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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양 / 2016. 9. 11.
김동진 2018-01-20 추천 0 댓글 0 조회 592
[성경본문] 요한복음10:7-18 개역개정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은 양의 우리를 비유로 설명해 주셨지만 유대인들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했다.(6절) 그래서 다시 목자와 양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나 여전히 많은 유대인들이 수군거린다. “이 사람이 귀신 들려 미쳤는데 어째서 그의 말을 듣느냐?”그런 반면에 “이건 귀신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오. 아니 귀신이 어찌 소경의 눈을 뜨게 하겠소?”반박한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그때 주님의 말씀이 이해되는가?‘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여러분은 쉽게 이해되길 바란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이다.’어디를 먼저 오고 도대체 무엇을 훔쳐갔다는 말인가? 예수그리스도의 참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우리 정신세계 속에 굳어있는 선입견, 가치관, 종교, 사상 등을 도둑이며 강도라 한다. 그런 것이 다 유익하나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아와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도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주님이 주인 되지 않은 사람도 이미 여러분 마음을 차지한 도둑이며 강도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다. 여러분 모두“주께서 나의 모든 것이십니다”고백하기 바란다. 

 

바른 진리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전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노란 차 한 대가 달리니 모든 차들이 줄줄이 뒤를 따르다가 낭떠러지 앞에서 획 돌아서나 다른 차들은 서질 못하고 바다로 다 떨어진다. 우리 인생이 그러기 쉽다. 이단 종교에 빠지는 것도 이와 같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님은 누구신가?

 

첫째, 7, 9절에서 양의 문이라 하셨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다.’그렇다. 누구든지 예수 믿는 자마다 하나님 자녀 되는 특권을 얻음에서 멈추지 않고 믿는 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들어오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우리가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양이라면 우리 삶이 정말 안전하고 기쁨으로 충만하며 말씀의 은혜로 부족함이 없음을 약속하셨다. 10절에서‘도둑이 오는 것은 양을 훔쳐다가 죽이고 없애려는 것뿐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말씀하셨다.

 

먼저 양의 특성을 생각해 보자. 양은 어리석고 약하다. 양은 시력이 좋지 않아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그리고 양은 판단력이 부족하다. 어디에 물이 있고 어디에 푸른 초장이 있는지 모른다. 바로 앞에 위험한 낭떠러지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뒤따라가다가 여러 마리가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한다. 양은 뿔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다. 사나운 동물의 공격을 당하면 그저 물어뜯기고 잡혀 먹힌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장 내일일도 예측하지 못한다. 판단력도 부족하다. 어디에 행복이 있으며 어디에 기쁨이 있는지 잘 모르고 아무데나 함부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돌아서서 후회한다. 우리도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무엇엔가 정신 팔려 있을 때도 있다. 무엇이 잘못되어 가는지 무엇이 유익인지 모르고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때도 있다.

 

여러분은 양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아야! 나는 양처럼 약하거나 어리석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판단력이 뛰어나고 나를 보호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은 필요치 않은가? 예수님은 그에게로 나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애처롭게 여기시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헤맨다고 하셨다. 여러분, 우리가 양일 때에 주님은 목자 되셔서 돌보신다. 책임지신다. 인도하신다. 옆에 계신 분을 보라! 양이죠? 여러분은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갈망하기를 축원한다.

 

 

둘째, 예수님만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11-15절) 11절에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하셨다. 정말 목자가 양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을까? 눅 15장에 나오는 비유에서 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려 99마리 양을 들에 두고 온 사방을 두루 다니며 찾아나서는 목자로 표현한다. 하지만 가파른 벼랑에 걸려서 발버둥치는 양 한 마리를 구하려고 자기 목숨 거는 목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혹 사방에서 양떼를 노리는 이리 떼와 맞서 지팡이 하나로 싸우긴 하겠지만 목숨이 위태하면 양떼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목자도 있음을 말씀한다. 이름 하여 삯군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저에게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은퇴 사관님이 계시다. 이젠 고인이 되셨지만 정말 선한 목자의 삶을 본받으려 했던 목회자로 기억한다.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진주영문 김석규 사관님. 언제나 겸손하고 인자했던 분이셨고 거짓 없이 주의 말씀대로 사셨던 분이다. 또 한 분은 한 번도 뵌 적 없었으나 나의 인생길을 정하도록 한 분이다. 6.25.동란 때 북한군이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자 진주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피신했다. 그러나 노영수 사관님은 피신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생각해서 끝까지 남아 계시다가 공산당원에게 붙들려 순교하셨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나 기꺼이 죽음을 택하면서도 성도들을 사랑하셨던 분이셨다. 그분의 묘비에, 빌립보서 1: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새겨져 있다. 나는 그날이후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했고 어떤 삶을 살아야 가장 유익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거룩한 희생 앞에서 나는 나의 삶 전부를 드리기로 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주님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주신 분이다. 그런데 반대로 나도 주님 위해 살 수는 있겠지만 주님 위해 죽을 수는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상 쉽지 않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 이 말씀이 나의 삶의 중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으셨던 것 같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세 차례 같은 질문을 그에게 하시며“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하셨다. 즉 제자의 사명은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목양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목사나 사관이 될 수는 있지만 참 목자의 심정으로 목회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도 부족한 자를 사용하시는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선다. 내게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주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기도할 뿐이다. 여러분 속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길 축원한다.

 

한 양치기가 매일아침 연한 풀을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매우 궁금해 했고 한 마을 주민이 양치기를 따라갔다. 양치기는 다리가 부러진 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다. “어쩌다가 양의 다리가 부러졌습니까? 사나운 짐승에게 물렸나요?”양치기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부러뜨렸습니다.”“아니, 당신처럼 양을 사랑하는 사람이 양의 다리를 부러뜨리다니요!..”양치기는 양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이 양은 자꾸만 길을 잃어버린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슬슬 도망가지요. 그런데 목장주변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아요. 그래서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린 겁니다. 매일 매일 먹이를 먹이면서 정을 쌓기 위해서지요. 자기 목자를 알아볼 때까지 꼴을 먹일 작정입니다.”

 

여러분은 시선을 주님께 두는가? 혹 이 세상을 쫒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어떤 때는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시련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제 주인을 바로 찾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참 목자가 되신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요 10:17,18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유가 목숨을 버림에 있다. 그 희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사랑에 푹 빠져들어야 한다. 요일 4:9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나라.”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신다. 다만 우리가 그분께 우리 삶의 열쇠를 맡기기만 하면,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언제나 그 풍성함을 누리게 하실 것이며 선한 목자의 인도함 받아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푸른초장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나그네로 살아감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신다. 때때로 길을 잃어 방황하는 양이며, 온갖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한 인생임을 아신다. 그래서 우리에게“나는 선한 목자”라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심을 확신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에 늘 순종하고 여러분의 인생을 우리 주님께 온전히 맡기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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