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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 / 2017.3.19.
김동진 2018-12-22 추천 0 댓글 0 조회 467
[성경본문] 요한복음14:15-26 개역개정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홍대입구나 한강공원에 가면 젊은이들이 허리를 감싸거나 손잡고 걷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을 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걷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오늘 바쁘더라도 시간 내 보기 바란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그 길을 가야하는 예수님은 남아있는 제자들이 얼마나 힘들며 두려울까를 아시고 대신 성령을 보내겠다고 제자들에게 약속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다. 그런데 주님은 보혜사라 소개한다. 즉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삶을 변호하거나 우리의 보호자, 협조자가 되신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생각해서 성령이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으며 제자들 속에 거하도록 하셨다.(16,17) 그래서 제자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활기찬 삶을 살았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후 그들 속에 보혜사 성령이 내주하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란 성령이 나와 함께하심을 알고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생활이다. 혹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해 보라. ‘하나님아버지’ 자연스레 나오지 않은가! 그러면 주의 성령이 여러분 속에 거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사도바울은 롬 8:14-15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워해야 할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이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가끔 기도는 하지만 여전히 내 생각대로 살고 있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는다면 바른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을 탄식하게 하는 거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에 감사하기 바란다.

 

 

첫째, 여러분은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다. 필리핀남부 쫄로아노 모로족은 성령을 ‘계속하여 옆에 서서 같이 가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그렇다. 성령은 주를 믿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동반자시다. 보이진 않지만 항상 함께 계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우리 죄 사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 믿는가! 그런데요 이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무기력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 속에 성령은 계시지만 우리가 그 성령의 도우심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물려받은 자동차는 뒤에서 밀어야만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학교 어린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2년 후 후임 선교사에게 자동차를 인계하면서 어떻게 시동을 거는지 설명했다. 가만히 자동차 엔진부분을 살피던 젊은 선교사는 “이건 별 거 아닌 데요!”하며 느슨해진 줄을 단단히 조였다. 그리고서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선임선교사는 2년간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면서 지낸 셈이다.

 

 

성령은 믿는 사람의 마음에 거하신다. 그러나 그분과 교제하는 법을 모르거나 그분의 도우심을 전혀 구하지 않고 도우심 받지 아니하면 마치 자동차를 밀어서 시동을 거는 패배의 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면, 자신의 능력만 생각하고 세상기준을 따라 살아가면 잘 사는 것 같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사탄이 수시로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기 때문이다. 혹 세상 이런저런 일로 마음을 상하게 하며 여러분의 믿음을 흔들어놓거나 마음에 큰 두려움을 주지는 않는가! 여러분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점점 몰아가며 믿음의 세계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일에 매여 살도록 하지 않는가! 기억해야 할 진리는 우리 몸은 주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는 거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했다. 그러니 성도는 성령의 사람임을 알고 성령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 비밀을 놓쳐버리기 쉽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한없이 연약해요. 우리 스스로는 절대 사탄을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바울은 전한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하였다. 믿는가! 그러니 힘내기 바란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성령이 누구신지, 잘 모르는 분이 있는가? 예수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거룩한 영이다. 언제든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둘째, 성령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다시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이다. 십자가지기 위해 떠나가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로 다시 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무슨 지병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죽으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고 말았다. 참혹한 십자가형을 당하고 운명하시는 것을 본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해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는구나!’ 제자들은 성령의 임재를 실감했다. 성령의 충만함을 기도했고 초대교회가 형성되면서 복음의 사도들이 된 것이다. 이제는 죽음도 두렵지 않은 담대함이 생겨났다. 어디를 가든지 당당했다. 생명의 복음을 전했다.

 

 

러시아에서 사역했던 사관부부의 간증을 들었었다. 제니스첸이란 곳은 복음전하기가 무척 어려운 곳이었다고 한다. 항상 보디가드를 두어 잠잘 때에나 화장실에 갈 때도 항상 동행했다. 한번은 야외용 텐트에서 묵게 되었을 때 어린소녀가 치맛자락을 끌며 할 말이 있다하기에 잠시 그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가 이런저런 이야길 듣는데 느닷없이 그 사람이 어깨를 쥐고 끌며 “나 없이 혼자 있다간 죽을 줄 알아요!” 경고했다. 그때야 좀 지나치다 생각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여사관은 그 말이 자꾸 메아리친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함께 사역하던 한 자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말이 예사롭지 않다는 거다. “나 없이 혼자 있다가는!”

 

주님 없이 혼자 있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생명의 길 열어 살려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지 너무나 잘 아시기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416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시니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주께서 택하신 후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약속이다. 절대 혼자 있게 하지 않으신다는 약속이다. 사랑하는 군우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늘 옆에 계신다. 항상 변함없이 지켜주신다. 여러분 인생을 책임지시는 주님이심을 믿기 바란다.

 

 

중앙멕시코 오토미 인디언그리스도인들은 보혜사 성령을 달리 “우리 영혼에 따스함을 주시는 분”이라 이해한다. 온갖 죄와 세상염려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혼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이라면 그분을 통해 주님의 크신 사랑 느끼시길 바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돌보신다. 나의 참 목자이기 때문이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님 말씀하셨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 14:21 “내 계명을 간직하여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 했다. 그 사랑의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 나타내길 원하신다. 오늘도 주의 성령에 따스함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예수께서 그냥 ‘보혜사’라 하지 않고 ‘다른 보혜사’라 함은 자신 역시 ‘파라클레토스’보혜사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분 보혜사가 종류라든지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다른’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이질성을 강조하는 ‘헤테로스'(막 16:12 ; 행 2:4)가 아니라 내용은 동일하나 다른 개체임을 보여주는 ‘알로스’이다(마 12:13 ; 계 6:4) 보혜사성령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면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26절) 모든 것을 가르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혜사이고 또다른 보혜사라 했으니 하며 보혜사 이만희 신천지가 등장했다. 이단들이 자칭 예수라 하며 들먹이는 성경이 바로 여기다. 엄청난 잘못의 시발점이다. 그리고서 따르는 교인들에게 맹목적 헌신을 요구하며 부를 축척하고 있다. 보혜사를 사람으로 이해하는 순간 진리에서 멀어진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란 ‘곁에서 돕는 자’, ‘대언자’ 란 뜻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보혜사였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돕는 자 되어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셨다. 그들의 대언자가 되어 제자들을 변호해 주셨다. 이제는 그 역할을 성령님께서 대신 한다. 오히려 이런 도우심은 더 완벽하다. 예수님은 시공간에 얽히실 수밖에 없지만, 성령님은 언제 어디에든 계신다.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래서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임할 수 있고, 또 우리 곁 정도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 우리 마음속에 계신다.

 

 

성령님은 무엇보다 우리의 좋은 변호사가 된다. 보혜사란 대언자, 곧 변호사란 의미도 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대신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변호해준다. 마태복음 말씀(마10:18-20)이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초대교회 제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도우시는 성령의 은혜를 실제 경험하였다. 지금도 그렇다. 좋은 변호사가 도우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돈 많은 사람은 대형로펌이나 전관예우에 해당하는 변호사 찾기에 급급하다.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좋은 변호사가 되셔서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 있기를 축원한다. 이 시간, 주의 은혜를 구하자. 성령의 충만한 은총이 임하기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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