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령의 모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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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째 편) 종도여, 다시 한번 새로운 각오를 !
김소인 2008-03-05 추천 0 댓글 3 조회 956

본디의 고유명사는 따로 놔두고, 일명 <선지학교>라 부르겠다. 바로 그 <선지학교>에서 무자년 맞아 이제 며칠 지나면 관례에 따라 졸업과 임관 그리고 임명식을 거행하게 된다. 1910년 처음 개교 이래 제81기째 치루는 행사인 것이다.

 

한데, 거년 꼭 요맘때 일이다. 그러니까, 그 무렵 나는 이 인터넷 홈페이지 난을 빌려서 그 <선지학교> 제80기 졸업과 임관 그리고 임명식을 앞둔 생도들에게 순전히 노파심에서 한 마디 내놓았다. 그것은, 흡사 철부지 어린애처럼 금시 사라질 저 허공의 무지개 빛깔에 마냥 도취되거나 황홀해하지 말라는 그 뜻이렷다. 즉, <선지학교> 동산에서 벗어나면 마치 엄동설한 언덕에 홀로 선 나무이듯 혹독하게 차디찬 바람을 맞게 되리니, <할렐루야>와 <아멘>으로써 희희낙락 꿈만 키울게 아니라는 그런 충정어린 언성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글에 관하여 어느 인테넷 접속자가 몹시 거슬린 내용이라며 힐난조로 지적해 왔다.

 

하지만 나는 그 비판에 대해 결코 맞대응하지 않았다. 다만, 내 너무나 경직되고 직설적 표현 논조방식 탓이려니 하고 그냥 간과 치부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 원래 품었던 인식사유(認識思惟)가 조금이나마 누구러지거나 물러선 결과에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고(思考)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사실, 그 <선지학교> 졸업 및 임관 그리고 임명식 거행을 속세 시각으로서 관찰한다면 분명히 일대 명성 날리는 축하의 장일 터다. 하지만, 생각 좀 깊은 사람에 있어선 그 행사는 눈물의 서곡연주가 막 시작된 분기점의 시그널(signal)로 바라보게 된다.

 

가뜩이나 그럴 수밖에 없음은, 무엇보다 성서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단정 짓도록 고취(鼓吹)하고 있기 때문에서다. 아니, 성서는 주님 따른 종도이면 고난 겪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 한다. 그 방향 가리킴이 전혀 마뜩찮거든 결심자세 다시금 가다듬고 신구약 성서 모두를 꺼내 펴들라. 그러면 그 성서 갈피 어디에건 올곧은 선지자 혹은 예언자, 그보다 주님의 사도이거나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 제자치고 순탄하게 삶을 제대로 누린 인물이란 도무지 없다는 그 엄연한 입증실체와 만나게 될 것이다. 해서, 나는 이 시점에서 차라리 더 정직히 언급하련다. 다름 아니라, 성경상의 주님 종도들은, 그 누구나 한결같게 내내 빈궁했을 뿐만아니라, 참담한 지경이 되어 인생의 종언을 고한 그 가슴아픈 사실도 역력히 눈에 띠인다는 것이다. 

 

하긴 어찌 비단 성서에서의 종도뿐이랴. 이 세상 다녀간 의인들 및 선인들 또 어진 선비들 모두가 어김없이 그런 모진 생애 범주에 묶여 지냈다. 그 실제 증거 사례들은 온갖 참고문헌을 비롯하여 인류역사 기록물에서 허다하게 찾아진다. 

 

그런데도 <선지학교>졸업과 함께 임관과 임지 받는날이면, 그저 무턱대고 기쁨 넘친 감격에 마냥 벅차해 한다. 어쩌면 마치 풍성하고도 성대한 무도연회장 잔치에 초대받은 귀빈처럼 행세 한다. 

 

따라서 박수소리 요란하고 팡파르 우렁차게 울려 퍼진 가운데 기분은 무한히 의기중천에 떠돈다. 또한 그 행사장 머리위 얼기설기 걸린 만국기와 나플거리는 오색테이프 그 아래서 화사한 꽃다발 받아 안고 단란한 가족 및 친지들과 더불어 기념촬영 카메라 플레시를 연방 눈부시게 터트리도록 한다. 그때, 모처럼 축하차 장내를 그득 메운 일반 신도 하객들은 그저 그 황홀경 연출 하나하나에 선망의 시선 보내기외에 다른 여념 없다. 

 

그러나 그 일련의 이른바 빛나는 졸업식 거행은 한낱 일과성 요식행위일 따름이다. 이를 철두철미 인식해야 한다. 원래 그 행사가 지닌 근본 뜻은, 곧 죽음이 임박한 그날까지 일생 걸쳐 <사랑/희생> 정신을 쏟아부으며 일관되게 <헌신> 및 <봉사>하겠다는 대중과의 공약 다짐 선언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학교> 입학지원과 항차 주님 따르려는 종도 지망은 아무나 손들고 돌출적 행동으로서 이뤄져선 아니된다. 자신의 뼈를 쪼개 부수듯 한 아픔과 함께 신중, 숙고로서 결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만약 연봉 2억 내지 3억을 상회하여 수령한다는 그런 저질 따위 대형 비대교회 교역자 호화판 생활경우를 닮으려 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사이비 신앙성에서 울어 나온 망상인 것이다. 사회의 독버섯 거짓된 종교가 따로 번성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혹여 그런 너절하고도 맹랑한 교회목회자나 교역자를 만나게 되면 대뜸 이렇게 질문을 뱉겠다. 교회시무 현장에 뛰어든 그 동기는 오로지 <타인의 구원을 위해서인가, 아니라면 내 먹고 살기위한 하나의 수단에서인가>라고 -.

 

그러기에, 주님의 종도 지망(志望)이나 간택(揀擇)은 세속적으로 너무나 흔해빠진 어떤 명문학교 졸업을 통해서가 단연코 아닌 것이다. 해서 말인데, 주님 뒤따를 종도가 되려면 우선 현실성 개념을 뛰어넘어 전능 그리고 절대자에게 밀착하여 자기부정(自己否定)으로써, 온 몸을 송두리째 불살라 번제 드려야 한다. 그런 결행과 더불어, 항시 무아적(無我的) 낮은 자세유지, 그러면서도 기독교 명맥 핵심 사상인 <사랑/희생/헌신/봉사>를 실천하는데 있어선 가장 맨 먼저 앞장 설 그런 인물이어야 주님의 뛰어난 일꾼됨에 적격자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 수호를 위해선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자기 생명마저 내던질 수가 있고, 최소한도 크리스천다운 기본 품성부터 갖춰야 한다. 그 연후에 이윽고 성직감당 수행 관문을 거치게 되는 것이고,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도가 되어 부과된 멍에를 한껏 멜 수가 있겠다.      
* 더 이어짐은 그 둘째 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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