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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들, 예수 / 2016년 2월 7일
김동진 2017-06-04 추천 0 댓글 0 조회 341
[성경본문] 요한복음5:19-25 개역개정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말하는 예수를 유대인들은 곱게 볼 수가 없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무시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 종교에 정면 대결하는 거만한 사람으로 보였을 거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엄청난 선포였다. 큰 충격이었다. 의아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예수님은 그 관계를 설명해 주신다.

 

첫째, 하나님은 아들에게 보여주시는 아버지이다. 19절에,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하셨다. 우리가 태어날 때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지만 자라나는 환경은 부모로부터 주어진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는 부모를 보며 배운다. 자녀에게 숨길 수 없고 자녀도 부모의 성품을 닮아간다. 그러면 자녀에게 남겨줄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일까? 부동산이나 통장이 아니며 재능도 아니다. 바른 가치관, 바른 생각, 바른 신앙이다.

 

링컨이 상원에서 취임 연설하는 단상에 섰을 때, 어느 늙은 귀족이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미스터 링컨, 어쩌다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예전에 당신이 당신 아버지와 함께 우리식구들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우리 집을 드나든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오.”이때 링컨은 답변하였다. “내가 상원에서 첫 연설하기 전, 아버지를 생각하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멋진 창조적인 예술가였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든, 내 아버지가 위대한 예술가였듯이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되진 못할 것입니다. 나는 결코 나의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만들어드린 구두가 여러분 발에 잘 맞지 않거든 내게 말씀하십시오. 나도 아버지에게 배운 기술이 조금 있으니 최소한 수선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장내가 조용해졌다. 하찮은 구두 만드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링컨의 훌륭한 인격이야말로 바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로부터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나도 행한다고 했다. 아버지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창조적인 삶이다. 하늘의 거룩한 비전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며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능력이다. 사도바울은 빌 2:13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는가? 어떤 소원을 가져야 할까? 개인의 욕심이나 이기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바울이 그림으로 그리는 소원이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아라. 빛의 자녀답게 살아라! 는 것이다. 여러분 삶속에 진정 여러분을 지으신 아버지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으로 가득하길 축원한다. 

 

 

둘째,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다. 예수님은 20절에“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일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셔서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나 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모든 자녀가 알까? 그렇지 않다. 자녀는 반드시 분명한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는가? 저희 집은 5남매와 이웃사람들이 인정하는 마음씨 좋은 아버지셨다. 사업에 크게 실패해서 술을 너무 드시다보니 가장의 역할을 못하시고 술에 취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신 것이다. 청소년기 저희 5남매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는 여전히 마음 따뜻한 아버지로 남아 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우리가 잘 모른다. 예수님만 정확히 아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여주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여주실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 했다. 그 놀라게 될 첫째는 21절“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린다.”는 것이다.

 

죽을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1993년 12월 호주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어느 바닷가 갔더니 탁 눈에 띄는 것이 생명구조대원(life-guard)과 그 역할이었다. 딱 벌어진 어깨에 그을린 근육질 몸매는 멋져보였다. 하지만 바다라 아차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고 쉬운 일이 아니다. 불 끄는 소방대원도 종종 치솟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생명을 구한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잃기도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셨다. 요 10:10,11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이라도 버린다.”라고 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영생의 진리를 압축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의 계획이며 누구의 사랑인가? 하나님아버지의 계획이며 하나님아버지의 깊은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울은 롬 5:8에서 명쾌히 선언한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했다. 곧 그의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타내신다는 거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던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이 큰 농장에서 무거운 짐을 수레에 싣는 노예들을 목격하였다. 그런데 그 중 눈에 띄는 노예가 있었다. 감독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도 고개와 등을 곧게 세우고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 노예에 대해 방문객이 궁금해 하자 농장주인은 대답했다.“그는 아프리카왕의 아들이란다. 결코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법이 없답니다.”즉, 왕의 아들이어서 당당하다는 거다.

 

만왕의 왕이시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아버지께서 아들을 친히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하나님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죄로 죽을 우리를 살리시려고 온갖 고난을 당하실 뿐 아니라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 이것이 복음이다. 

       

또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다는 사실이다. 22,23절에“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왜냐? 모든 사람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명절 앞두고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린다. 선수 두 사람이 샅바를 잡고 일어서면 심판은 두 눈 부릅뜨고 누가 먼저 모래판에 닿는지를 살핀다. 승패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심사위원의 권한은 대단하다. 이 세상에서는 수없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 도전하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향방을 정하는 최후의 심판에서는 절대로 다음이 없다. 천국이 아니면 지옥이다. 그 심판의 권한을 하나님아버지께서 참 아들에게 넘기셨다 했으니, 우리는 완전 아들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심판에 대해 무지하다. 별 관심도 없고 종교적인 위협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사람이 살만큼 살다가 죽은 후에는 한줌 재로 남거나 차디찬 땅속에 묻히고 마는가! 달리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얼마나 허망한 인생이 아닌가! 살아서 행복한들 그 행복이 백년도 가지 않으며 그 백년도 보장받지 못해요. 숱한 고난과 가시밭길이 이어져요.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각자 살아계신 하나님아버지께 반드시 물어야한다.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나에게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닌가!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알았는가? 아무도 모르고 태어났다. 죽음 이후에 어떨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성경은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 만일 심판이 없다고 좋아할 이유도 없다. 죽어 사라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이 없다 하면서 왜 죽음을 그렇게도 두려워하는가! 그러나 만일 심판이 있다면 도리어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 왜냐하면 그 심판을 행하는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요 5:24,25“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보다 강한 메시지는 없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최후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러분이 아멘으로 들으면 살아난다. 진리의 말씀이 들어오고 살아나 영생의 은총을 얻게 된다.

 

입시에서는 한 문제라도 더 맞춰 점수를 올려야 한다. 시험에 패스하기 위해 밤잠을 줄여서라도 공부에 힘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시험에는 하나님아버지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된다. 우리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믿음이 자란다.

 

여러분 인생에 주님께서 친히 주인이 되어주심으로 끔직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축복이 임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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