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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시는 분 / 2015. 9. 13.
김동진 2017-03-09 추천 0 댓글 0 조회 401
[성경본문] 요한복음2:23-25 개역한글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여러분 위에 더하시길 기도한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신 후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잘 보내셨다. 이스라엘민족에게 유월절은 큰 명절이었다. 종살이하던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떠나도록 하셨던 그들의 역사 속에서 유월절은 애굽사람들에게는 장자의 죽음을 부른 재앙의 악몽이요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그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구원의 날이었음을 감사하는 축제였다. 그래서 이 유월절은 특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신앙의 표현이 되어갔다.

 

오늘 말씀에서 첫째, 우리는 예수님 당시 유월절에 모인 사람들을 본다. 제자 요한은 주님께서 유월절에도 표적을 행하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만 전한다. 그는 다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표적이었는지 얘기해 주지는 않는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는지,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는지, 본문에서는 전혀 알 수 없고 주님이 전하는 진리의 말씀도 들었겠지만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주 15년 사관 지도력캠프에서‘God’s way with me’라는 시간에 여러 사관들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한 사관은 독신으로 사역하는 중에 눈이 많이 내린 1월 결혼대상자를 만나러 차를 몰고 가다가 내리막 커브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본인말로는 60K라 해요. 그런데 완전히 굴러버렸고 차는 운전석이 완전 구겨졌다. 그 사진을 보여주는데 대형사고난 그레이스승합차였다. 그런데 몸은 멀쩡해서 구겨진 차를 몰고 영문으로 돌아갔더니 한 부교님이 한참 아래위로 살펴보더라는 것, 정비소에 갔더니 뒤에서 하는 말, “운전자는 저 정도면 살겠나!” 하더라는 것. 아무 말 안하고 열차타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적이다.

 

기적을 보고 믿는 것 지극히 초보적인 신앙이다.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선다고 “야! 대단하신 분이다!” 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벙어리가 실제로 말을 하게 되면 그 치유의 능력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중풍병자의 수족이 온전하여지는 것을 보면 ‘아! 하늘이 보내신 분이시구나!’ 믿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성숙한 신앙은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신앙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으면 그 현장에 있었던 오천여명은 엄청 두려움에 빠졌거나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믿었어야 했다. 소경 열 사람이 다 눈을 뜨게 되었지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사람뿐이었다. 육신의 눈을 뜨게 됨도 엄청난 사건이다. 개안수술이나 심장병시술은 새 생명을 얻는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 그들은 신앙의 눈을 떠서 구세주 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었어야 했다. 기적이 기적에서 끝난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

 

예수님 주변에 놀라운 기적을 보고 따르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점점 떠나가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조금 하다보면 마냥 신나는 일이 계속되진 않고 민 거적 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는 사람이 있다. 신앙의 뜨거운 체험이 없을 때 그렇다. 내가 죽을죄에서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을 때에 그렇다. 그때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선뜻 나서서 대답한다. “주님, 영생의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심을 믿고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가? 나에게 특별한 기적과 같은 일이 있어야 믿을까? 돈을 많이 벌어 떼 부자가 되어야 신이 나겠는가? 조금만 어려우면 주저앉을 건가요? 아니죠?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듣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길 바란다. 주님의 음성에 늘 귀 기울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성숙된 신앙인이 되길 축원한다.

 

 

둘째, 예수님은 사람을 의탁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24절,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라’했다. 무슨 말인가?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따르는 사람들을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예수님이 친히 택한 열 두 제자들마저 주님을 부인하고 버리고 다 도망할 것을 아셨다. 눅 22:31,32에 보면 주님은 베드로에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영성회복의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베드로는 단호하게‘나는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했습니다.’주님을 결코 버리지 아니할 것처럼 말했지만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조차 아셨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 디베랴바다로 가서 고기 잡던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면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동일하게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당부하셨다. 주님은 무조건적인 ‘아가페’사랑으로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겨우 친구의 사랑‘필레오’로 답변할 정도였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필레오’로 물으셨던 주님이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정말 그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친 다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만큼 신실한가? 나를 너무나 잘 아시고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주님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섬기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이길 원한다. 하지만 오늘날 연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믿음이 건강치 못하다. 믿음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아 실망감을 주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이기적일 때가 많고 내 생각을 고집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은 무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 완전하진 않다. 그러므로 연약하면 일으켜주고 부족한 지체를 세워주는 건강한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우리 마음속을 훤히 아시는 분이셨다. 너무나도 소상히 아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종종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어찌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실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본문에‘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다.’하시면서 이유는 주께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라는 거다. 주님은 주께 나아온 병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셨다. 서로 높은 자리 다투는 제자들을 아셨다. 어린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부모의 마음을 아셨으니 제자들을 꾸짖으며“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다.”라고 하셨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해 뽕나무 위로 올라간 삭개오의 마음을 읽으셨다. 그래서 그를 부르시면서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청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도 알고 계세요. 못된 성격, 욱하는 성격 있잖아요. 다 알고계세요. 또 쉽게 남 비판하고 거짓말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세요. 그런데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세요. 시편 103편 14절에,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우리 마음의 간구를 아시는 주님, 우리의 슬픔을 아시는 주님, 우리의 외로움을 아시는 주님, 우리의 문제를 아시는 주님, 그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해결해주시고 주님의 기적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자녀 범사에 모든 것을 알고계세요. 우리 교회 모든 것을 주님이 다 알고계세요.

 

그래서 감사만 하시면 되요. 여러분 가정에 대해서 감사하고 자녀에 대해서 감사하고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고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감사하고 우리 교회에 대해서 감사하고 할렐루야. 감사만 하세요. 감사만 하세요. 시편 139편 2절 3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날 아시니 감사합니다. 걱정할 것이 없지요. 주님이 아시니까요. 우리가 찬송 불렀잖아요. 주님이 날 아시고 고통가운데 계시잖아요.

 

시편 139편 말씀을 쓴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모든 행동,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하는 말들, 심지어 모든 생각들까지도 모두 알고 계신다고 말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 우리를 만드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세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잘못을, 나의 속마음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세요.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그분의 아들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분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신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모르시는 게 없고 누구보다 잘 아시고 안타까워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연약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비록 우리에겐 믿을 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여전히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혹 말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의 깊은 고민도 주님은 아신다. 이웃에게서 받은 마음의 깊은 상처도 아신다. 절제하지 못하여 엉켜버린, 온갖 죄로 얼룩진 나의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때로는 엉뚱한 고집부리며 반항하는 나를 아신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하는 나를 아신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사랑하는 자매여’하시면서 못 자국 난 두 손을 내미신다. 그 손으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신다.

 

장자의 죽음을 부른 엄청난 재앙을 넘긴 유월절 사건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백성만은 한 터럭도 다치지 아니하고 죽음을 보지 아니한 기적이 오늘도 믿는 자의 삶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 시간 사랑하는 주님께 “주님 병든 나를 고쳐주소서. 이리저리 상한 나의 마음을 싸매주소서. 연약한 믿음 강건하여지도록 손잡아 주소서.”기도하기 바란다.

오늘도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를 품으시고 고쳐주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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