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사관설교

  • 생명의 말씀 >
  • 김동진사관설교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 2016.12.04.
김동진 2018-01-20 추천 0 댓글 0 조회 1172
[성경본문] 요한복음12:25-26 개역개정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푸른초장 주일성결예배

요 12:25-26, 34-36

예수께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으셨다. 무고히 십자가를 져야하는 위기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시면서 역설적인 진리를 던지신다. 12:25“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것이다.”자기를 사랑하면 주변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나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오히려 인정을 받게 되고 자기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는 진리이다. 이것은 분명히 역설이다. 잘 생각해 보자. 부부간에도 자기만 사랑해달라고 하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부모와 자식, 친구사이도 그렇다. 아니 모든 일, 모든 관계에서 맺어지는 진리이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헤론이라는 의사가 있었다. 미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 가장 우수한 수재였다. 그 대학에서 교수로 남아달라는 요청마저 거절하고 한국 선교사로 헌신했다. 언더우드보다 두 달 늦은 1885년 6월 내한하여 알렌의 제중원에서 일했다. 알렌이 물러난 후 제중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1890년 여름, 각종 전염병이 널리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가고 있을 때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폭염 속에서 환자들 치료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위와 과로에 지쳐 결국 자신도 이질에 걸려 3주간 앓다가 1890년 7월 16일 이 낯선 땅에서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두고 순교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말씀하셨던 예수님도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의 희생을 피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 모델이다. 따라서 의미 있는 승리의 삶은 반드시 십자가와 같은 희생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저와 여러분이 값진 희생을 선택하지 않고는 결코 우리에게 참된 만족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거나 그분의 기쁨이 될 수 없다. 혹 어려운 일, 불편한 일이 닥치면‘그래 내가 죽어야 할 게 아직도 남아있구나!’생각하고 내가 먼저 희생하고 죽어야 한다! 그러면 살 길이 보여요. 이것이 절대 진리다. 여러분의 삶에 희생을 기뻐하므로 여러분의 삶에 더욱 풍성한 결실이 넘쳐나길 축원한다. 

 

26절 말씀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섬김의 법칙이며 섬김의 축복이다. 주님이 대체 어디 계실까? 때로는 우리가 곤고할 때 두려움이 엄습할 때 주님을 찾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다. 다른 곳에서 주님을 찾을 수 없어요.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늘 함께 하시거든요.

 

우리 신분이 섬기는 종이라면 그 섬기는 일을 가려서 하지 못한다. 혹 밤이어서 쉬거나 날씨가 궂어 쉴 수 없다. 나이가 많다고 주님을 섬기지 못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다. 혹 주님을 섬겨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나에게 어떤 핑계도 필요치 않다. 그런데 이런 섬김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를 분명히 약속해 두셨다.“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아버지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이러한 섬김은 곧 우리에게 축복이다. 이 섬김으로 주어지는 열매는 고귀하여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니 얼마나 좋은가! 사랑하는 군우여러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여러분 되길 축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을 섬기는 기회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를 축원한다. 

 

또 하나의 진리는 빛과 어두움의 진리이다. 예수님의 예사롭지 않은 말씀을 듣고 당시 분위기를 파악한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질문한다.“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님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도대체 누굽니까?”구원자 그리스도라 말하는 당신이 왜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여기에 답하지 않으시고 다른 말씀을 던지신다. “아직 얼마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어두움이 덮치기 전,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 가운데 걸어라. 어둠 속 걷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 허니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그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가 될 것이다.

 

여러분, 해가 지면 어둠이 온 지면을 덮는다. 그래도 전깃불 밝히면 어둠은 사라진다. 세상에 항상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이 세상은 어떤가? 신문, TV,라디오채널이 얼마나 많은지, 이번 자선냄비 시종식에 취재 나온 기자들을 보니 엄청났다. 매스컴을 통해 듣는 수많은 뉴스들 가운데 우리에게 밝고 희망을 주는 뉴스가 얼마나 될까? 아니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어두운 뉴스가 얼마나 많을까? 최근에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브라질축구선수들 비행기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외에도 살인, 사기, 강간, 성추행, 자살, 분쟁, 지진, 태풍, 홍수, 가뭄 등등 어둡고 답답한 뉴스가 훨씬 많다. 반면 어둠을 밝히는 가슴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사도 간혹 있다.

 

하나님이 창조 첫날 칠흑 같은 우주공간에 놀라운 빛을 만드셨다. 그래서 우주를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셨다. 태초이후 이 세상을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지만 빛 되신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누구든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이로써 어두움을 이기도록 하셨다. 요 12:36에,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그 빛을 믿으라. 그러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이다.”약속하셨다.

 

우주공간에 빛이라! 빛의 힘, 에너지를 생각해보자. 태양이 가져다주는 빛으로 그 열기로 인류가 버틴다. 겨울밤 모닥불 지펴도 그 열기는 멀리 가지 않는다. 그런데 1억 4천 9백만 Km 떨어진 태양에서 먼 우주공간을 지나온 빛이긴 하지만 여전히 따스한 열기를 품고 있다. 1초 지구 3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로 8분 20초가 걸리며 서울 부산을 18만6천 번 이상 왕복하는 어마어마한 거리에 있는 태양열을 우리가 누린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죄로 가득한 우리가 단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 하나로 빛의 아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아버지의 그 품으심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너무 큰 은혜이다. 이천년이 지나도록 약속하신 말씀대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절대 식지 않는 하나님 사랑의 뜨거움은 너무나 놀랍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 빛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아직 빛이 있을 동안’이란 우선,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을 뜻한다. 그래서 빛이 있을 동안에 그 빛을 믿으면 그분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이 빛은 늘 함께 있지 않다. 우리의 좋은 시절이 늘 계속 되진 않는다. 우리에게 기회가 늘 있는 것 아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는 말은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예수 똑바로 믿으라는 거다.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 쏟아지는 범죄들, 숱한 죄의 유혹들 앞에 무너지기 쉬운 연약한 우리에게 유일한 참 빛은 구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 빛을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어요. 유대인들은 저마다 진리를 알고 또 찾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말씀이신 예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은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분을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다.

 

그렇다. 어둠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리인지 스스로 분별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옳게 여긴다. 살후 3:2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도요한은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두려운 사실이다. 참 빛이 사라지면 이 땅에는 곧 어두움과 불신이 팽배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무력해지고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고 교회에서 은혜가 사라지게 되면 그때는 믿음을 가지기가 어렵다.

 

성도의 삶에 생명 빛이 없으면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캄캄한 어두움의 세력에 사로잡히게 될 거다. 그러므로 빛이 있을 동안에 예수 새 생명의 빛을 받지 못하면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깊은 암흑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생명의 빛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고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믿는 성도들을 통하여 계속 빛나고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엠마오 도상>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잘 그려서 큰 부자로 부족함 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아침에 깨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은 거다. 그는 붓을 내던지고 실의에 빠졌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인간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구주를 영접한 후 그린 그림이 <야경>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암스테르담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값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참 생명이 무엇인가를 체험하면서 그린 그림이기에 값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 다음에 그린 그림이 엠마오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 보면 대화하는 제자나 나무들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림을 완성한 그는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백한다.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허무함과 좌절 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그 주님을 그릴 수 있었다. 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함께 걸으신다. 우리를 친히 희망과 기쁨의 삶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에게는 아직 빛이 있다. 지금이 마지막기회라 생각하고 빛 되신 주님을 붙드시기 바란다. 빛 되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 속 어두움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 우리를 빛 가운데로 부르신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를 빛의 자녀로 인정하실 뿐 아니라 무한한 빛의 생명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다. 오늘도 긍휼을 베푸는 하나님아버지께 도움을 청하여 주의 강력한 빛 아래서 주님의 생명의 빛 발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길 축원한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믿음의 눈으로 보자 / 2016.12.11. 김동진 2018.07.07 0 662
다음글 온 세상이 따르는 분 / 2016.11.13. 김동진 2018.01.20 0 681

구세군 푸른초장교회는 2025년 5월 31에 폐교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계속되는 홈피는 20년간 푸른초장교회에서 올린 자료를 보관하고 회원들의 동정과 글을 나누는 모임방 용도로 변경되었습니다.

Copyright © 푸른초장교회모임방.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4
  • Total101,759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