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6: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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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제공: 대한성서공회
25년 쯤 전에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항상 4명의 친한 전도사들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 전도사가 학부 학생 하나가 점심값이 없어 밥을 굶고 있는데 그 학생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다들 가난했던 전도사들이라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한 전도사가 우리가 하루만 도시락을 싸오고, 그날 점심값을 모으면 그 학부 학생에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점심값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5명 전도사들이 2년 동안 한 주일에 하루씩은 도시락을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뜬금없이 왠 도시락이냐구요? 오늘 도시락이야기를 할거거든요.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 한 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의 군중을 먹이신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당시에도 유명했던 사건이고, 지금도 주일학교부터 배우는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인의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고,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다시 갈릴리로 돌아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는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 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잠시 어디 가서 잠깐 쉬도록 하자.”고 말씀하고, 함께 배를 타고 이동합니다. (막 6:30-32). 예수님은 걷거나 뛰어서는 무리를 떼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배를 타기로 하신 듯합니다. 그러나 생각하신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행선지를 짐작해서 배가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그곳에 가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막 6:33).
이들의 수는 어른 남자만 5천 명, 아이들과 여자를 포함하면 2만 명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 없이 헤매는 양 같아서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 6:34) 피곤함을 무릅쓰고 그들의 목마름에 답하기 위해 말씀을 가르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하는 예수님이나 듣는 군중 모두가 말씀에 집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저녁때가 된 것입니다. 그 곳에서 이들과 하룻밤 노숙(露宿)할 수도 없는 일이고, 더더구나 이 사람들에게 저녁밥을 나누어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이곳은 허허벌판이고, 시간도 많이 늦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돌려보내어 저녁이라도 먹게 해야겠습니다.”(막 6:35-36).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황당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의 저녁을 마련해라.”(막 6:37).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제자들이 실제로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신 게 아니라 “빌립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합니다. (요 6:6).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황당해 하면서도 그래도 계산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 모두를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합니다. 이는 당시 노동자의 7개월분의 인건비로 오늘날 가치로 계산해면 1,500만 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본래도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면서 가족과 직업을 버렸습니다. 그러니 모아 놓은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다가 바리새인들의 책망을 받을 정도로 가난했던 사람들입니다.(막 2:23-24)
그때 제자 안드레가 군중 사이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요 6:8-9) 사실 이 말은 ‘이것밖에 없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라는 불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만 하십니다. ‘100명씩 짝지어 50무리로 앉히라.’고 말씀합니다.(막 6:40).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정리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이가 가져온 떡을 들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과 물고기를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요 6:11-12) 이만 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요 6:13).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예수님이 베푸신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실 바로 그 예언자이시다!” 하고 외칩니다.(요 6:14)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6:15). 어찌보면 이런 분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저녁 식사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볼 때 아주 이례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이후에 딱 한 번을 제외하고(막 8:1-9, 칠병이어의 기적) 수천 명을 먹이시는 일을 이번처럼 반복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례적으로 이런 역사를 일으키셨을까요? 예수님이 가난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후에도 가난한 사람을 수없이 만나셨는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지만, 먹이는 일을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날 저녁은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셨을까요? 요한복음 6:32-35에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누가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한 아이”(요 6:9)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도경 또래의 대여섯 살 코흘리개는 아닌 듯합니다. 우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린 아이가 도시락으로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입니다. 영어 성경에도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kid” 소년이란 뜻의 “boy”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규원이 또래의 십대 소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년이 내놓은 도시락을 받으신 후, 2만 명을 떼 지어 앉게 하십니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시고 모두를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주님이 소년의 작은 행동을 통해 모두를 배부르게 하는 엄청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어른의 수고가 아닌, 연약한 존재인 ‘소년’을 사용하셨습니다. 시각을 바꾸면 구원 역사를 위해 한 소년이 예수님께 자신을 내드린 겁니다.
십 대의 시기를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준비하는 시기’라는 말은 ‘준비가 덜된 시기’, ‘완성되지 못한 시기’라는 말입니다. 당사자인 청소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들의 부모인 어른들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은 같은 말을 조금 교회스럽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이 출세한 삶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든 아이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존재들이고 따라서 지금 그들이 할 일은 없다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존재만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오늘의 삶이 있습니다. 오늘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고 제자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만난 이 소년의 도시락은 바로 그가 변화된 삶을 위해 예수님을 만날 통로요 도구인 것입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해서 살아갈 결심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이 찾아오셔서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영생하는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지금 손에 들고 축사해야 할 작은 빵덩이가 필요하단다. 혹시 네 도시락을 나에게 줄 수 있겠니?” 그때 대부분의 소년들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는 지금 어려요. 수많은 어른이 있고 또 저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왜 저에게 요구를 하세요?” 주님은 바로 그때 이렇게 대답할 한 사람, 한 소년을 찾으십니다. “주님이 지금 저에게 뭔가를 요구하신다면 제가 가진 것이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도시락일지라도 기꺼이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먼 훗날 주님의 제자로 살고자 한다면 지금 여기서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자신의 다 드리는 용감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서 이웃에게 베풀며 살고 싶다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금 가진 적은 돈으로도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돼서 부당한 권력에 눌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을 갖고 살고 싶다면, 지금 학교에서 고통받는 친구 편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의 가치만을 좇으며 오늘의 삶을 일체 거절하고 오직 공부에만 매진하는 이들은 ‘똑똑한 탐욕덩이’로 망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요즈음 청소년들 세상말로 싹아지가 없지요? 그런데 어떡합니까? 저 어린 때도 어른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그 아이들의 탓일까요? 아이들이 20년간 공부만 강조하는 부모, 기성세대 아래서 살면 어떻게 될까요? 인륜, 도덕, 배려, 약자에 대한 관심 등을 학습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아이 자신과 부모에게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계획하시는 자녀들의 미래가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 자녀들의 생각을 바꾸고,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모습을 오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본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요? 이 이야기가 그 소년과 이 자리에 있는 규원이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요? 저와 여러분은 어른 맞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영적(靈的) 어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푸른초장 가족 여러분, 그저 미래에 살아갈 하나님 나라를 준비만 하는 오늘로 그쳐서는 안되겠습니다. 비록 작고 부족하지만 오늘 바로 오늘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자고 예수님께서는 요청하고 계십니다. 오늘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소년의 오병이어 도시락과 같이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일지라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드려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 이만 명을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늘 푸른초장영문이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오병이어를 드리는 소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결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년은 갈릴리에 살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과 함께 유대의 랍비나 회당의 선생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한번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 동네 근처를 지나가신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어디론가 가신다는 말과 함께 어른들이 분주하게 따라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소년도 얼른 집에 가서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고, 어머니가 준비해준 도시락을 들고 황급히 집을 나섰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은 소문대로였습니다. 황규홍 사관의 말처럼 어설프거나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삶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길게 말씀을 하셨는데도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해가 져가는 줄도 모르고 말씀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능력을 제게도 조금 주신다면 저도 좋고 여러분은 더 좋으실 텐데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끝나자, 제자 중 안드레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져온 분들이 있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내 것을 드릴까?” 잠시 생각했지만 부끄러웠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어디다 내놔! 다른 어른들이 가져온 좋은 도시락도 많을 텐데 뭘.’ 응답하는 사람이 없자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나요?” 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안드레는 물어보기를 멈추고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 순간 소년은 부끄러움도 잊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기요, 예수님께 제 도시락을 드리고 싶어요!” 소년은 도시락을 안드레에게 내놓았습니다.
안드레에게 소년의 도시락을 전해 받으신 예수님은 도시락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고 기도하시더니, 이윽고 2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 도시락을 나누어 주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움과 충격이었습니다. 그 순간 소년은 생명의 떡이신 주님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이 사건은 소년의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후 소년은 도시락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 시간, 공부, 용돈, 아니 인생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주님을 따르는 용감한 제자가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푸른초장 가족 여러분, 소년에게만 이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 교회를 역사를 보십시오.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고 가진 것이 적다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런 기적을 숱하게 경험해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변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보잘것없는 소년의 도시락 같은 내 삶을 예수님께 드리면 됩니다. 나를 그분께 던지면 그분은 나를 통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가십니다.스스로에게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생의 떡이 되시는 주님을 위해 오늘 내놓아야 할 우리의 도시락은 무엇입니까? 만유(萬有)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서는 어떤 것이든 작고 보잘 것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망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결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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