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13:24-3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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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가 마태복음의 구성을 예수님 이야기와 예수님의 설교 묶음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첫 번째 설교 묶음이 우리가 잘 아는 산상설교로 ‘제자들의 삶’에 대한 설교 묶음입니다. (5-7장)
2) 두 번째 설교 묶음은 12제자를 선택하신 후에 그들에게 하신 ‘선교(宣敎)’에 대한 설교 묶음입니다. (10장)
3) 세 번째 설교 묶음이 오늘 본문을 포함하는 부분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 묶음입니다. (13장, 천국의 7대 설교)
4) 네 번째로 ‘교회의 삶’이라는 주제의 설교묶음이 있습니다. (18장)
5) 끝으로 ‘종말(終末)’에 관한 주제로 다섯 번째 설교 묶음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24-25장, 감람산 설교)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들을 묶어 놓은 부분으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서 말씀하신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밭에 씨를 뿌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잘 때에 그의 원수가 몰래 와서 그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가라지는 것은 ‘독보리’(毒麥)라고 하는 것으로 ‘지네보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라지 자체에는 독(毒)은 없지만 가라지에 기생하는 '테므렌(temulen)'이라는 곰팡이가 독(獨)이 있기 때문에 유독식물(有毒植物)로 취급됩니다. 가라지(독보리)를 먹으면 구토와 설사, 현기증을 일으키는 중독 증상이 나타납니다. 게다가 맛이 쓰기 때문에, 밀에 섞였을 경우에는 밀가루의 맛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라지(독보리)의 이삭이 나오기까지는 밀과 생김이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이삭이 패고 추수할 때가 되면 확실히 구별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밀농사를 많이 하지 않아서 바로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논에 있는 ‘피’를 생각하면 비슷하지 않을 까합니다. 피도 벼와 외견상 비슷하여 열매 맺기까지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피사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응답)) ‘김매기’부터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김매기’는 아시지요? ((응답)) 논이나 밭에서 잡초 제거하는 일을 ‘김매기’라고 합니다. ‘피사리’는 그중에서도 피라는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피사리’(피殺)라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도 농부셨습니다. 어느 날은 피사리를 같이 해보자고 하셔서 논에 들어 따라 들어갔었습니다. “잘 봐라, 이게 피다. 피는 이렇게 잎줄기 사이에 흰줄이 있고, 벼는 그렇지 않다 봐서 잘 구별이 안되면 규칙적으로 심어진 것은 벼고, 왠지 제자리가 아닌데 나 있는 것은 피라고 보면 된다. 이제 논을 쭉 오고가면서 피를 뽑도록 하자.” 호기롭게 따라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제 눈에는 벼와 피가 구분이 안됩니다. 피라고 뽑으면 벼고 ……, 벼라고 그냥 지나치면 피고 …… 결국 30분도 안 되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성장 중에는 잘 구분이 안 되는 것이 벼와 피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곡식과 가라지도 성장 중에는 구별이 안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게 뿌려놓는 씨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가라지도 그 못된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이제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말을 합니다. “주인님, 우리가 분명히 좋은 씨를 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가라지들은 어디서 생긴 것입니까?” 주인이 대답을 합니다.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 같구나” 그러자 종들이 말을 합니다. “주인님 우리가 가서 이것을 모두 뽑아야 되겠습니까?” 이에 주인이 대답을 합니다. “그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따로 단을 묶도록 하여 가라지 단은 태워 버리고 곡식 단은 창고에 들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의 말씀은 이어지는 36-43절에 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해설이 이 비유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안내가 될 것입니다. 이 해설에 의하면 이 비유는 공동체에 대한 비유입니다.이 비유의 서두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시작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천국(天國)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내세적인 천당(天堂)이 아니라 이 땅에 실현된 천국 공동체, 가장 가깝게는 예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부지런한 농부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주인이 금지시킨데 있습니다. 왜 금지시켰겠습니까? 이 비유 자체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으니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농업에 관한 가르침으로만 볼 경우,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곡식을 함께 뽑는 한이 있더라도, 가라지를 뽑아 내버리는 것이 더 경제적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 어리석기 짝이 없어 보이는 비유를 말씀하셨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교회가 다른 점입니다. 세상은 경제성,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움직여지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일을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다치게 된다면,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그 어리석음을 감수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교회의 원리입니다. 철저하게 생명 중심의 가치가 살아 있는 곳이 하나님나라, 교회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이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것이 하나님 나라, 교회 공동체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사고방식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작은 손거울을 드리고, 그 안에 보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그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사랑하시는 사람이 그 안에 담겨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또 하나, 나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처럼, 옆에 계시는 분들도 하나님께서 똑같이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생활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최후의 심판장이신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가 할 일은 다만 내 자신이 가라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자신을 따르는 예수공동체에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자 마태의 교회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회란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복음의 좋은 씨앗이 만들어 놓은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아직 사단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때에’ 그 공동체 안에 거짓 씨앗을 뿌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익기 전까지 누가 진짜 알곡이고 누가 진짜 가라지인지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Mixed Bag’, ‘혼합된 공동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한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혼합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매우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켜 곡식과 가라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다른 해석입니다. 한 개인 안에서도 곡식적인 요소와 가라지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개인을 정죄하거나 판단하기 위해서 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미련한 행위로 이 비유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개개인이 온전한 알곡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또 서로의 모습에 불완전한 모습이 있다 할지라도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서로를 권면하고 중보하는 삶을 살아서 우리의 밭이, 우리의 예수공동체가 온전해 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것은 언제든지 분열 가능성이 있는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매우 예리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을 신앙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몇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의 원리, 즉 생명의 원리에 근거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논리는 경제성의 논리이고, 효율성의 논리입니다. 거기에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무한 경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영웅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생명에 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 그것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논리는 철저하게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입니다. 진정한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논리입니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스스로 낮아져서 서로를 섬기는 낮은 자들의 모임입니다.그러므로, 상대방의 약함으로 때문에 그에게 나타난 가라지 같은 요소를 인해서 그를 비판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말없이 뒤에서 눈물로 중보기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푸른초장 가족 여러분, 철저하게 생명 중심의 논리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약한 겉모습이 아니라 그 껍질 안에 담긴 속사람, 생명에 관심을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음을 인식하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원수는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와서 나쁜 씨앗을 뿌리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지 않은 시간에는 절대로 다가올 수 없고, 나쁜 씨앗을 뿌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일어났습니다.더 이상 긴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간단하게 제시됩니다.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찬양의 자리에서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말씀의 일꾼으로 잠자지 맙시다. 서로 사랑하는 일에도, 서로를 섬기는 일에도, 서로를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도 잠자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라지가 온 밭을 덮는 날에는 큰 일이 납니다. 농사하시는 농부들이 농사에 실패한 밭을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추수의 일꾼들이 필요 없습니다. 밭에 불을 질러 버리거나 트랙터로 갈아엎어 버립니다. 푸른초장 가족 여러분, 마지막 심판 때 같은 일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가라지가 되어서 지옥에서 태워질 존재가 아니라, 알곡으로 하나님 나라 창고에 들여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말을 맺으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공동체에 합당한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철저하게 생명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심으로 알곡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또한, 영혼의 잠을 자지 말아야겠습니다. 원수가 와서 나쁜 씨앗을 뿌리도록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항상 깨어서 나와 우리 푸른초장영문이라는 밭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추수의 날이 오면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창고에 들어가는 알곡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다시 한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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