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15: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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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유대인들이 흔히 보았던 과일은 포도였다. 포도는 팔레스타인 기후에 잘 자라는 과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포도나무를 예로 들어 자신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설명하셨다. 자신은 포도나무요 제자들은 가지라 했다. 사실상 포도나무가 그냥 보기에 품위 있는 나무는 아닌 것 같다. 포도나무가지는 대체로 비틀려 자라며 가지도 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탐스러운 포도열매를 맺는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 있게 <나는 주님의 가지>라 고백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거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주님의 가지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정말 놀라운 축복이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라 했을까? 열매는 가지 스스로 맺지 못한다. 가지는 무조건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가지가 제대로 튼튼하고 제아무리 종자가 특출하다 하더라도 가지가 열매 맺을 수는 없다. 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는 생명력을 잃고 결국 바싹 마르게 된다. 우리의 믿음도 주님을 떠나 온전할 수 없다. 주님 안에서만 온전해진다. 단순히 가지이기에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고서는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4)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모든 것 버리고 주님 따른다고 나섰는데 겨우 포도나무 가지라니? 섭섭했을까?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제자들이 다 달랐지만 주님과의 관계는 단지 나무와 가지로 표현하셨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면 과연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우리 각자는 예수님을 알기 전부터 그동안의 삶이 있었다. 30년, 50, 60년...여기 몇 분 새터민은 삶의 환경부터 달랐다. 오늘 내가 박사고 변호사며 재벌총수며 대통령이어서 그리 대단한 존재일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 인생은 덧없는 인생이다. 지금은 펄펄 끓고 고집들 피우지만 목숨 다하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요. 그러니 대단한 사람도 보통사람도 한 가지에 불과하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그 누구든 영락없이 가지에 지나지 않아요. 그 이상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완벽하지 않고 절대 완전할 수 없어요.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박사는 믿음으로 중국내지에 들어갔다. 점점 일 많아지면서 사람과 돈이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무거운 정신적인 부담으로 인해 밤잠을 못 자면서까지 고민하다가 마침내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 읽다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구절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 그러자 순간 태양빛이 비치는 것처럼 그의 마음은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은 나무이므로 가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으니 책임져 주소서.” 그는 바로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 자기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죄를 자백하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겼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그날 이후부터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성공적인 중국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지의 첫째 본분은 본체 나무에 잘 붙어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철저히 우리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가지가 물과 영양을 취하는 통로는 단 하나 !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붙어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 예수님 손잡고 찰거머리마냥 따라 다녀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려면 열두 제자도 다 감당치 못하지 않을까?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주실 때에는 곧 제자들을 떠날 것을 앞둔 위급상황이었다. 그런 주님께 붙어있으라는 말씀은 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며 과연 무엇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사회적 배경인가? 나의 건강이나 재능인가? 좋은 직장이거나 마음 터놓을 친구인가? 내 집 한 채 있었으면 하는가? 통장에 1억만 있으면 하는가? 더도 말고 10년간 다닐 수 있는 직장인가?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은 사실 영원하지 않다. 남편도 아내도 영원히 함께 할 순 없다. 우리 주님만 영원하시고 여전히 신실하신 분이시다. 내 삶이 퍽퍽하고 지쳐있을 때, 혹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고민할 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품으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무기력할 때에 새로운 힘주시며 혼돈스러워 밤잠 이루지 못할 그때에 그 아픔과 상처를 싸매주신다. 혹 나도 그렇게 되기 원한다면 “주님, 나는 주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간절히 고백하기 바란다.
둘째, 가지는 반드시 열매 맺게 되어있다. 과수원농부는 거의 해마다 가지치기를 한다.
이때 열매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사정없이 잘라버린다. 어이쿠! 어쩌지? 그러면 나도 잘려나갈지 모르는데!...혹 염려되는가? 그러나 여러분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주님이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라고 했을 때 그 가지는 이미 주님께 붙어있는 가지였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3절에,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주님께서 보증하고 있어요!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는 주님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내가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할까? 그 주님이 내 안에 어떻게 거하실까? 이것을 이해하면 된다. 할렐루야! 진리는 어려운 게 아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서 우리 문 밖에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다. 그렇다면 그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영적인 교제의 핵심이다.
이제 주님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가자. 주님이 내 안에 사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기 바란다. 예수님께서는 5절 이하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다시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살라버린다.’ 경고한다. 주님 밖에 살면 잘려나간 가지처럼 된다는 거요. 버려지고 바삭 말라버리며 불쏘시개처럼 불태워져 소멸된다는 거요. 정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냐 아니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요. 반대로 가지가 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매우 단순해요.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은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며 나의 중심이 되시도록 내어드리는 일이다.
주일날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었지만 머리가 하얘지고 무엇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설교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교회마다 너무 많은 거다. 세상 살기 너무 힘들어 주일날 은혜 받으러 왔지만 전혀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상 말씀을 듣는 여러분보다 말씀 전하는 저에게 더 책임이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매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뿐이다. 주님께서는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 바로 되려면 주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주님, 도와주세요. 내 맘에 들어와 나를 주관해 주세요!”기도하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은 한 주간 한두 번이라도 성경말씀 열어 보는가?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지요? 사실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가? 아니죠? 바쁘게 살다보면 하루 뚝딱 보내고 집에 들어가면 TV앞에 뉴스며 드라마 볼 시간은 있어도 기도하는 시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탄의 작전대로 교회를 다닐 뿐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는 교인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교통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다 되어야 한다.
어느 중년남자가 일본 오오쯔시 비바호수를 바라보면서 오오쯔시 명물인 번깨이 모지 곧 찹쌀떡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5-6명의 남학생들이 들어오더니 찹쌀떡을 바쁘게 먹고 각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내놓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버린다. 주인아주머니는 고맙다며 그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기에 손님은 어리둥절했다. “아주머니는 어째서 돈을 세어보지도 않습니까?” “저 학생들은 정직합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아! 저 학생들은요, 교또에 있는 동지사대학에 다니는 예수 믿는 학생들이라서 틀림이 없습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남자손님은 집으로 가는 길에 성경을 사서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로 나가 예수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한다.
엡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했다.
“예수 믿는 학생들이라서 틀림없습니다!” 믿음은 자연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를 보는 이웃이 말해준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웃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정확히 알고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우리의 믿음을 칭찬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런 믿음의 열매라 할 수 있어요.
믿음의 가지는 언제나 믿음의 꽃을 피우며 은혜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한다. 섬김과 순종의 열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 전도의 열매를 언제든지 맺게 한대요. 여러분의 신앙에 꽃을 피우며 믿음의 열매 맺게 되길 축원한다. 주님의 말씀이 기다려지고 기도하는 가운데 가슴이 벅차오르며 주님과 동행함을 기뻐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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