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이사야44: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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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올해는 마틴 루터가 캐톨릭의 비신앙적 모습에 항변하며 종교개혁을 부르짖은 지 500년이 되는 해이다. 이후 500년동안 개신교가 각 나라마다 자리 잡고 교회의 부흥을 주도해 왔다. 한국교계에서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며“나부터”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교회와 성도들이 새로워지기를 희망한다. 교회는 곳곳에 세워져 교회 없는 곳이 없지만 칭찬 듣는 교회가 되지 못하는 오늘날 현실을 부끄러워한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고 성도가 성도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을 바꾸거나 이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어느 누구든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연약하고 육체적으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새처럼 너무 먼 것을 볼 수 없고 너무 가까운 것도 볼 수 없다. 너무 밝은 빛도 볼 수 없고 너무 어두워도 볼 수 없다. 너무 큰소리 듣지 못하고 너무 작은 세미한 소리도 듣지 못한다. 동물은 대개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지만 부모의 손길이 가장 오래가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족한 인생들을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지요.
시편기자는 시 121:2“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했다. 나의 도움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있다는 거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대로 잘 살고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무엇으로 그가 도움을 삼느냐에 따라 그 삶의 질과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시146:5“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들을 만나주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
첫째, 갈망하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본문 3절에서“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라고 하셨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시편 42편 1절은 “하나님이시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는데, 그 첫 번째 복이 무엇인가?(마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난한 자의 심령 같이 겸손해야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 같은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라고 말씀하심은 우리 하나님은 갈망하는 자에게 하늘의 은혜와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말씀이다.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형 에서는 몸이 붉고 털이 많이 난 사람이다. 성품이 호탕하고 대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말을 타고 활 쏘는 사냥꾼이 되었다. 동생 야곱은 몸에 털 하나 나지 않은 여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고 어머니 치마폭에 매달려 부엌에나 들락거리는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야심이 있어서 형이 배고픈 기미를 알고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에서의 축복기도도 가로챘다. 외삼촌 집 머슴살이를 하며 갖은 꾀를 부려서 얼룩덜룩한 양의 새끼를 낳게 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했다. 교활한 사람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형 에서가 훨씬 더 인간미가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롬9:13에서“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하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더 사랑하셨을까? 그것은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복을 받기 위해 배고파도 내 몫의 팥죽 한 그릇을 포기했다. 축복을 받기 위해 14년 동안 머슴살이의 고통을 감내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을 정면으로 만나야 하는데 너무 두렵다. 강가에서 기도하죠.“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천사와 씨름하다가 그의 환도뼈가 위골되어 절뚝이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갈급함이 있었다. 그런데 형 에서는 어떤가? 세상적인 면으로 볼 때는 야곱보다 여러 가지 장점은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꼭 받아야겠다고 갈망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는 장자 권마저 경홀히 여겼다.
성경은(잠7:6)“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했다. 축복을 축복인 줄 모르고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고, 은혜를 은혜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는다. 다른 것이 다 훌륭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목말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실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 없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쓴 토마스 아켐피스는“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찾고 나도 찾지만. 나만 찾으면 나도 잃고 하나님도 잃는다.”라고 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소원을 듣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올 한해는 여러분 속에 정말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여 약속하신 복을 넘치도록 받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한다.
둘째, 어그러진 삶을 회복시키신다. 본문 3절에“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며”라고 했다. 마른 땅은 어떤가? 비가 내리지 않아요. 비가 내리지 않으면 풀이 자라지 못한다. 풀이 없는 땅에서는 짐승이 살 수 없다. 마른 땅은 황폐한 땅, 불모지의 땅, 광야 같은 땅이다. 흔히 인생의 삶을 광야 같은 인생이라고 한다. 이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어요, 쉴 곳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곳이다. 더 확실한 표현은 광야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 없는 곳이다.
만약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들이 40년 동안 신발이 해지지 아니하고 옷이 낡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낮의 뜨거운 햇볕과 밤에 엄습해오는 추위를 견딜 수 있었을까? 그런데 성경에서 무엇이라 했는가? 사 49:9,10에“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고 했다. 비단 광야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면서 우상 섬기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멀리했다.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는 민족이 되고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무수한 메시지를 던지신다. 사 43:19,20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다.”사 44:21“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다.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아니할 것이다.” 적어도 이런 하나님이시다.
2017년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그 하나님께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원하신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황폐한 인생을 그토록 살피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물 없는 땅에 물이 흐르게 하신다. 메마른 광야에 비가 내리면 풀이 나고 꽃이 핀다. 나비와 새들이 날고 곡식은 열매 맺고 시냇물에는 물고기가 뛰놀고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그 복락원에는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놀라운 회복의 은총과 감격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길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 3절에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하셨다. 나의 “신”은 “성령”을 말한다. 겔 37장 말씀에 에스겔 골짜기에 산처럼 쌓인 마른 뼈들이 나온다. 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니 움직이는 산 생명체가 되는 환상이다. 여기에 나오는 “생기(חוּר, 루아흐)”는 바람 혹은 성령이라는 뜻이다. 즉 성령을 받은 마른 뼈는 생명체가 되고, 성령 받지 못하면 마른 뼈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치는 성령 받았느냐? 성령 받지 못했느냐?에 따라서 산자냐? 죽은 자냐? 혹은 쓸모 있는 사람이냐? 쓸모없는 사람이냐? 로 구분된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여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제자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그러나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에는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이 거리로 나가“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외쳤다.(행3:19)그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파했다. 놀라운 변화이다. 이처럼 우리를 항상 도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어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며 비겁한 자에게 용기 주시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신다. 믿는가!
캐나다선교사 하디는 원산에서 선교를 하는데 선교 열매가 시원치 않았다. 1903년 8월 선교사 부인들이 휴가철이라 원산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모였는데 대화 중‘지금은 기도할 때’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휴가대신 기도를, 수영대신 성경공부하기로 하고 강사를 초청했다. 이 때 강사로 초청받는 사람 중에 하디선교사가 있었다. 하디는 당시 심한 자괴감과 실망감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신바람이 나서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제까지 설교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전했지만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했다. 그는 말씀 앞에 너무 부끄러웠다.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말씀 전하는 중에 성령을 체험하였다. 하디 선교사는 즉시 성령 체험한 것을 간증하였다. 자기보다 10년 후배 선교사들과 선교사를 천사처럼 여기는 원산 일반 성도들 앞에 고백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서 자기의 고통과 수치를 고백했다. 이때부터 원산의 교역자들과 성도들의 회개가 연속으로 일어났으며 이 부흥운동의 불길이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907년 대 부흥운동으로 점화되었다. 저도 부끄러운 죄인이에요. 여러분을 방치한 죄도 크고요. 말씀의 사람이 되지 못한 죄를 회개한다.
오늘은 신년 첫 날이다. 그냥가시면 안돼요. 결단이 필요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고 싶은가? 성령의 도우심만이 최선의 길이다. 혹 “나는 성령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요.” 그래도 이 시간 주 성령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주장하실 것이다. 이미 약속된 말씀대로 롬 8:26에“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도우신다! 고 했다. 성령이 도우신대요.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새 일을 우리에게 이루실 것이다. 그 놀라운 일들을 두 눈으로 보며 하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한해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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