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화산책

  • 교회소식 >
  • 기독교 문화산책
카타콤과 초기 기독교 교회의 예술
운영자 2010-06-24 추천 0 댓글 0 조회 1396

          카타콤과 초기 기독교 교회의 예술

 

최초의 기독교 예술은 AD 200년경에 로마의 카타콤에서 나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 예술이 늦게 나오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구약 성서의 모세 율법이 신의 형상을 그리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유대전통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이나 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초기 기독교 교회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서, 숨어 있었기 때문에 공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예술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AD 200년부터 로마시내의 카타콤이라는 지하 묘지 동굴에서 박해받은 기독교인들은 은밀하게 모임을 갖고, 순교자나 죽은 기독교인들을 추모하고 장사지냈습니다. 바로 지하 동굴의 벽과 무덤을 덮은 돌 뚜껑위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초기 기독교 교회의 예술입니다.


카타콤은 AD 2세기경부터 로마시내 지하에 조성되기 시작한 묘지라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전통적으로 화장을 하였는데, 죽은 후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생겨나면서 화장보다는 매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박해받았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하층 계급과 노예들이 많았기 때문에 죽은 자를 매장할 수 있는 땅을 살 만한 여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로마는 로마 시내에 묘지를 만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부유한 자들만이 로마에 무덤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 시는 단단하지 않은 화산암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동굴을 파내려 갈 수 있었고, 한번 파여진 동굴은 공기와 만나면서 단단하게 굳어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로마의 가난한 기독교인들은 지하 깊숙이 로마의 대로를 따라서 긴 터널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카타콤은 지상에서 7m-19m 아래에 만들어졌고, 3-4층 밑으로 내려갔으며, 통로의 넓이는 2.5m 높이에 1m 넓이입니다. 그리고 통로의 벽을 파서 시신을 묻었는데, 40cm-60cm의 높이에 120cm-150cm 길이로 벽에 공간을 내고 시신을 넣었습니다.


AD 380년 기독교가 로마 공식 종교가 된 이후에서 순교자들과 함께 묻히고 싶어 했던 기독교인들에 의해 카타콤은 계속 만들어졌으며, 10세기경이 되어서야 카타콤은 더 이상 무덤으로 사용되기를 그쳤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 박해 시절 카타콤은 정식 예배 장소는 아니었고, 단지 박해를 피해 숨는 장소이거나 기독교인들의 무덤이었고, 이곳에 묻힌 성자와 신자들을 추모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카타콤은 기독교인들만이 무덤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고, 유대인들의 카타콤 무덤도 있으며, 다른 이방 종교의 카타콤 무덤도 있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초대 교회건축 운영자 2012.07.26 0 1802
다음글 렘브란트를 만나다 운영자 2009.09.02 0 1428

03737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476 구세군빌딩 12층 TEL : 02-831-0201 지도보기

Copyright © 구세군푸른초장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0
  • Total92,024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