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디모데후서1:3-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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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베트남독립의 아버지 호찌민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에 사망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몇 벌의 옷과 지팡이,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 밖에 없었다. 베트남 국부로 추앙받던 초대대통령이 이렇게 초라한 유산만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호찌민은 폐결핵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한 1965년 유서를 작성했고 1969년 고쳐 썼다. 여기에는 베트남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거창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을 낭비하지 말고 화장하라는 당부도 포함됐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유해를 방부 처리해 영묘 만들어 국민화합의 구심점으로 삼는다. 베트남사람들의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검소함과 청렴함, '호 아저씨'라고 불리는 친근한 이미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통해 어떤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다. 평생을 혼자 살며 직접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를 신었고 지방 다닐 때면 손수 돼지고기볶음을 밥에 얹어 도시락을 쌌다. 또 프랑스총독관저에서 살 수 있었지만 관리인들이 묵는 오두막에 살았다. 가족들도 독립전쟁에 참여했지만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과 거리를 두게 해 친인척비리를 철저히 차단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은 무엇인가? 세상적인 기준에서 무얼 줄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의 유산을 남겨 주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디모데도 스스로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사도바울이 본 것은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었는데 이 믿음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디모데는 3대에 걸친 훌륭한 믿음의 유산을 받았다는 거요. 디모데처럼 여러분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이 여러분 자손대대로 흘러가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한다.
저는 신앙 1대이다. 외할머니께서 장로교 권사이긴 하셨지만 아마도 늦게 믿음생활 하셨는지 어머니와 이모는 믿음과 전혀 상관없었고 아버지는 유교집안 어른이셨다. 어릴 적에 보면 외할머니는 의도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부러 저희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리곤 했었다. 그런데 저는 찬송과 기도가 이상하게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그래서 주일마다 연보와 알사탕으로 찾아오는 외할머니를 피해 도망 다녔다. 한 번도 주일학교에 나가질 않았다. 제 생일이 공교롭게 성탄절이다. 너 교회 나가면 생일선물 큰 거 받아! 여러 번 유혹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어쩌다가 딱 한 번 성탄절에 교회 가긴 했어요. 그때에 생일인 학생 손들라고 했지만 나는 창피해서 손을 들지 못했다. 그 성탄절에 저는 빈손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나중에 중3 겨울 친구의 계략에 넘어가 등 떠밀려 들어간 곳이 바로 구세군진주영문이다. 거기서 조금씩 저의 믿음이 자라갔다. 참 복음의 기쁨을 찾게 되고 내 삶의 목적을 발견했다.
가을 어느 날 학생회에서는 한 묘소를 찾아갔는데 공산당원들에게 총살당해 순교하신 노영수사관님의 묘소였다. 묘소 앞에서 나는 목숨보다 강한 신앙의 힘에 매료되었다. 6.25.로 공산군이 들이닥쳐 모두가 피신하는 그 당시 그에게 아내와 여러 자녀들이 있었으니 얼마든지 피신할 수 있었고 피신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피신하지 못하는 군우들을 두고 교회 떠날 수 없다고 하여 끝까지 교회를 지켰다. 결국 공산 당원에게 붙들려가 공산당에게 협조만 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설득했지만 노영수사관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했다. 마침내 그는 총살형에 처해졌다.
저는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예수님이 좋았으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았을까! 얼마나 그 사랑이 컸으면 붙잡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겠다고 했을까! 그 신앙의 힘이 전해오는 거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했다. 이 세상에 다 셀 수 없는 무수한 직업이 있고 돈도 명예도 좋지만 주의 복음 전하는 사관이 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요.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묘비에 적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1 말씀이 확 들어오면서 그날 이후 저는 저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기로 마음에 작정했다. 게다가 당시에 무척 인자한 담임사관님과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관님 가정의 온화한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고 이 역시 사관으로 헌신하게 된 동기였다.
그런 다음 저는 동생들을 인도했고 부모님을 전도하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듣지 않으셨고 저의 기도제목이 되었다. 제가 고 2였을 때이다. 앞으로 목회자가 되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교회가면 밥 먹여 주냐? 이제부터는 넌 내 자식이 아니다.” 폭탄선언하실 정도였다. 도리 없이 무릎 꿇어 용서를 빌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진로 바꾸어 사범대 윤리학과를 지망했다. 도덕선생이라도 되자는 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을 막으시고 저의 헌신을 기억하여 새 길을 열어주셨다. 충분히 낮추어 지망했는데 본고사 한 달 전부터 그해 독감으로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심한 두통과 열, 기침이 나오면 그치지를 않았다. 그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모른다. 도리없이 본고사에 낙방해서 재수할 마음뿐이었는데 선배가 신학 2차에 도전할 것을 추천했다. 큰 장애는 아버지. 간신히 아버지 승낙을 받아 신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신대에서 친구들 보니 거의 목사아들, 장로아들, 적어도 집사아들이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기도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없었다. 외할머닌 이미 돌아가셨고 그리고 부모님이 교회 다니질 않는데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겠느냐고요. 나는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하며 수년 동안 권면했지만 허탕 쳤다. 3년 보낸 신년 초 오산리순복음기도원에서 일주일 금식기도한 후 집으로 내려갔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용기 내어 신앙생활 할 것을 권유했더니 부모님은 앞으로는 교회 나가겠다고 흔쾌히 대답하셨고 다음 주일부터 저와 함께 교회 나갔고 믿음생활을 하게 되셨다. 할렐루야! 그때의 감동과 감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유산은 흘러가야한다. 여러분 대에서 끊겨져서는 안 된다. 어떻게 자녀에게도 흘러가게 할 수 있을까? 이게 우리의 고민이 아닌가? 사도바울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믿음의 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축원한다. 그 불이 충분하여 자녀의 믿음에 불붙기를 축원한다. 오늘날 교회마다 영적인 권위는 추락하여 선한 영향력은 상실하고 성령의 은혜를 갈망하는 모습이 식어있다. 바라기는 다시 불붙이는 00영문 되길 축원한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냐?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주를 위해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권하며 확신한다. 복음이라면 고난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만한 가치가 있다. 바울은 딤후 1:12~14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러니 너는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고 선포한다. 사역의 길이 비록 험하고 고난이 따른 다해도 얼마나 복되고 가치 있는 일인지 바울도 알고 디모데도 확신하고 따라올 것을 요청한다. 이 얼마나 멋있는가!
W. Booth의 딸 케이트부스는 15세 어린 나이에 많은 군중 앞에서 연설했었고 프랑스 파리 빈민가에서 사역했었는데 그 후로 프랑스 사람들은 그녀를 '여장군'이라 불렀다.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싶어 집회 때마다 사방에서 몰려왔는데 어느 날 집회에 참석했던 한 사람이 또 다른 참석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은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그녀의 집회에 참석하려고 하나요?” 그 사람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많은 설교자가 있지만 이분보다 더 예수님을 실제적으로 전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렸지만 말씀의 힘이 있었다는 말이다.
훌륭한 사람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가 있다. 케이트가 네 살이었을 때 어머니 캐서린은 그녀를 잠자리에 눕힐 때면 늘 이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케이트,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위해서 있는 거란다. 기억해라 이 세상이 널 기다리고 있단다.” 네 살 어린아이가 무얼 알까? 어린아이가 잠자리에서 듣는 말치고는 상당히 거창한 말이었지만 케이트는 어렸을 때부터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케이트는 성장해가면서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대.”라는 말을 수시로 되뇌었다고 한다.
여러분 자녀에게 새겨주는 말이 있는가? “넌 틀림없이 하나님의 사람이야!” “세상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한국구세군을 일으키는 멋진 사관이 되라!”
하나님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시고 그 시대의 등불이 되게 하여 어둠속에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하셨다. 오늘은 구세군사관으로 헌신한 사관학생들을 영혼의 구령자요 섬김의 사람, 사랑의 실천자로 양성하도록 기도하는 주일이다. 또한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직업과 할 일이 있으나 가장 가치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구세군사관으로 부르심임을 알고 결단하게 하는 주일이다.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를 물질로 후원하는 주일이다.
사 42:6에 “나 여호와가 의로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고 보호하며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이다. 우리가 특출해서가 아니다.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의롭게 여겨 부르며 하나님이 우리 연약한 손을 잡아주신다는 거다. 그런즉 손을 내미는 자만이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된다. (자비석초청)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시대 필요한 사명자를 찾으며 부르신다. 이 약속과 빛은 모두에게 참 희망이다. 그러니 백성의 언약과 빛이 되는 사관이 됨이 얼마나 복되며 귀한가! 이 시간 하나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하나님나라의 일군이요 구세군사관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 바란다. 혹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가? 미래를 두려워하는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떻게 드릴까? 고민하는가? 전혀 어려울 것 없다.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손에 완전히 붙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 여러분이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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