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세군은, <전도사업 없는 사회사업이란 있을 수 없고, 사회사업 없는 전도사업 또한 없다>고 한다.
2). 위리암 부스 대장은 1907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주, 윌리암 부스를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조차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기에 일부러 이 부분 발췌해 여기다 옮겼다)
3). 윌리암 부스 부인 케더린 부스(주, Catherine Booth/1829~1890)는 고치기 어려운 암에 의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런던 소재 조합교 대회당에서 구름처럼 모여 든 대중에게 고별인사 연설을 했다. 그리고는 곧, 클락톤 바닷가에 가서 정양 중, 1890년 10월 4일 조용이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61세. 남긴 저서로는 <실천적 종교>, <경건>, <세속적인 그리스도>, <구세군과 국가와의 관계> 그리고 <삶과 죽음>등이 있다.
4). 윌리암 부스는 때때로 형무소에 가서 죄수들에게 설교를 하였는데, 형무소의 낡은 시설 보수와 아울러 죄수들 신변 처우를 개선해야 할 필요를 발견하고 당시 내무대신인 윈스턴 처칠(주, 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후에 수상을 역임했다. 그런가하면 뛰어난 화가였으며 또 노벨 문학상도 수상했다./1874~1965)을 직접 면담 요청, 이에 대해 당당히 건의했다.
그런 다음, 윌리암 부스는 작별 인사 나누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 때에 그 처칠은 배웅차 뒤따라 나와선 익살을 부리면서 <여보십시오, 구세군 대장! 내가 지금 형무소의 여러 잘못 된 문제에 관하여 회심(Converded)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윌리암 부스는 즉각 <회심하였다고는 여겨지지는 않는데요. 그러나 죄를 인정(Convicted)하였다고는 생각이 드는군요.>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주, 여기서 우리는, 처칠이 질문으로 선택한 단어와 윌리암 부스가 사용 구사했던 답변 단어를 서로 비교해 보자. 참으로 미세한 풀벌레소리 같은 발음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윌리암 부스가 얼마나 능수능란하고도 기지 넘친 말솜씨 이었는가를 알게 된다. 윌리암 부스의 그 인물다운 점은 여기서도 여실히 잘 드러났다고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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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7월 성문학사 간행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 128페이지로 부터 133페이지까지 내용중 발췌. 저자 金春培. 그는 대한기독교서회 총무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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