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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신 예수 / 2016.6.19. (북한선교주일)
김동진 2018-01-07 추천 0 댓글 0 조회 257
[성경본문] 요한복음8:12-20 개역개정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밤중에 자다가 불을 켜면 눈이 부신다. 반대로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순간 앞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분별이 가능해진다. 극장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왜 그런가? 우리 눈의 조리개가 갑작스런 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밤에 길가로 나와 차에 치어 죽는 동물들이 많다.

 

여러분은 환한 빛의 강렬함에 꼼짝없이 붙들린 경험이 혹 있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모조리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춰옴과 동시에 그는 땅에 쓰러졌다.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그가 들은 하늘의 음성이 무엇이었는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주여, 누구십니까?”“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다.”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길을 가던 중이었으니 사물을 분별할 정도는 되었을 거다. 사울과 동행하던 일행도 소리는 분명히 들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탈 없이 평상시처럼 길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결국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12) 했다. 이것이 주님께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선포했던 메시지 전부인데 너무나 간결하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어느 날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다. “누구의 죄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한마디 더하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다.”(요 9:5)그리고 그 소경의 눈을 고쳐서 눈을 뜨게 해주셨다. 사도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접근을 하면서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셨다.”(1:9)고 증언한다.

 

여기서 주님의 빛은 어떤가? 첫째, 모든 사람에게 빛이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곧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실제로 주님은 그에게 오는 자를 구별하지 않으셨다. 소경 거지도, 부자 세리도, 간음한 여인이든 산헤드린의회 의원 니고데모이든, 건강한 자든 병든 자든, 사마리아여인이든 성전의 제사장이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으셨다. 당시 천대받던 어린아이라도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본처의 집에서 숱한 구박과 천대를 당하고 설움 속에서 자란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성격은 당연히 비뚤어지고 우울하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전도대가 지나가면서 “예수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였다. 그러자 그는 전도대원을 붙들고 “기생의 아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질문했다. 그때부터 예수 믿고 변화되어 일본 최고 복음전도자요 저술가가 되었는데 그가 곧 가가와 도요히꼬란 분이다.

 

오늘날 남과 북이 체제와 이념이라는 장벽으로 나눠져 소통하지 않는 가운데 신앙의 자유는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최근 극한 어려움과 어두움 아래 살기 힘들어 탈북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언제라도 북녘동포들도 통일되어 우리처럼 복음의 소식 듣고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와야 한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세상의 빛이 되셨다.

 

둘째, 생명의 빛이시다. 이 빛은 어두움을 몰아낸다. 밝음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우리 속에 기쁨을 샘솟게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빛 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마다 치유의 은혜가 임하고 삶에 생기가 돋으며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병원 X-ray나 방사선치료가 아니다.

 

그러면 누가 이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을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게는 왜 삶에 지쳐있고 참 기쁨이 없을까? 궁금한가? 빛 되신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무엇인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에는 집 앞에 조그만 정원이라도 있었다. 한번 시들어가는 꽃을 뽑아버렸더니 이사관이 못내 아쉬워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콩꽃이라나?...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뒤집어엎은 화단에 어느새 콩 싹이 올라온 것이다. 그것도 여기저기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흙에 떨어진 콩 씨앗들이 나오지 말라 고해도 자기 모습을 부수면서 뿌리를 내린다. 또 싹을 틔운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는 우리도 나를 깨트리면서 발아하게 된다. 주님의 생명이 내 속에 활동하여 자라가도록 주님의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며 생명의 기쁨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어가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니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인간창조 이후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성경에서는‘유리하는 자’가 되었고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창4:12,16)고 기록되어 있다. 그 가인의 모습은 우리 역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본은 중국, 미국과의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 총알받이로 사용했다. 젊은 처녀들을 억지로 끌고 가 위안부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들에게 자기네 왕이 살고 있는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궁성요배, 일본 귀신들에게 절하는 신사참배까지 강요하였다.

 

8.15 해방 이후 북한도 이에 못지않았다.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새벽잠 자고 있는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 겨누고 남쪽으로 쳐내려 왔다. 이렇게 시작된 동족상잔의 피바람 3년은 너무나 비참한 죽음과 이별, 혼란과 파괴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철책선보다 더 길고 높은 미움의 벽이 되어 한반도를 갈라놓았다. 일제시대와 6.25전쟁, 그리고 긴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이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미움과 증오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모든 나라와 민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지난 세월 우리들이 겪었던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전쟁의 상처를 위로해 주시고 치료해 주실 유일한 분이다. 생명을 주시는 빛이시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속에 임하시는 빛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의 빛이다.’하시니 바리새인들이 반박한다. “당신 혼자 말하니 당신 말은 진실 되지 않소.”곧 당신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 주님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다.”(16)고 하셨다. 분명 눈으로 보기에 주님 혼자인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다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분이시며 생명의 빛이심을 믿는다. 그런데 그 빛은 우리 속에도 임한다는 사실이다. 언제일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그 빛은 우리 마음속에 임한다. 그리고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놀라운 주의 은혜이다. 

 

허드슨테일러가 중국선교사로 있을 때 한 젊은 신사가 질문했다. “기독교신자가 되고 싶은데 정식 교인이 되려면 몇 년 걸리고 성경은 얼마나 알아야 합니까?”테일러 목사는 물었다.“촛불은 언제 빛을 내지요?”“그야 심지에 불을 댕기는 순간이겠지요”“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연조나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불러 필요한 인간으로 사용하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 이미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훌륭한 크리스천이지요.”명쾌한 답이었다.

 

혹 나는 내가 바른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 있을까? 그것은 내가 빛의 자녀임을 잠시 잊고 어두움 속을 여전히 헤매며 다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 곧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 몰아쳐도 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비치고 있듯 주님의 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조금도 어두움이 없다. 주님의 빛은 언제나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든다. 우리 안의 어두움을 능히 몰아낸다. 이 세상 어두움과 사탄의 세력이 주님의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빛이 우리 속에 임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어떠신 분인가? 14절 : 자신을 위한 증언이 참되신 분 -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아시는 분, 15,16절 : 자신의 판단이 참되신 분이다.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 분, 우리 죄를 너무나 잘 알지만 그 죄를 묻지 않으시는 분, 용서하시는 분이다. 16절 : 주님을 보내신 분이 함께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그 하나님은 남과 북을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을 먼저 영접한 우리 성도들은 꾸준하게 기도해야 한다.“우리의 빛 되신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이 땅에 이념과 미움의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가 한 민족 한 몸이 되게 하시고 북녘 땅의 무너진 제단들이 다시 세워지고 성령의 새 바람이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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