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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iah 十字架刑場 Epilogue
김소인 2013-10-13 추천 0 댓글 1 조회 1473

- Messiah 十字架刑場 Epilogue -



                 그해 그날의 Golgotha비탈언덕에서는

                                          
                                                            金    素    仁


A.D. 30년, 유대성력(Judea聖曆) 니산월(Nisan) 14일 금요일이었다. 이른 새벽녘부터 예루살렘 일대와 그 근교의 날씨는 유난히 침침하고 우중충 흐릿하였다. 게다가 싸늘했다. 바로 그러한 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온 인류구원의 명제가 얹힌 무거운 통목형틀 곧 십자가를 간신히 어께에 걸머메고 생애종점인 골고다비탈언덕을 향해 비척걸음으로 나서야했다.

그런데다가, 목적지 도달 중도에 기력이 너무나 부쳐 여러 차례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거듭하였다. 그럴 때마다 감시임무를 띤 로마군졸은 으레 무지막지한 발길질과 함께 가죽 채찍으로 표독하게 후려치곤 했다. 그 탓에 예수 그리스도 그의 전신은 진작 여기저기 퍼렇게 멍들었고, 진땀과 엉킨 유혈이 낭자하여 더더욱 참혹한 처지로 바뀌었었다.

                                                                                                       
한데, 그 역사적 수난진행 중요고비과정에서 끔찍이도 고마운 한 평민이 등장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십자가형틀을 예수 그리스도 그를 대신해서 골고다언덕 형장으로 애쓰며 메고 올라간 사람, 입때까지 단 한 번일지언정 예수 그리스도 그와 마주한적 없는 시몬
(Simon)이란 이름의 대단히 어진 그 길손을 가리킴이다.

즉, 그 당사자 시몬은, 본디 유대인으로써 북아프리카 구레네
(오늘날 Libya 동부의 한 지방도시 Cyrene./참조,행 2장 9절서 11절)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터였다.
과연 그렇다면 이상의 예시사례를 논리적 분석으로 입증, 적나라한 실제 진실이었음을 가려낼 수 있어야 된다고 여긴다.

해서, 실거주지가 먼 거리 이국땅 구레네
(키레네)로 밝혀진 그 시몬은 하필 유월절 때 그것도 예루살렘도성에 들른 근본 동기는 대관절 무엇이었느냐,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형틀을 어찌하여 대신 짊어졌든가를 각각 구분하여 좀 더 명료하게 짚어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시몬은 실로 오랜만에 모국의 세 가지 큰 절기가운데 하나인 유월절을 보다 뜻 짙게 보내려 모처럼 예루살렘도성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 목적의도를 벗어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두 번째, 물론 시몬으로선 예루살렘도성 전체가 과히 생소할리 만무지만, 그래도 그는 유월절당일 아침 일찍이 시가지풍경을 새삼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경과하지 않아서 돌연히 보행을 멈추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지, 떠돈 풍문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그가 누구인가를 어렴풋 헤아리고만 지냈는데, 공교롭게 금일오전 중 예루살렘 성벽 밖 북서부 근교에서 처형된다는 그 기막힌 소식을 어수선한 상가 사람들로부터 귀동냥으로 접하였기에 서다.

막상 그러하자 시몬은 당장 경악반응을 일으키고 쏜살같이 내달려 그 알려진바 처형장 예정 부근지대에 금세 다다랐다. 그 연후, 일대 충격적으로 전개되는 인류구원명제 성취의 주역인 예수 그리스도 그와 너무나 생생하고도 드라마틱(dramatic)하게 맞다들었다. 그때, 무릇 예수 그리스도 그는 그 무거운 통목십자가형틀이 너무나 버거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칠게 끌려가던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그는 초지일관했다. 정신력 또한 말끔 강인 그대로였다. 그래서, 울음소리 그치지 않고 내처 뒤따라온 마음여린 부녀자 그들 향해 연방 몸 돌려 <예루살렘 딸들아, 나위해선 결코 울지 마라, 오히려 너희와 너희 자녀들 위하여 울어라!>라며 작겐 이미 기우러진 이스라엘국운, 나아가선 이 세계 미래사를 예견한 염려당부이었거니와, 시몬은 그런 절박감 조여든 시간대에 심히 가슴 울렁이다 못해 사뭇 부들부들 떨면서 앞으로 거꾸러지듯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생면부지의 예수 그리스도 그와 리얼
(real)하게 접근하였다. 애끓는 상면이었다. 통곡의 만남이었다. 그러한데, 그 비애범벅의 기점이 된 지대는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아 내팽개쳐진 저주 땅, 골고다 언덕등성이 형장 이르기 직전에의 한 음침스런 가시덤불 골짜기 길섶이었다.

방금 위에서 막 언급한 일련의 애통망극 상황전개 낱낱은, 귀납적으로 정립(定立)하면 <하나님아버지 사랑>이란 그 중전(重典)의 성총(聖寵)을 이 지구상 곳곳에 널리 퍼트리고자하여 몸도 목숨도 연연하지 않고 모조리 다 내던진 본보기 절체절명국면이라 치겠다. 그러면서 그것은, 비난, 핍박, 수모, 전율, 탄압, 고통, 배반 그리고 장애를 과감히 뛰어넘어 인류대망 기독교창제태동 도화선에 불 댕겼으니만치 이는 한편(篇)의 역사적 불후명작 논픽션(nonfiction)서술대목이 아닐까보냐 여겨진다.

또 그것은, 종당엔 십자가형틀에서 죽음을 치를 메시아(Messiah) 예수 그리스도 그와, 신분처지가 단지 딴 나라 이주민일뿐인 길손 시몬, 그렇듯 두 상징성 뚜럿한 대상끼리의 그 진면모 드러낸 상봉이야말로 거반 황폐화되고 텅텅 빈 우리인생가슴마다에 감동물결 철철 넘쳐 흐르게 한다고 본다. 어디 그뿐이랴, 그 골고다언덕 일원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긴장감 요동친 장면만큼은 이 지상의 인류사가 지속되는 한 두고두고 되새김하며 못내 기릴 일대특집 영상작품 다큐멘터리(documentary)소재이기도 하리니 싶다.


결국은
그로써, 천하 만민 심금을 울렸다고 결산 짓게 된다. 해서, 그 특정 일부내역을 단면적이나마 더 묘사하여 둔다. 흡사 성질 사나운 어느 뿔달린 야생짐승 떼 몰려오듯 싶은 군중집단행렬, 그 선두엔 창검무장으로 위압감을 더욱 압도하는 로마군졸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 너무나 참혹한 행패를 한창 끼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 그 애처롭고도 가슴 저미는 광경을 길손 시몬은 한껏 눈시울 적시면서 똑똑히 목견하였다.

참으로, 처절한 장면전개였다.그때의 그 시몬으로선 더는 눈여겨볼 수만은 없었다. 그런 나머지 위해를 무릅쓰고 유독 채찍 거머쥔 그 로마군졸에게 바짝 다가갔다.그리고서 얼굴 붉히며 항변내지 성미 거스른 막말도 함부로 내뱉었다. 그런가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를 곁부축하고 일일이 거들었다. 이에 그만 로마군졸들의 비위를 극도로 상하게 했을 뿐더러,아니꼽게 여긴 대상이 되었다. 그 빌미로 인하여 급기야 시몬에게 로마군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형틀을 네가 건네받아 짊어지고 형장에 어서 당도하라는 그 강권발동 엄령이 내려졌고, 또 시몬은 그대로를 이행케 된 것이었다.

바로 그랬던 그 시몬, 그는 차후에 자기부인은 물론, 알렉산더
(Alexander)와 루포(Rufus), 그렇게 두 아들까지 가지런하고도 나란히 크리스천의 험난한 길을 일부러 택정해 걸어간 가히 보기드믄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참조 / 마가 15장 21절, 로마 16장 13절).

세상에서의 삶,그 자체가 해체되는 절망지대 골고다정점엔 그날따라 훨씬 더 소름이 돋도록 으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 그곳 형장엔, 소위 <여호와>(참조 / 예수 그리스도 그는 공생애 애당초부터 <여호와(Jehovah),야웨(Jahweh) 그리고 엘로힘(Elohim)>등등과 같은 호칭을 전혀 구사한 적이 없다. 그러하기에 신약성경 역시 어디에도 그런 인연 맞닿는 흔적이나 표현은 숫제 전무하다. 그러한즉, 우리 모두는 왜 그럴까를 놓고 심도 있게 생각해봐야 마땅하다. 한데, 그 호칭은 구약시대 율법적 유대민족종교에서 오로지 그들만의 신앙대상인 유일신을 향해 전매특허이듯 독점적으로 일컫는 수식적 특립명사(特立名詞)낱말이다.그런 그 명사낱말을 자주 섞어 남용하는 유대교도 그들은 너무 비열막심하고도 악랄무쌍하게 예수 그리스도 그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주력했는가하면, 또 하나님의 아들이란 그 엄연한 진실조차 줄곧 인정않고 강력히 부인한다, 그와 연관된 단적인 한 실태를 댄다. 흔히, 오늘날에도 그 예루살렘현지관광 아니면 보도사진자료에 의해 너무나 잘 확인되는바, 유대교도저마다 앞을 다투며 수시로 그들의 예루살렘 서북쪽 성곽 <통곡의 벽>에 찾아가서 목메어 부르짖는 기도내용골자가 바로 그것이 된다. 즉, <여호와>이니,<야웨>이니 그리고 <엘로힘>이니 거듭 부르면서 <고작, 메시아인양 흉내 내다 종내는 처형당하고만 예수처럼 이아니라, 본질적이며 실제적인 진짜 그리스도를 조속히 보내달라>는 그 간청인 것. 해서, 우리 모두 현대최상문명시대에 태어나 살아가며 온갖 산지식 겸비한 크리스천일일진댄 이상열거의 유대교도 전용 그 명사어휘쯤은 미련두지 말고 부디 인용을 삼가했으면 한다. 이는, <믿되 어떤 자세를 취하고서 어떻게 믿느냐>와 연관된 순수 충언일 따름이다.)섬기는 율법주의패당들과 제사장아치들의 농간에 속은 다대수 무리가 어느새 재빨리 도착해선 하나같게 혐오스러운 어투에다 독기 찬 혈안이 되어 마구 광분하고 있었다.게다가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 낄낄거리며 비웃음과 함께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시간이 좀 흐르자 예수 그리스도 그를 어서당장 처단하라며 악성(惡聲)을 고래고래 질러대었다. 

이윽고, 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의 그 파란중첩 생애가 최후로 멈춰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오전 9시 무렵, 만유의 하나님독생자 그가 한낱 피조물 인간들 억지주장에 떼밀려 처형되는 역설적이고도 어이없는 순간이 드디어 도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는 도무지 어처구니없는 그 만행에 고분고분히 순응하여 아까부터 그의 머리엔 가시나무가지 꺾어 엮은 쓰개를 썼고, 무지스럽고 간악한 로마군졸들은 모질게 형 집행을 가차 없이 가속시켰다. 그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그는 예정한바 그대로 십자가형틀에 생살 찢기며 못 박혀 달렸다.

실로, 천지창조 이래 일대 참극연출이었다. 그러한데도 그 형장 한 옆에선 임무수행 차 차출, 동원된 로마군졸들 몇몇끼리 한갓 요행수에 끌리어 제비뽑기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 끝판의 그날 그때까지 두고두고 흉잡힐 천박스럽고 비열한 짓들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이는 인류사에 가장 추잡한 놀음의 표본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본의 아니게 잠시 걸쳐야 되었던, 갈릴리 전역과 베뢰아 일원을 지배중인 분봉 왕(주해/ 領主) Herod Antipas(재위/ B.C. 4- A.D.37)의 겉옷 자색곤포(紫色袞袍)를, 로마군졸들이 거두어 4깃으로 갈라놓고, 서로가 보다 좋은 쪽의 옷 헝겊조각부분을 선취하려는 그 차례결정 추첨 판이 벌어진 것이었다.

우린, 이에서 사리분간하기 어려운 대목과 맞부딪친다. 왜냐하면, 범법혐의자로 몰려 체포되어온 판국의 예수 그리스도 그는 어찌하여 대단히 어마한 신분인 Herod Antipas가 입던 호사스런 그 자색곤포를 잠시나마 걸쳤었느냐, 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에서다. 하지만 그 의아한 궁금증은, 유대관할 최고위 권력자 제5대 총독 Pondior Pilatos(재위 A.D. 26 - 36)에의 정무처리방식에서 쉬이 해소케 된다.

그러니까, 맨 처음 결박당한 채로 연행되어온 예수 그리스도 그를 공관정원 석축계단 아랫바닥에다 그냥 세워두고 그 총독자신은 높직한 노대(balcony)에 나서서 날카롭게 시시콜콜 심문을 하던 때였다. 그 적에 총독 Pondior Pilatos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원래 연고지가 의외로 갈릴리 쪽이었음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자 즉각 그 지역 실제통치자인 Herod Antipas에게 소송사건 전말서 일체 송치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신병(身柄)에 대한 법률적 판결권도 이관했는데, 그 때문으로 Herod Antipas와 예수 그리스도 그가 악연에 닿은 첫 실마리 된 것이었다. 때마침, Herod Antipas는 유월절을 쇠려 예루살렘시가지 소재의 한 공관에서 진득하게 머물고 있던 참이었다.

결국, 그리하여 Herod Antipas로선 별다른 계획이나 절차 없이 대뜸 예수 그리스도 그와 저절로 접견케 된 것이다. 더구나 꺼진 눈자위, 타든 입술, 수척한 안색에다가 비쩍 야윈 체구, 그래서 초췌하기 비할 바 없는 그런 모습의 예수 그리스도 그를 무한히 깔보며 만나게 되었다. 짓궂은 필연적 곡절이었다.

그렇다보니 Herod Antipas는,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 <그래, 네가 유대인의 왕이 된다는 말이냐? >라고 비웃음 치며 힐문과 함께 비아냥거렸다. 또, 멸시천대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도 부족타고 생각했는지, 후속 조롱거리삼아 그의 내전부관을 불러 자신이 오래전 옷차림타가 싫증나 의장 속 깊숙이 처박아 둬둔 자색곤포를 되찾아 꺼내오게 지시하여 예수 그리스도 그의 가냘프며 맥없이 처진 어께에 걸치게 했다
(참조/ 막 15장 17절, 20절. 눅 23장 11절. 요 19장 2절, 5절.). 이상, 예수 그리스도 그가 Herod Antipas의 의상 자색곤포를 임시 걸쳐야했던 앞뒤사연 내막이었다.

여기서 참고할 사항이 있다. 그 의상(衣裳) 곤포는, 특수원단 자색명주 바탕에 Herod Antipas 자신이 분봉 왕 된 위용문양을 황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아 꾸민 일종의 의전복식(儀典服飾)이었던 것이다. 그로인하여 그 의상 자색곤포는 매우 값지고 진귀해 보였다. 그 탓으로 로마군졸들 피차 그 자색곤포를 두고, 무척 탐을 냈고, 기왕이면 가보로서 잘 건사해두기에 족한 그런 천 조각을 골라 차지하고자 그처럼 제비뽑기가 진행됐던 것이다.

한데, 이쯤 이르러 Herod Antipas가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 십자가형틀에 의한 그 처형언도를 아니하고, 하필이면 Pondior Pilatos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야, Herod Antipas로부터 애당초 사건발생지이자 또 소송 제기의 원고당사자인 대제사장 Caiaphas(재위 A.D. 18 - 36)측과 매우 가까운 지역소재의 총독 Pondior Pilatos가 본 재판권행사를 되넘겨 받아야만 타당타는 그 의견개진에 따라 Pondior Pilatos로서 부득이 재판 속개 임무를 다시 떠안은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 이유작용 그대로이다. 따라서 Pondior Pilatos는, 엄청 몰려든 군중의 극악한 요청압박에 굴복, 범법피고로 몰린 예수 그리스도 그를 종내 십자가형틀에 못 박아 달리게 하는 그 끔찍스런 극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세기초유의 비극적 판결이었다.


그럼, 그 비탄이 뒤엉킨 골고다형장에다 관점의 초점을 맞춘다. 거기엔 그냥 간과할 수만 없는 부문이 따로 더 존재한다. 예상외일 수 있다. 그 부문주인공들은, 수난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 그와 상면하고자하여 물 한 모금 넘기지 않은 채 허겁지겁 뒤좇아 골고다 언덕배기에 달려와선 마냥 몸부림치며 눈물 쏟는 여인들이다.마치, 카메라 앵글
(camera angle)로 피사체 포착하듯 그렇게 관조해 본다.


특히, 성서 신약 넷째보음서는 골고다 십자가형장정황을 여느 복음서에 비하여 좀 유별나게 설명해 놨다. 즉, 그 형장에 허둥지둥 서둘러 부리나케 찾아온 여인들 신상 및 행실 동향을 개괄적이나마 그래도 낱낱 적시하였기 때문에서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 생모 마리아를 위시해서 이모 살로메, 언제나 미쁜 마음씨의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글로바의 부인 마리아 등 4인방 여인들이 매우 애타하고 허탈과 슬픔수렁에 빠져든 그 일련의 안타까운 정황면면을 컷인
(cut-in)하여 비교적 강렬하게 서치라이트(search light)를 비춘 그것이었다.

기실, 그 4인방 여성들이야말로 하늘 아래 가장 갸륵하고 수범적인 본보기 행실을 이행했다고 친다. 골고다의 처절한 형장, 다시 말하면 십자가형틀 기둥목 부여잡고 비통하게 울부짖는 4인방 여성들은 12제자 남성들의 거취동선과는 비견이 아니 될 만큼 신심의 그 정도가 대단히 월등하였다고 헤아려진다.

차제에 그 양방의 장단점을 서로 대비해 보련다. 즉, 예수 그리스도 그의 수난을 둘러싸고 야기된 12제자 남성들 태도와, 4인방 여성들의 동향을 각각 분별하여 교훈삼자는 의도이다. 우선, 3년 동안이나 밤낮 예수 그리스도 그를 근접해서 붙따른 열두 남성제자들 거동에 관해서 기술한다.

그 무엇보다 그들 가운데 한사람은 도제의 길을 저버리고 부조리시류에 편승, 야만성 드러내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를 이반했다. 그런 그 짐슴만 못한 돌연변이 기회주의자도 필경엔 자신의 절대과오를 심히 후회하고서 자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는 대단히 큰 낭패사례였다. 그런가하면, 나머지 열한 제자 그들은 막상 무기력하게 연행되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안쓰러운 뒷모습을 눈여겨 살핀 결과로써 엄습해온 불안초조와 겹친 공포분위기에 떨다가 급기야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행방마저 묘연하게 아주 숨거나 낙향해버렸던 그 행적 또한 명예롭지 못한 큰 흠으로 남는다. 부끄러운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그 한편, 언제나 먼 상거에서나마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그를 마음속 깊이 앙모하며 모신 그 4인방 여성들 행실은 과연 어떠했는가. 어쩌면 못내 측은하기기까지 한 그들은, 그 삼엄하고 살벌한 골고다언덕 형장까지 한꺼번에 진작 찾아왔던 것이다. 그리고서 오열을 터트리며 예수 그리스도 그가 십자가형틀에 양손과 발을 잔인하게 못 박혀 달리는 그 애통한 일련의 장면과정 낱낱마다 가슴 피맺히도록 지켜봤었다. 그 다음, 죽음과 접근한 예수 그리스도 그를 향하여 마지막 진정 하고픈 말 한마디조차 목메어 미처 다 못했을지언정, 그래도 고별 고하는 통절의 눈길만은 꼭 전했던 것이다. 엽기적 군중과 율법주의자들의 냉소 섞인 비난 퍼붓는 그 찬바람 소용들이 속에서다. 참으로, 기독교청사에 길이 빛날 미거렷다.

이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그는 33성상을 일기로 하여 그의 지상여정 이정표에 진한 종지부를 찍었다. 골고다 형장언덕 저 아래 사리분별 일체 모른 백성들 저마다 유월절 저녁 잔치를 성대히 즐기려 한창 들떠있을 오후 3시 즈음이었다. 아,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차마 목불인견의 메마른 육신에 무참히 가해온 그 고통을 한 줄기 눈물로써 무진 견디다 고개를 가슴에 묻고 초연하며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하늘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잘못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라고 간곡히 간원 드린 직후였다. 이는, 차라리 Messiah 구세주로서 만천하 만민구원을 위한 극한적 사랑의 절규이기도 하였다.

그때 창천은 갑작스레 온통 먹구름으로 어둡게 가려졌다. 그리고는 곧 온 누리 시공의 흐름마저 일체 정지되고, 천지간 간극 또한 허물어 메어치듯 뇌성벽력이 무섭게 잇따라 진동했다. 이어 굵은 빗방울이 척박한 대지 사면위에 후드득 세차게 마구 흩뿌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제 후미에 접어들면서, 한 인물의 진실 찬 심경토로를 그대로 떠올려 옮겨 놓는다. 다름 아닌 로마군무관장교 백부장, 그가 행한 진솔한 고백내용인 것이다. 그 장교는 상층부 지령에 의거 일찌감치 예하부대 병력 100명을 이끌고 그 골고다 형장언덕에 출동했음은 더 말할 나위 없거니와, 예수 그리스도 그에 대한 극형집행 임무를 직접 철저히 진두지휘 감당해낸 당사자였다.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 동작을 어느 누구보다 시종 예리하게 감찰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곧, 그 로마군장교, 그의 내심 깊숙이에서 우러난 거짓 없는 실토이기에 신뢰성이 한결 더 보태진다고 하겠다. 아니, 오늘날 어정쩡한 기독신자저마다의 진부하고, 식상하고, 과대망상적인 축복타령조 신앙 간증소재에 비하면 실로 몇 갑절 세인들 이목 사로잡는 천명(闡明)이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한걸음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 그를 하나님아들이라 인식한 그 주체가 객관적 성향을 띤 제삼자의 완벽한 역사적 증언이 될 뿐만 아니라, 변증법적 고해성사로서도 손색없다고 판단케 한다.

본론 끝맺음이다. 그 억수로 사납게 들입다 퍼붓던 빗발은 한나절 좀 지나자 홀연히 그쳐버렸다. 그리고는 어느 샌가 바야흐로 밝고 눈부신 햇살은 아직 군데군데 남아 떠도는 검정구름장을 헤치고서 예전처럼 온갖 생명체와 삼라만상에 고루 풍요롭게 퍼져 내렸다. 그와 더불어, 사뭇 높고 푸른 하늘 폭 또한 점점 한껏 넓혀지는 것이었다.

마침, 그 시각 즈음이었다. 그 로마군장교 백부장은, 경비막사에서 슬그머니 혼자 무거운 걸음으로 빠져나와선, 참담하게 십자가형틀에 달려 방금 숨 거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찬비 젖은 유체를 지극히 한참동안 우러러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가책에 따른 깊은 탄식과 함께 자신의 괴로운 심경처지를 바르게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거듭거듭 되뇌었던 것이다. <정녕, 저 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의로운 아들이셨구나!>라고-
(참조 / 공관복음인 마 27장 54절, 막 15장 39절, 눅 23장 47절 등등).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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