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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림 / 2015.12.13.
김동진 2017-04-17 추천 0 댓글 0 조회 520
[성경본문] 베드로후서3:8-13 개역한글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루하루 일상에는 작은 기다림이 있다. 버스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행렬 속,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따뜻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손길, 봄철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속에,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포부 속에도 기다림이 있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에는 크고 작은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기다림에도 기쁨과 행복으로 기다리는 사람과 두려움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10절“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기다림에는 피하고 싶은 기다림이 있다. 갚을 건 없는데 빚쟁이가 독촉하는 그 날을 맞아야하는 기다림, 심한 통증을 견디며 초조하게 수술시간을 맞이하는 그 기다림은 그 자체가 고통이며 두려움이다. 그러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기다림도 있다. 결혼할 날을 잡고 그 날을 준비하는 신랑신부의 기다림은 행복 그 자체이다. 전역할 날을 달력에 표시하며 학수고대하는 말년 병의 기다림은 희망 그 자체이다. 신앙도 기다림이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는 홍수로 심판하겠다는 하나님 약속을 믿고 방주를 지으며 120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노아는 미친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취해 살던 사람들에게 많은 손가락질 당한다. 그는 기다림 때문에 고난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날은 왔고 노아가족을 제외한, 죄악에 빠졌던 모든 사람이 홍수로 심판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자신이 살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25년이나 지난 후 100세가 되어서야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리라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는다. 그렇지만 이삭을 얻은 후에도 400년이 훨씬 더 지나서야 큰 민족을 이루고 출애굽하게 되었다. 홍해를 건넜지만 광야에서 40년을 더 기다리며 훈련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광야에서 그들은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경험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린다고 함은 기다릴 분이 있다는 말이다. 그분이 곧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다.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힘을 얻는다. 왜냐하면 그분을 바라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 40: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여기“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은 영어성경 KJV에 “Wait upon the Lord”라 번역한다. 즉 주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New International Version에는 “hope in the Lord”라고 되어 있다.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니라 희망이며 여호와를 기다림으로 새 힘 얻게 한다. 왜냐면 주님을 바라볼 때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아직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구약의 율법에 매여 있으며 참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구주 예수성탄의 기쁨을 전혀 모른다. 성탄절이 없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마 24: 43~44에“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주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냥 막연하게 시간만 보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등불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은 우리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주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의 날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 기다림 쉽지 않다. 초대교회 박해받던 이들에게 이 기다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A.D.64년경은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었던 시기이다. 주님께서 빨리 오시지 않는다면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로마 카타콤 그 좁은 지하무덤에서 신앙을 지키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순교 당하는 고통을 목격해야 했던 크리스천들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들의 삶이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았다. 당시 죽어가는 크리스천을 바라보며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결국 로마 황제는 크리스천들의 처형을 금하게 된다. 용기 있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며 로마시민들이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순교보다 배교의 치욕을 맛보도록 회유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폴리갑교부에게 주님을 모른다고 하면 살려 주겠노라고 로마 군인들이 회유했으나 폴리갑은 “내가 평생을 사는 동안 주님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부인하리오.”라며 순교 당한다. 그는 죽음 가운데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다.

 

따라서 우리에겐 주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 기다림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 8절“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우리가 기다림을 못견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생각으로 날 수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수백만 광년 온 우주와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 이천년은 결코 오랜 시간이 아니다. 하루가 천년 같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때로는 의미 없고 무기력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토록 안타깝게 바라보며 우리를 응원하고 계시다.

 

롬 8:26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했다. 우리가 무심히 흘러 보내는 시간들조차 천년처럼 여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람된 순간으로 가득한 여러분의 일상이 되길 바란다.

 

또한 천년이 하루 같음에 대해서는 본문 9절에서 설명해 주신다.“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께서 지금 오시면 심판받을 사람이 너무 많다. 현실을 바라보면 속상할 때가 많다. 악인들이 흥하고 죄가 판을 치는데도 주의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 악이 이기는 것 같다. 그래서“하나님은 왜 잠잠하십니까?”항변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그들만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마음대로 살아온 시간들이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품을 떠난 탕자처럼 오늘도 참고 기다리는 하나님이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을 하루 같이 오래오래 참으시는 주님의 기다림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 기다림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고통 가운데 나를 버리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본문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는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참고 있다. 그분께서 종말을 유보하고 계신 것은 한 사람도 잃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삶을 고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베풀고 계신다.”나의 삶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그런 결단의 기회를 주께서 허락하신다.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주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준비된 사람들에게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 기다리는 것이 축복임을 알 때, 초조하지만 지루함이 아닌 희망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어렸을 때 소풍 가는 게 참 대단한 일이었다. 김밥 싸고 달걀을 삶고, 사이다 한 병 들면 참 좋았던 시절 말이다. 아마도 특별한 것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기에 그렇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왜 그리 시간이 안 가는지. 그런데 그 날이 온다.

 

우리가 지금 대강절 기간을 지나고 있다. 예수의 오심을 보았던 두 사람 이야기가 눅 2장에 나와 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인데, 25절에“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했고 또 한사람은 안나라는 선지자다. 37절에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했다. 그토록 기다린 그들이 주님의 오심을 눈으로 보고 선포하는 자들이 되었다. 아기 메시야를 직접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그들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청년 여러분이 정말 진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가슴 뜨거워지며 하늘의 비전도 보게되는 체험을 반드시 했으면 좋겠다.

 

오늘 본문 11절에이 모든 것이 풀어지는 때”가 온다. 그때“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준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한다. 약 1: 26~27에“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했다.

 

대강절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경건이다. 하지만 경건을 우리가 지키려 한다면 곧 절망하게 된다. 늘 마음으로 깊이 삼가고 조심하며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여러분에게 경건한 삶이란 주의 은혜를 갈망하며 자신을 주님 앞에 세우려는 결단을 말한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정직하게 살고자 하며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며 주님을 나의 주인 삼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이 땅에 구주로 오신 주님을 갈망함으로 가득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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