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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구 딸의 항변
김소인 2007-11-25 추천 0 댓글 0 조회 1887

내가 잘 아는 L이라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부인과 자식 그렇게 모두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 이민 가서 산다. L친구 그는 육군 중위로서 6.25전란에 참전한 용사였던만큼, 어느 누구보다 이 나라 향한 애국심은 아주 두터웠다.

 

그런 그가 온 가족을 이끌고 조국을 떠나게 된 직접적 작심 동기는, 국내 정치 및 시국불안이야 차치하고라도 북측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날이 갈수록 전쟁발발 암운이 극심하게 감돌자 그 참혹한 비극만은 자식들에게 미리 피하도록 조처해 놔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서 였다. 그러니까, 1976년도 그 무렵 일어난 한 단면적 L친구 그의 가정 이야기이다. 

 

그 L친구에게는 그 당시 고등학교 2년 다니는 딸 하나에다 중학 3년 사내아이, 1년 재학 사내아이 등등 그렇게 자식 셋을 두었다. 세상 부모가 다 그렇지만, 그 L친구 역시 자기 자식들 위하여는 남다를바 없이 밤낮 애지중지 마음 쏟으며 온갖 노력을 다 기우렸다. 이를테면, 자식들에게 지급하는 용돈 그 한가지만하여도 자식들의 임의지출 내규에 맡겼다.

 

즉, 자식들에게 일정금액 예금한 금융통장을 제각각 소지토록 마련해 주고선 매 월말이면 그 금융장에서 얼마를 인츨해 썼건, 또 무엇에 사용키 위해 돈을 찾았건 그 거래내역 지출 요항 사항엔 부모로선 일체 캐묻거나 간섭한 예가 도통 없었다. 다만 본래 원금액수 그대로만 되충당해 넣는 그 것으로서 깨끗이 결산지었던 것이다. 그만큼 자식들에게 부모로서의 보살핌은 각별하고도 극진에 달했다. 

 

물론, 그럴만큼 유복하였기에 가능했다. 상당량의 가산을 갖추었기 때문에서다. 거택도 그에 걸맞게 수도 서울 한 복판 광화문 인근 부유계층들이 몰려 산다는 신문로지대에 있었다. 아무튼 뭇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그 L친구의 가정정서를 온통 흩트리고 파괴하는 냉랭한 기류가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것은, 고등학생인 딸 자식이 방과후 귀가해선 입을 아예 굳게 다문 채 도무지 말을 않고 지내는 그 악습으로 해서 였다.

 

처음 얼마간은 그럴 언짢고 마뜩지 않은 기분인가보다 하고 온 식구마다 본체만체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고 넘길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지나도 대화를 않는 것이었다. 그제부터 가장 속내 답답하고 괴로워 한쪽은 부모였다. 뇌의 활동 장애로 언어를 잃었거나 무언증에 빠졌나보다하고 불안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욱, 어머니가 속을 무진 태웠다. 그래서 딸 자식이 학교에서 귀가하면 곧장 골방에 데리고 들어가선 여러가지로 꾀어 구슬려대고 또 솔깃하게 달래가며 제발 대화 좀 트자라고 타이르곤 하였다. 그것은 매일 반복이었다. 그렇다보니 그 어머니가 그렇듯 고심초사 애써 온지도 3개월이 가까웠다. 물론, 학교 담임선생과도 수차 극비리 상론하였으나 교내생활에선 일체 아무런 징후나 이상의 발견이 없다는 한결같은 해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급박히 접어들자, 어머니로선 그 딸과 관련한 문제해결책에 한계를 느꼈고, 급기야 남편에게 그 딸 자식 선도를 인계해야 했다. 그런 나머지 집안 가장이고 또 아이들의 아버지인 그 L친구는 어느 주일 오후, 드디어 딸 자식을 모처럼 서재에 온화하고도 친근한 태도로서 조용히 불러 앉히었다.

 

그리고서 <얘야, 네가 이제껏 품은 근본적 불만이란 대관절 무엇인지 그것을 낱낱이 알고싶구나. 따라서 그 어떤 심리적 갈등이 있다면 그 사실도 함께 차근차근 털어놔봐라. 그러면 우선, 이 아버지가 그 분야범위 부터 해결토록 하여 주마!> 

 

이에 그 딸 자식은 <... ...>

내내 아무런 상관없는 장식장 겸 서가판자의 모서리 한곳만 진득이 응사할 뿐, 일언반구 말 한 마디 안했다. 아니, 숫제 무반응인 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시 말을 가다듬어 이렇게 절절히 이어갔다. <생각 좀 하여라. 지금까지 엄마도 아버지도 정말 열심히 일해 왔고, 또 앞으로도 땀 흘리며 노력해 갈 명분과 보람은 애오라지 너희들에게서 찾고자 해서야, 알아들었니?> 

 

바로 그때 였다. 거의 3개월 동안이나 함구무언으로 일관유지하던 그 여식은 이윽고 마침내 입을 터놓았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그 딸 자식으로부터의 일껏 기다린 대꾸엔 분명 첨예한 가시가 돋아 가슴팍을 모질게 찔러 왔다.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요.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 집의 아빠 엄마만 자식들 위해 밤낮 구분없이 뛴다고 자부하시는가본데 그건 순전히 오산입니다. 세상의 생물학적 모든 부모 쳐놓고 자식들 위하여 희생 않는 그런 부모도 있대요?>라며, 그것도 사뭇 퉁명스러운 말투조로서 내뱉듯 했던 것이다.

 

이제, 그 후속담 마무리는 독자 각기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정리하였으면 한다. 그도 일종의 인생공부이기도하며 한편 묘미이라 여길 수 있어서다.

 

근래, 그 L친구 여식은 그 자신의 막내 아들 혼사문제로 고국을 잠시 다녀가면서 측근 몇몇 분끼리에 대한 모임을 주선, 서울 서초구 팔래스호텔에서 그 회합이 열렸었다. 그래, 이 아둔패기인 나마저 그 자리에 끼워주어 그 곳으로 나들이 했다.

 

그런 그때, 나는 그 호텔 라운지에서 만리타국으로 부터 건너온 L친구를 만나 기꺼워 떠들다가, 화사한 한복차림맵시에 더하여 환히 밝은 미소 띠고 청객을 응대중인 L친구 그의 여식과도 자못 반갑게 상면케 되었다. 흘러간 세월 탓인지 너무 감격 벅찼었다.

 

그 직후에 나는, 그 오래전부터 벼르던 터여서 곧바로 그 L친구 여식에게 넌지시 이런 질문을 꼭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환희에 젖은 분위기여서인가 종내 그 질문은 불발, 애써 치우고 말았다.

 

한데, 잔뜩 별러 예정해 두었던 그 질문거리란 이러했다. <아직도, 부모의 자식 사랑을 생물학적 자연발상 그 뿐으로 생각하는거냐>라고!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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