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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마지막 생애 회견기와 나의 단상
김소인 2008-03-30 추천 0 댓글 0 조회 1721
    • 1). 한국 사람은 돈이 없어 옆집에 쌀 꾸러 가는 일은 창피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글을 몰라 글 꾸러 가는 건 창피하게 여기는 민족이다. 그래서 교육 수준 높다.

       

      2). 기독교 신자들이 기도를 도무지 잘 이해 못 하는 것 같다. 어뗜 때 보면 무당 샤머니즘 같이 복을 달라고 빈다. 기독교의 기도는 그런 게 아니다. '오, 주여, 내게 오시옵소서'라는 기도라야 한다. 요란스럽게 소리지르고, 징징 울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도는 배우지 말라.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하면 내가 저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습니까. 내가 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습니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계시고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나도 너희 안에 있으니 너희도 내 안에 있으라는 거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얘기한 것도 그렇다. 지금까지 있던 '나 강원용'은 물러 갔고 그 대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들어 오셔서 살고 계시다는 그 뜻이다.

       

      3).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주는 에너지, 그게 바로 사랑이다. 성경은 온통 그 사랑 얘기다. 

       

      - 여해(如海) 강원용(姜元龍/1917~2006))목사는 기독교계의'거목'이었다. 사회운동가로, 방송인으로 현실 참여도 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설립, 종교간 대화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유신에 반대하는 설교를 거리낌없이 했다. 그래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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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은, 2007년 12월 6일자 <중앙일보> 21면 전 지면을 할애하여 강원용 목사 작고 1주기를 맞아 특집으로 실린 기사내용 중에서 기독교 신앙문제와 관련된 부분만 고대로 발췌하여 여기 옮겨놓은 것임을 알린다.

       

      참고로, 강원용 목사 그는 정년퇴임 시까지 서울 경동교회에서 시무했으며 또한 크리스천 아카데미 하우스 원장으로 지냈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17일 타계하였는데, 윗 어록은 바로 그 운명하기 몇일 직전 병상에서 그야말로 사력 다한 마지막 생애 인터뷰(interview) 내용이었다. 이는 곧, 평소 신념에 차 강단서 교인들에게 누누이 가르쳐온 소신이었으며, 나아가 복음적 메시지(message)이기도 했다.

       

      사족이다. 오늘날 한국 각 대형 비대교회마다 일종의 유행병이듯 신비적 이적기사 일어나는 것에 치중하거나 아니면 축복강조 일변도식 예배를 진행하는데, 이는 성서적 궤도에서 아예 이탈됐다고 친다. 그런데다가, 허구한 날, 매양 거의 부녀자계층 그들만으로써, 온 장내를 그득 채워 메운 집회형태일진댄, 그 곳이 교회이든지 기도원이든지간에 그 자체부터가 원천적으로 기준미달의 문제성을 안고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에 반하여 강원용 목사 그는 그 사례와 매우 대조적으로 매 예배개최 때이면 남녀성별 참례신도 수효가 일정한데다가 오직 성찰과 진리중심 추구의 본질적 목회방식 이행을 고수해 왔다. 그렇기에 강원용 목사로선 그 인터뷰 통해 그처럼 잘못된 신앙행위를 당당하고도 드레지게 지적, 개선할 것을 촉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제대로 된 교회상(敎會像)이란, 우선은 예배시에 참석하는 남녀성별 인수비례량의 그 수치가 거의 비등해진 그런 기독교신앙 공동체 전당을 가리킨다. 그 요항을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히 잘 인식해 둔 목회자가운데 한 인물이 다름아닌 강원용 목사였다. 그래서 강원용 목사 그는 원래 경동교회 창설 당초부터 주로 여성들에게서 싹이 트는 미신적 기복신앙이란 결코 용납지 않았고, 오직 한 곬 예수 그리스도 기본 가르침인 빛과 소금의 목회직분 역할 스탠더드(standard)에 매달려 그 정도(正道)를 굳게 지켜갔다. 그 결과, 남녀성별 신도수효는 서로 엇비슷해지면서 의식구조 또한 일제히 엘리트('elite)화로 수준 높게 성장했다. 그리하여 그 경동교회 그곳은 어떤 고난스러운 폭풍우 몰아친 경우에도 흔들림없는 장안의 튼튼한 반석 위 모범 성전으로서 부각되었다.

       

      그리고 그 강원용 목사 그에게는 일생 걸쳐 이룬 대단히 훌륭한 업적이 또 있다. 바로, 그가 세운 서울 도봉구 수유동 소재 크리스천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장장 40여 연간이나 통해 수많은 국내외 저명 석학 및 지식인들과 종교, 문화, 언론, 환경, 교통, 해양, 의료, 교육, 복지, 정치, 개발, 산업, 수출, 경제, 노사간 문제에다 특히 인간생명 중시 주제 Program에 따른 회합을 열고, 깊이 분석, 토론, 논한 나머지 도출해낸 각종 난제부문 예단 및 그 타개책까지 마련, 이를 그때그때 공론화하는 한편, 그 자신 사회구원 위하여 심혈 쏟아 부단히 활약한 그것이다. 결국엔 그런 눈부신 공헌 등으로 말미암아 강원용 목사 그를 기독교도이건 아니건 그 모두에게서 존경의 대상 인물로 삼았던 것이다. 

       

      다음은 그의 학력과 경력이다. 일본 명치학원 영문과, 카나다 미니토바대학 대학원, 미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 뉴욕 뉴스쿨 사회학부 대학원, 신학박사. 크리스천 아카데미 하우스 설립 및 원장, 한국방송위원회 위원장. N.C.C.(한국기독교협의회)회장, 아시아기독교사회운동기관협의회 회장, W.C,C.(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 수상으로는 국민훈장 사회교육부분 동백장, 만해평화상, 서울올림픽 개최 공로부분 청룡장, 일본 니와노 평화상 등등.  

       

      끝으로, 그가 펴낸 저서에 관해서다. 대체로 그 자신의 삶과 관련된 수필과 교회에서 행한 설교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그 저서 겉장에 달은 표제부터가 여느 목회자들 저마다 시중 서점가에 내놓은 천편일률적인 책명 그 것과는 너무나 확연히 차이가 진다. 그러기에 우리의 눈길을 한껏 모두게 하고 있다.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벌판에 세운 십자가>, <저 문이 열리기 전에>, <나날이 새롭게>, <하나의 진실을 갖는 아픔>, <그래도 지구는 돈다>, <폐허에의 호소>, <자유케 하는 진리>, <새 시대의 건설자>, <내가 믿는 그리스도>, <빈들에서>, <믿는 나와 믿음없는 나>, <5분간의 사색>, <역사의 언덕에서>, 그리고 <3차원의 세계> 그 이외 저서를 더 남겼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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