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은 구세군에서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출애굽기 23장 16절의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는 말씀에 따라 지키는 절기입니다. 칠칠절, 초실절,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3대절기라고 해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을 지켜 왔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출애굽하기 전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가정은 칼을 든 천사가 넘어갔던 구원의 사건(유월, Jump Up)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텐트를 치고 누룩없는 떡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지냅니다.(출12:1-27, 레23:4-14).
맥추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50일째 지난날이다. 그래서 칠칠절(7×7=49일), 오순절(50일)이라고 부릅니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첫 수확을 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켰던 절기입니다. 그래서 첫열매, 초실(初實)을 감사하는 절기라고 초실절이라고 부릅니다.
수장절, 즉 초막절은 오늘날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겨울에 먹을 농사를 창고에 저장하는 절기라서 수장절이라고 부릅니다. 또 광야생활 40년을 기념하면서 광야에 텐트을 치고 일주일 간 그곳에서 지내는 전통에 따라 초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물론, 농경 사회가 아닌 현대사회에서는 본래의 목적대로 정확한 의미의 맥추절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보통 7월 첫 주에 지키면서 한 해의 절반(1-6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상반기 1-6월을 돌아보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남아있는 하반기(7-12월)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드리시는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인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내리셨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인물들 중에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뜻밖의 인물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본문에 등장하는 하갈일겁니다. 제가 뜻밖이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저와 여러분은 어떤가요? 저와 여러분이 뜻밖의 그 사람은 아닐까요? 맞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데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뜻밖의 손님에게서 뜻밖의 큰 선물을 받은 뜻밖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이 정도면 하갈의 이야기가 남이 아닌 저와 여러분, 우리의 이야기라는데 다른 의견이 없으신 걸로 알고 하갈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은 아들 딸 구분이 없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희 큰 딸아이 낳을 때가 다되어 육아용품을 사러가서 분홍색 위주로 상품을 고르려니 가게 주인이 말립니다. 그렇게 여자 아기 것을 중심으로 사시면 시어머니의 심기가 불편하실 것이라고 남자 아기 것을 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는 둘째는 아들을 낳아야 할 것 아니냐고 타이르시더군요.
우리나라처럼 부계농업사회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는 아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웃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나이 들어서는 아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부계사회에서는 그 남자들에게 재산이 상속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시대 여자분들의 생존과 생활이 그 남자들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유대인들도 아들을 매우 중요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여자 보다는 남자의 지위가 중요했고, 이런 연고로 딸 보다는 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자는 인구수에 넣지도 않았던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유대민족이 유목을 주업으로 삼는 민족이다 보니 노동력과 군사력이 매우 중요한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인구 조사라는 것도 노동력과 군사력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자연히 여성에 비해 노동력이나 군사력에 있어서 우위(優位)에 있었던 남성 중심의 사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아들을 중요시 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어 가매 자식이 없어서 걱정을 대단히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은 가업을 이을 후손이 끊어지는 것이며, 더우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이어받을 후사가 없는 것으로 불행한 사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들이 없음을 염려하는 것을 눈치 챈 아내 사라가 남편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으라고 제안합니다. 아브라함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이스마엘이었고,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였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이 100세 때,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주셨는데, 그 이름이 이삭입니다. 이 아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대를 이어갈 후사가 된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과의 나이 차이는 14살입니다. 이들이 한 집에서 자랄 때 형 이스마엘이 동생 이삭을 놀리며 귀찮게 굴었습니다. 몸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이 형으로서 부인인 사라에게서 낳은 동생 이삭을 시기하여 못살게 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라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권고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보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에게 주어서 집을 나가게 했습니다.
이제 하갈은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어깨에 메고,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집을 떠나 브엘세바 들로 가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날씨는 무덥고, 떡과 물도 다 먹어 없어져 더 이상 광야에서 견디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무더운 열기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사막에서의 물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물이 없으면 탈수증에 걸려 죽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불러놓고 같이 않아서 대성통곡(大聲痛哭)합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비참해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 울음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라고 물으시면서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지금 하갈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지금 하갈에게 이보다 더 귀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순간 이보다 더 큰 축복의 말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그렇게 듣고 싶던 말을 지금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푸른초장 군우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반가운 음성을 듣는 은혜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갈에게 어떤 도움을 주셨습니까? 하갈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습니까? 함께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갈은 애타게 샘물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갈에게는 샘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막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가지고 온 물이 다하기 전에 샘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샘을 찾는 일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의 한계는 3차원까지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보는 공간은 3차원의 아니고, 3차원에 시간이 더해진 4차원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육신에 눈에 보인다고 다 진리는 아닙니다.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육신의 눈에 보이지만 허상인 것들이 많습니다.
신령한 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눈이 열려야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2:13에서 말하기를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열려져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보이게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열려야 천국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영의 눈이 열려지면 우리가 얼마나 풍족한 인생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 영의 눈이 열려지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영의 눈이 열려져서 신령한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영의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19절에 보면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위하여 샘물을 예비하셨습니다. 물은 우리 인체에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갈에게도 물은 필요했습니다. 아들 이스마엘도 물을 마셔야 합니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아들이 목말라 하는 것을 어미로서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죽부대에 물이 다했기 때문에 반드시 물을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샘물을 보게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복이고 은혜입니까? 이 샘물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아들과 같이 있으면서 목마를 때 행여나 샘물이 있을까 하고 찾아다녔습니다. 사방으로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샘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생명과 직결도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샘은 없었습니다. 하갈이 대성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을 밝혀주셔서 샘물이 보였습니다. 샘물을 발견한 하갈은 급히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아들에게 주어 마시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영적(靈的)인 샘물을 주셨습니다. 아모서 8:11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근이 닥쳐왔습니다. 하지만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도 아니고,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기갈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기갈을 느끼는 것입니다.
항상 말씀드리는 대로 하나님의 빈자리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만 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37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4:14에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하갈과 이스마엘 같이 영혼이 굶주리고 갈급한 상태입니다. 말씀이 고갈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면에서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만 영적(靈的)으로는 기갈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영혼이 해갈 받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의 생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생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영적 기근이 해갈된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20,21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죽을 뻔했던 이스마엘과 그 어미 하갈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샘물을 마신 후에 기운을 차렸고,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 하심으로 장성하여 가정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은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해를 당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광야에서는 언제 어떤 일을 만날는지 모릅니다. 사나운 짐승을 만나면 짐승의 밥이 될 수도 있고, 전갈이나 독사를 만나 물리게 되면 독이 퍼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도적떼를 만나면 죽이거나 포로로 잡혀가 종으로 팔려갈 수도 있습니다. 한시라도 방심하면 큰 해를 당할 수 있는 곳이 사막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1에 보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활동하며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 때문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고 있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네 인생은 연약한 토기그릇과 같습니다. 때리면 잘 부셔지는 질그릇입니다. 한없이 약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힘을 주시면 강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면 사단의 악한 계획은 능히 이길 수 있는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전신갑주를 입혀주시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늘 동행하시므로 보호받고 승리하는 역사가 우리 영문과 여러 군우님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군우 여러분!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하신 이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나의 사정을 아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나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고 주시는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영혼의 갈증과 육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늘 예수님과 동행하심으로 승리하시는 군우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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