벨)이란 이름은 "허망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려면 철기를 다루는 일문명을 일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인의 신앙과 결국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말하는 아벨의 신앙의 접촉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신앙을 반기시겠습니까?

 

푸른초장 가족 여러분, 문제는 우선순위(優先順位)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향한 뱀의 유혹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정해주신 대로 하지 말고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규칙을 네가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우선의 삶을 살지 말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담과 하와의, 또 오늘 가인의 삶이 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한 주간을 시작하는 첫 날인 일요일을 주일(主日), 주님의 날이라고 정하고 예배를 드릴까요? 왜 한국 교회는 하루의 첫 시간이 새벽에 새벽기도회를 드리기 시작했습니까? 왜 소득의 1/10을 먼저 떼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까하나님 우선의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정해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문제는 다음 장면에서 터집니다. 가인의 얼굴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경고하십니다. 가인의 제물이 열납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니 아벨의 드림을 제물로 받으셨다고 해서, 가인이 죄를 짓는 길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 다.”라고 경고하십니다.4:7)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2:17그때 아담은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락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도 경고하십니다.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죄로 가는 문밖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가인도 그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고 들로 나가 자기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악()에 빠지게 됩니다.4:8

 

죄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행동입니다. 탐욕이나 불만은 내 속에 있는 인간성입니다. 그 인간성이 말씀의 조종을 받지 않고 밖으로 표출되면서부터 우리는 죄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사람은 죄의 지배 아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여 나무 열매를 따먹고 나서 인류는 타락했습니다. 결국 아담의 불순종이 가인의 죄악을 낳았습니다로마서 5:12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온 누리에 퍼져버렸습니다.”5:12a

 

만약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같이 드렸으면 어땠을까요? 요즘 식으로 공동예배, 연합예배를 드렸으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형제끼리 공동으로 드린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들인데 그들이라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해보았겠습니까? 무엇인가 의견 충돌, 갈등이 있었겠지요? 결국 그들 형제는 각각 나름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4:3-4벌써부터 나를 내세우는 개인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경쟁주의가 판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간의 갈등을 분노로 연결한 가인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쳐 죽이는 살인까지 몰고 갑니다.

 

가인은 지금 자기가 드린 예물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물만을 반기신 하나님께 화가 나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문명을 발전시켜서 풍요하고 안전한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자기의 계획과 노력을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것 같아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거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폭력이 바로 예배하는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원흉이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교회를 헤치고, 예배자를 추락시키는 배경을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고 교회의 지체인 기독교인들이 폭력 앞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폭력, 말의 폭력, 실제 주먹질과 같은 폭력에 노출되어 버린 교회의 민낯을 찾을 수 있습니다가끔은 누구 파, 누구 파로 나누어서 싸우고 주먹질해서 뉴스에 보도되는 기독교인들의 맘 아픈 모습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폭력 앞에서 허무하게 예배가 무너지고, 예배자들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갑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요, 교회의 지체로 부름받은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늘 예배자로 이 자리에 부름 받으신 저와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반기고 계시는지 이 이야기는 날카롭게 묻고 있습니다. 어느 제사를 받으실지, 어느 제물을 반기실지는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지, 제사를 드리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해야 할 몫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반기시는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믿음의 행위로 아벨은 가인보다 나음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드린 예물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은 다름 아닌 믿음이었습니다.”(11:4

 

푸른초장 가족 여러분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있어 하나님 반기시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심으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 인정되시기 축원합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심으로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자의 삶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이 아벨의 드림과 같이 하나님 반기시는 제물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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