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홍사관 설교

  • 생명의 말씀 >
  • 황규홍사관 설교
차선(次善)에 집착하는 인생
황규홍 2019-05-21 추천 0 댓글 0 조회 459
[성경본문] 사도행전3:1-10 개역개정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요즈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히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선순위가 바로 서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삶의 모습이 어떠하던지 간에,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던지 간에 우선(優先)” 해야 할 일이 정해집니다그 중에서도 가장 급한 일을 최우선(最優先)”이라고 말하고, 그 우선순위(優先順位)에서 덜 중요한 것을 차선(次善)”, “차차선(次次善)”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막 신부 입장의 웨딩마치가 울리고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는데, 먼저 입장해 있던 신랑이 갑자기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신부가 도망가는 영화는 본적이 있는데 신랑이 달아나 버리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처음 일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하는 말로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말할 것도 없이 결혼식장은 소란(騷亂)해졌고, 주례 목사도 당황(唐惶)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혼란(混亂)스럽기는 하객들도 마찬가지여서, 벌써 몇몇은 두런거리면서 돌아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신부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렇게 소란(騷亂)스러운 시간이 30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몸에 숯검정을 묻히고 물을 흠뻑 뒤집어 쓴 채로 숨을 헐떡거리며 신랑이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목사님 죄송합니다. 결혼식을 계속해서 진행해 주십시오.’라는 겁니다. 결국 주례 목사님이 아니, 신랑은 어딜 갔다 오는 길입니까? 그리고 몰골이 왜 이렇게 됐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네 목사님, 저는 소방관입니다. 조금 전 신부 입장과 동시에 화재 사이렌이 들리는데 가만히 멈춰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제는 화재가 다 진화가 되었고, 사람들도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이제 마음 놓고 결혼식을 올려도 될 것 같습니다.’라는 신랑의 말에 모두가 박수와 칭찬으로 결혼식을 마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아무리 소방관이라도 그렇지 남도 아니고 자기 결혼식인데 참 실없는 사람이네라고 웃고 말았는데,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고 생각해보니 그냥 웃을 수는 없는 이야기였습니다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또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소방관의 이야기를 통해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로 삶을 연명해가던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성령체험을 한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서 말씀을 배우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더해가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성전이 있는 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門)은 이방인의 뜰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입니다. 이 문을 통과해야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자리를 좋아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중 으뜸은 걸인(乞人, 구걸/동냥하는 사람)들일 겁니다역시 그 자리에도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앉아 구걸하는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그 자리에 올 수도 없는 처지라서 동네사람들이 메고 옮겨주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오전 9, 12, 오후 3시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기도 시간인 제 9, 즉 오후 3시 기도시간입니다베드로와 요한도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다가 마침 그 미문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기도시간입니다. 오늘을 이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밉니다.

 

3절에 보시면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여기서 보았다는 헬라어는 의미를 무엇인가를 주목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야에 들어왔기에 쳐다보는 것을 뜻합니다. 이 걸인은 사람이 지나가니까 그냥 기계적으로 손을 내밀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건성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자를 얼마든지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매일 보았던 자입니다그런데 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건성으로 쳐다보는 걸인에게 베드로는 자신을 주목하라고 촉구합니다.

 

베드로의 요청에 걷지 못하는 자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갑자기 걸인의 눈에 힘이 들어갑니다여기서 바라보다는 말의 의미는 온 시선을 집중시키다는 것입니다. 비로소 걸인은 오늘 대박이구나! 싶은 마음에 집중해서 베드로를 바라봅니다. “무엇인가 얻을 줄로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지만, 걸인의 기대와는 다른 말을 베드로가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다른 말로하면 나는 동전 한 푼 가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걸인이 실망해서 고개를 숙이려고 하는데 베드로가 말을 다시 이어갑니다. “하지만 내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걸인은 다시 희망을 가지고 그렇지 돈이 없으면 음식이나 옷가지라도 주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말을 합니다. 이 걸인은 자기의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듣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그리고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대하는 대로 걷지 못하던 걸인이 벌떡 일어나 걷습니다.” 성경은 그가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일 저리 걷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차선(次善)에 집착하는 인생이란 제목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다음으로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0여 년 전에 삼키는 기능 마비 증세로 침도 못 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3개월가량을 밥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다른 소망 없습니다. 빨리 건강해져서 물 한 컵 만마시게 해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했었습니다하물며 본문에 나타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걸인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육신의 약함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이 건강해지는 것, 나음을 입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일 겁니다특별히, 불구나 불치병을 죄에 대한 신()의 징벌로 여기고 공동체로부터 차별과 억압을 당해야 했던 초대교회시대의 유태인 공동체에서는 그 소망이 더욱 간절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작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최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차선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사람도 건강한 신체라는 최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차선을 선택합니다. 바로 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와 너무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 최선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최선, 최우선의 것은 생명(生命)입니다그런데 오늘 우리가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시간이 최선을 망각한 채 차선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푸른 초장 가족여러분, 물론, 여러분 모두가 윤택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생명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고백하시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와 같이 내게 있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김영국 부교님 만약 규원이가 돌을 먹겠다고 돌을 달란다고 한다고 돌을 주겠습니까? 절대로 돌을 주시지 않습니다. 진짜로 규원이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시겠죠어떻습니까? 김용갑 부교님 도경이가 TV에서 뱀을 보고 예뻐 보인다고 뱀을 사달란다고 뱀을 사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내 아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준다.”고 뱀을 사주실 분이 아닙니다김영국, 김용갑 부교님뿐만 아니라 부모 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달란다고 무조건 주시지 않고, 오히려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합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 교회는 또 교회된 나는 저들에게 저들이 진짜 필요한 최선을 주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저 그들이 입술로 구하는 차선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날 때부터 거동이 불편해서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사람이 돈을 달란다고 해서 불쌍한 마음에 돈만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늘 저녁은 맛있는 메뉴로 폼 나게 먹을 수 있겠지만 내일 아침이면 또 동네사람들 등에 업혀 나와서 구걸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진짜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일어나 걷는 것이었고 더 근본적으로는 예수의 이름인 것을 알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돈이 아니라 걸을 수 있는 건강과 예수 이름에 담겨있는 생명을 전해 주었습니다.

 

더 이상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고 뛰고 걸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명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많은 교회들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선상에서 해석해봅니다. 생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이 아닌 차선을 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돈으로 대표되는 현상의 것을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그러려니 내가 그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꾸 몸짓만 키워갑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오늘 교회된 우리에게서 세상이 가지지 못한 것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사랑, 자비, 나눔과 베품, 헌신, 생명 이런 것들 말입니다. 예수의 이름에 담긴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된 내가 세상 가운데 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은과 금을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단지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것들을 나누기 위한 그릇인데, 언젠가부터 그 그릇을 사랑하고, 그 그릇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구세군도 절대로 자선냄비라는 도구만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샌프란시스코 39번 부두에서 솥을 걸고 종을 울렸던 요셉 정위의 그 마음과 그 마음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당사자조차도 망각한 최선을 베드로는 그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으로 말입니다.

 

푸른 초장 가족 여러분, 최선을 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구하고 있는 차선(次善)이 아니라 최선(最先)인 생명임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들과 접촉하기 위해 차선의 것을 들고 나갈지라도 정작 저들에게 필요한 것 생명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우리 모두와 푸른초장영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하나님의 歷史, 인간의 歷史 황규홍 2019.06.03 0 462
다음글 어른 같은 어른, 갈렙 황규홍 2019.05.17 0 448

구세군 푸른초장교회는 2025년 5월 31에 폐교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계속되는 홈피는 20년간 푸른초장교회에서 올린 자료를 보관하고 회원들의 동정과 글을 나누는 모임방 용도로 변경되었습니다.

Copyright © 푸른초장교회모임방.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6
  • Total101,730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