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24:25-3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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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이 시간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인사하자.
(프)철학자 콩트가 영국시인 칼라일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구상 중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종교는 기독교가 내세우는 유치한 신비적 이야기들을 배제할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고 분명한 것이 될 것입니다." 듣고 있던 칼라일이 대답했다.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니 좋지만 그 전에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처럼 당신도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종교가 생명 있는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기독교는 유일하게 부활을 믿고 영생을 확신하는 종교다. 그 힘 때문에 2천년 동안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었고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이 부활신앙 때문에 어떠한 핍박 속에서도 순교의 피를 흘렸다. 우리나라에도 선교 초기와 6.25동란 때 순교하신 분이 의외로 많다. 그 순교자가족과 후손들에게서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 맺는 것을 본다.
엠마오 고향으로 돌아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로마 밑에서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분으로 기대했다. 그 예수님이 너무나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절망에 빠져 고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한 동행자를 만나 서로얘기를 나누는데 성경 예언자들의 말로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해석이었다. 때가 저물어 함께 식사하게 되는데 그가 떡을 가져 축사하고 떼어주시니 두 제자 눈이 밝아져 주님이신 줄 알아본다. 순간 주님은 더 이상 보이지 않으셨지만 너무 분명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들은 곧장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떠나지 않았어요. ‘곧 그 시로’ 즉시 떠났다. 약 11Km 그 어두운 밤길조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 벅찬 기쁨을 누가 알까?
첫째,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때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 두 제자는 서로 말한다. 말씀이 알아질 때에 그렇게 느꼈다는 거다.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면 여러분도 이런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요. 어떻게요? 마음에 간절함이 있으면 돼요. ‘주님,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내가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 나의 죄가 어떠한지,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꼭 되고 싶어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나의 모든 것 아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어떻게 응답하실지 기대가 되지 않는가?
여러분, 세상에서 무엇이 소중할까? 연극배우로 살려고 하니 집에 가져오는 게 없어 공사장에서 일하고 협회에 나가 일해야 하며 잉크충전 가지고는 수입이 안 돼 택배도 대리운전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자녀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직장수익 올리기 위해 밤새는 등 극한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애쓰고 얼마나 바쁜지, 여러분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려고 작정했나요? 그런 적도 없었어요. 이 세상 언제 어떻게 떠날지는 아무도 모르죠. 우리 생명 영원하지 않고 장수하는 거북도 천년만년 살진 않아요. 상하좌우 앞 뒤 수백만 광년거리 무한대우주공간을 가득채운 하늘의 별들도 생겼다가 언젠가 사라져요. 우리 인생 10년, 20년, 30년 전, 40, 50, 60년 전도 잠시 엊그제 같지 않은가! 오늘하루도 어김없이 지나가듯 한 달, 1년도 10년 20년도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이 세상이 좋으면 얼마나 좋으랴! 부귀영화 누리면 얼마를 누릴까? 하지만 정신없이 사방으로 튀며 살다가 도리 없이 죽어가는 인생이 전부라면 너무나 허무하죠. 우주공간도 우리 인생도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면 의미 없다.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아무 것도 아닌 거죠.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진리는 죽음이후의 세계가 반드시 있다는 거다.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창조주 하나님 형상으로 빚은 인간에게 영벌과 영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믿는가!
영국의 로지경은 영국의 물리학자였고 버밍엄대학의 창설자다. 그의 아들이 1차 대전 당시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했다. 그런데 아들은 전사하기 전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아버님 제가 죽더라도 제 무덤엔 오지 마세요. 전 거기에 없을 테니까요." 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도 아들에게 '내가 죽거든 장지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아무데나 묻어주기 바란다. 나는 바로 하나님께로 가게 될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처럼 떳떳하고 편안하며 자유롭다. 그 이유는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부활만 아니라 우리의 부활을 확신하며 선포한다. 고전 15:19,20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보다 더 확고한 확신과 고백이 있을까요?
주님께서 십자가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을 확신하는가! 당시 주님의 제자들은 너무나 기뻐서 오히려 믿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던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죠. 그래서 “내가 그의 손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고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고 했던 그에게 8일이 지나 찾아오신 주님은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대로 되돌려 말씀하시죠. 마치 옆에서 듣고 계셨던 것처럼. 도마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마가 자기 손을 내밀어 확인했을까요? 아니다. 도마는 그 즉시 고백한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요 20:28) 주의 부활은 확실했고 제자들은 더 이상 부활을 의심할 수 없었다. 비록 칼에 목이 베이거나 사자의 밥이 될지라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다시 살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어떻게 부활이 가능할까?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니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둘째, 값진 죽음 후에 오는 영원한 기쁨이 부활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십자가죽음도 거치지 않는 부활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답답해요. 가끔 불안하며 불행하다고 여기며 삶에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때때로 실망하며 허물어진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죠. 성경에 보면 예수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사람은 구레네 시몬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십자가에 달리진 않았다. 오늘 우리도 십자가 지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려 하진 않아요. 다시 말해 내 자아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내 삶에 그치지 않는 문제가 돌출된다. 늘 마음에 고통하며 불안해하며 평안을 찾지 못해요. 돌아보면 불평거리가 쌓이는 거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폭발한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섬기지 못해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먼저 예수님을 그린 다음 그 주변에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치며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조하는 군중들을 그렸다. 그런데 그 군중들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얼굴로 그렸다. 왜냐면 '이 군중 가운데 내가 있다.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장본인이다.'라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못 박았습니다. 내가 예수를 못 박는 이 무리들과 한패가 되었습니다.'하고 고백하고는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대성통곡을 했노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송명희 시인은 태어나면서 얻은 뇌성마비로 온갖 어려움을 다 겪는다. 전신마비에다 온 몸이 통증으로 시달린다. 단 5분이라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지 않고 십자가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부활의 그 날을 고대하며 살아간다. 그녀를 낳아 키우며 항상 지켜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딸만큼 그 부활의 날을 고대하지 않을까? 주님도 말씀하셨다. 요 12:23-26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참 역설적이다.
이처럼 내가 완전히 죽고 나를 미워할 만큼 희생하지 않으면, 나를 끝까지 내려놓고 나를 깡그리 비우지 않으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주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지 않으면, 우리 주님 약속하신 그 부활의 찬란한 영광과 그 놀라운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거요. 그런즉 부활의 놀라운 기쁨과 참 권능을 맛보려면 주님 십자가에 내가 달려야 한다. 주님 손 못 자국 만지며 나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내가 죽어야만 다시 살아요. 이 땅에서 천국은 내가 죽어야만 이루어진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세례를 말하면서 6:5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8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6:11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선포한다. 죽음 후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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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처럼 그토록 신뢰하던 주님의 참혹한 죽음 앞에 삶의 의미 찾지 못해 뿜어내는 긴 한숨, 늘어진 두 어깨, 초점을 잃은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와 말씀하시며 힘을 주셨던 부활의 주님, 그 때에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뜨겁게 달구었던 영적인 회복이 오늘 우리 가운데 반드시 일어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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