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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보라! / 2015.7.26.
김동진 2017-03-09 추천 0 댓글 0 조회 240
[성경본문] 요한복음1:35-46 개역한글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저희는 사관으로 지내면서 마치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을 몇 군데 알고 있다.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들길이 하나인데 화폭에 넣은 것 같은 색깔 선명한 꽃길은 잊을 수 없다. 한 목사님 가족이 여행을 왔다가 심장이 멎는 듯 한 감동을 받은 곳이다. 또 한곳은 북 섬 끝자락 가까운 어느 순백색모래톱이다. 정말 눈부시다. 바닷물의 바닥이 그대로 보이다 못해 튀어 올라올 것만 같은 최고 청정지역이다. 아무리 입으로 설명해도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이때 쓸 수 있는 한마디는 “와 보라!”는 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거다.

 

“와 보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누구에게? 예수님의 제자인가? 아니다. 세례요한의 두 제자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저기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 뒤를 따라간다. 졸랑졸랑 따르지만 머나먼 당신이다. 선뜻 가까이 하고 싶지만 낯설고 어렵다. 예수님이 돌아서서 말을 건네죠. “무엇을 구하느냐?” 뭘 원하지?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어쩌면 동문서답이다. 한두 마디 질문으로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아신 예수님은 “와 보라!” 만남을 허락하신다. 그 날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주의 말씀도 듣고 예수님을 알아가게 되었다. 둘 중 한 제자는 안드레였고 안드레는 곧장 형 시몬에게 달려가서 전한다. “형, 우리가 메시야, 그리스도를 만났어!” 그리고 형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어요.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 ‘와 보라!’만남은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 낸다. 이 말에 따름으로 세례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고 그 한사람 안드레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난 그의 형 시몬은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42절,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신다. 다른 말로 반석이라는 뜻 베드로를 말한다. 다음날 갈릴리로 나가시면서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한마디에 예수님을 따른다. 안드레 베드로와 한동네 사람이다. 빌립은 즉시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한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인물이 나겠느냐?” 이때 빌립도 “와 보라!” 답한다. 와서 만나보면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다나엘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 만나 새로운 시작을 이미 했다. 고후 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만나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살면서 새로운 게 그리 많지 않고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산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우리이기에 주님 앞에 항상 새 날을 주심에 감사하며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감을 감사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미국의 철학자 클레이풀 교수가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거기서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 장애를 가지고도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클레이풀 교수는 질문한다. “내가 만일 당신이라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밝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는지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내게 가진 것은 너무 많아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명작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마음에 예수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물이 많은데 왜 내가 슬퍼해야 하나요?” 클레이풀 교수는 그 소녀의 고백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는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그녀로 인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매우 논리적인 철학교수의 마음을 녹이고 움직이는 힘이 너무나 연약한, 아니 몸을 가누기도 힘든 1급 장애인 소녀에게 있었다. 예수그리스도가 그녀의 전부인 장애인소녀, 참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소녀에게서 새 삶을 살게 한 것이다.

 

여러분 때문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를 축원한다.

 

 

둘째, “와 보라”에서 참 신앙은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은 단순히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낀다. 가슴 뛰는 구원의 감격을 가진다. 영적인 세계는 체험을 통해서 체득된다.

 

사도요한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은 단지 종교적인 스승이 아니라 태초에부터 계신 말씀이었고 생명을 주는 빛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생을 마칠 무렵에 쓴 요일 1:1에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신앙은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듣는 것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고 손으로 만져볼 정도로 무언가 다르고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개개인의 체험이 없이는 신앙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하여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을 때 평강을 선포하시며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하필 도마가 없었다. 그러니 주님을 보았다 하는 제자들의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그의 손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한다. 8일 지나서 다시 나타나신 예수께서 도마에게 “그래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신다. 그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백한다. 신앙의 체험은 참 중요하다. 그것이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네 모든 일에 참견하며 말 만들어내지 말고 주변이웃을 잘 섬기므로 “예수 믿더니 정말 달라졌어!”라는 칭찬 듣게 되길 바란다. 신앙은 삶의 향기로 전달된다. 속일 수 없다. 진심은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사람들은 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다. 전도는 말로서가 아니라 삶으로 말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복음의 도구가 되길 축원한다. 

 

 

세 번째, 신앙은 나누는 것임을 말씀한다. 세례요한의 두 제자가 “와 보라!”하신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 말씀도 듣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포켓볼이 있었다면 함께 치기도 했을 것이다. 자연스레 나눔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믿음공동체 안에서의 나눔이다. 여기서 머물었다면 아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알 길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복음의 소식은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어 전 세계에 퍼진 것이다. 누구 때문에? 내가 받은 사랑과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목숨 걸고 복음 전했던 분들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틴델은 1535년 영국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아무나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면 불경죄에 걸린다. 법정은 그의 높은 학문을 아까워해서 틴델에게 ‘지금이라도 죄를 시인하고 번역을 중단하겠다면 사형은 면하겠다.’고 했다. 그 때 틴델은 “지금 내가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저 밭에서 소를 몰고 있는 소년이 당신들보다 성경말씀을 더 많이 아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저는 할 일을 한 것이다.” 대답했다. 목숨보다도 복음이 전해짐을 더 기뻐한 틴델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안드레가 형 시몬에게로 달려간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에, 혹은 말과 문화가 전혀 다른 또 다른 민족에게 복음 전했던 선교사들의 열정은 참으로 놀랍다. 그 누구도 이전부터 알아온 친구가 아니지 않느냐? 이름도 성도 전혀 모르지만 불쑥 다가가 복음을 전해 본 경험이 있는가?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교회를 나오게 된다면 그 가슴 뛰는 감격을 무아라 표현할 수 있을까? 왜일까? 복음은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내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거다. 정말 좋은 거라면 자랑하지 않을까? 많은 분들이 식탁에서도 차 안에서도 손녀 동영상을 보여준다. 슬쩍 핸드폰에 담긴 손자 사진을 보여준다. 그저 자랑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분이 있다면 정말 소개하고 싶지 않을까! 미치도록 자랑하고 싶지 아니할까!

 

초대교회가 형성될 무렵 사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자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심히 불편해한다. 만일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바라던 메시아라면 그들은 설 자리를 잃어 큰 타격을 입는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 그들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잡아들이고 심문한다. 산헤드린 공회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병 나은 사람이 함께 있으니 사도들을 비난할 말을 찾지 못해 경고하여 앞으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한다. (행 4:19,20)“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준다.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놓기가 부끄러워 뜨거운 한낮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여인이 주님을 만나 구세주임을 알게 되자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 얼마나 당당한가! 갈까 말까 멈칫멈칫한 게 아니다. 너무나 받은 은혜가 커서 가슴이 떨리는 고백이었다. 바울도 롬 1:16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다.

 

성도여러분,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교회 안에서만 간증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도 받은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고 나누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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