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8:21-2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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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거듭 반복해서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 죽을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그나마 예수님을 찾으려했다는 점이 기특하다. 하지만 무슨 말일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 아무렇게 사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애를 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내일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자신의 출세를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고 더 나은 직장을 생각한다.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디에 내 마음을 둘지 내가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는데 사실상 없다. 그것이 실력이든 명예든 돈이든 남들이 나를 부러워할 무엇인가를 찾는다. 운수대통하기 바래서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굿을 하고 사주팔자를 보며 점괘가 어떠한지를 묻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목마른 인생이요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이다. 아무리 잘 산 것 같아도 여전히 죄 가운데 죽게 된다. 이 얼마나 비참한가! 바로 죄 때문이다.
나는 선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는데도 결국은 죽음인가!... 그렇다고 죄가 없을까? 롬 3:23에‘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고 했다. 다시 말해 아무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없으며 아무도 우리의 죄 용서받거나 가리심을 받지 않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유일한 길이요 진리이다.
여러분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는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속죄함 받은 성도임을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모든 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흰 눈같이 깨끗이 씻겼음을 믿는가? 죄 때문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나의 죄 통째로 용서해 주셨음을 감사하기 바란다. 이것이 주의 크신 은혜이다.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지금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들도 성경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니 다시 전달되는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즉 여러분은 이 예배와 설교자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군대얘길 하면서 주일성수하기 위해 목숨 걸 정도로 고집했다. 그 고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호되게 맞았다. 군복바지가 떡이 되어 갈아입지 못했다. 요즘 젊은이로서 주일성수하는 것 쉽지 않지만 주의 말씀 듣고자 애쓰는 믿음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나는 떠나간다.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올 수 없다.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예수가 말한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 이 사람이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그래서 되묻는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러면 왜 예수님이 그들 앞에 계셔도 주님이 말씀하신 뜻을 이해할 수 없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너희가 만일 내가 그리스도임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24절)라고 하셨다. 여러분은 죄 가운데 죽는 비참한 인생이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성도이다.
둘째는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던진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유대인들을 구원할 자를 찾고자 했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다음에야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28절) 예수님은 예고하셨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던 사람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들은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시시때때로 고백했다. 베드로는“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백했고 소경거지도“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고백했다. 무슨 차이일까?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소리를 듣나요? 혹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듣는 분 있나요? 창민형제?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곤충학을 전공하는 어느 대학원생은 200종이 넘는 귀뚜라미 소리를 다 구분한다고 한다. 보통사람은 그 소리가 그 소리여. 절대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대학원생은 어떻게 구분이 가능할까? 귀뚜라미 소리만 집중하여 듣기 때문이다. 토끼나 고양이처럼 듣는 귀를 집중할 때 청각이 발달한다. 여러분의 영적 청각구조가 남달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쏙쏙 들려오길 바란다.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와 말씀에 대한 열망이 말씀의 큰 은혜로 다가오게 되길 축원한다.
베다니 어느 가정에 예수님이 방문하셨다. 언니는 부엌에서 열심히 비지땀을 흘리며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생은 예수님 발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푹 빠져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언니 마르다는 약이 올라 씩씩거리며 예수님께 가서 툭 내뱉는다. “예수님, 제 동생도 좀 부엌에 가서 저녁 준비하는 언니 좀 도우라고 말해 주세요.”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너무 황당했다. “마르다야, 네가 식사 준비하는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구나.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아니, 예수님이 남자라 부엌일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지 못하시는 걸까? 부엌일은 안하고 예수님 말씀만 듣는 동생이 어쩌면 언니보다 얌체 같고 이기적인 것 같은데.....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이기도 하다. 미국 신학자 피어슨박사가 6개월이나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 목사를 방문했다. “여보게, 자네는 매우 바쁜 사람이야. 그래서 하나님이 자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셔도 자네는 너무 바빠 그분의 소리를 듣지 못했을 거야. 그런 줄 알고 자네는 병상에서 그분의 메시지나 듣게나.” 충고를 하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자신도 매우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선뜻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하루가 끝날 무렵 서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저도 말씀을 전하는 사관이긴 하지만 말씀을 듣는 일보다 다른 일에 분주할 때가 허다하다. 물론 그런 일들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일에 파묻혀 정말 중요한 시간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푹 빠져드는 말씀묵상의 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 서신에서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했다. 누구든지 사도요한이 전하는 말씀을 대하면 우선 요한의 마음을 읽게 되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어느 순간 친숙해진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이 마땅하고 그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대화의 길을 여신 예수그리스도와 참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이요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분명하다. 그러니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여러분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요 5:39-40)고 책망하셨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험한 산을 오르내리고 게다가 스키를 타기도 한다고 한다. 저는 왕초보인데 스키 타러 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라? 그러나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한 장애인마다 인도자가 한 명씩 있어 의사소통한다. 보이지 않는 장소를 알리기 위해 인도자는 스키 막대를 두드리며 신호 보낸다. 장애인은 소리를 듣고 판단한다. “똑바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천천히, 멈추며, 사람이 다가오고 있음”등의 간단한 지시를 한다. 그러면 시각장애인은 인도자를 믿고 그 지시에 따르면 된다. 이것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비결이다.
사람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언덕 아래로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것과 같다. 우리가 두 눈을 뜨고 살아가긴 하지만 당장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과 갈등이 닥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을 내 삶에 인도자로 모시고 그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염려 없어요. 행복해요. 시각장애인보다 나은 성도의 삶을 누리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인도자는 있는가? 과연 주님이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신가? 나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과 지시에 따르는가? 혹이나 주님을 의지하기가 무척 힘들 때가 있는가? 이 시간 다시 한 번 주님의 도우심이 나의 삶에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29) 다함께 따라 하기 바란다.
“예수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분명하시지만, 저에겐 참 주인이십니다.
나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계시면서 내 삶의 전부를 언제나 이끄시고 주장하소서.
나는 항상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하오니 나를 영원한 생명 빛으로 비추소서!”
성도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언제나 풍성한 삶의 주인공이 다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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