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홍사관 설교

  • 생명의 말씀 >
  • 황규홍사관 설교
왜 몰랐을까요?
황규홍 2019-10-09 추천 0 댓글 0 조회 477
[성경본문] 요한복음3:1-15 개역개정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만약에 어떤 사람이 여러분께 크리스천이 되는데 몇 년이나 걸릴까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구세군 군령군율에 따르면 구세군교회에 출석한 지 3개월이면 예비병이 될 수 있습니다. 예비병이 된지 6개월이면 병사가 될 수 있습니다. 병사로 1년 이상 된 구세군인은 사관후보생(사관 헌신자)가 되어 구세군사관학교에 입교할 수 있고, 사관학교 2년 과정을 수료하면 구세군 사관도 될 수 있습니다. 9개월이면 구세군병사(세례교인)이 될 수 있고, 39개월이면 구세군사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도 이 기간을 인정하실까요? 단지 이런 절차적 요인을 충족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구원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중국내지선교회의 창립자 허드슨 테일러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중국 선교를 하고 있을 때 한 중국인 청년이 크리스천이 되는데 몇 년이 필요합니까?”하고 묻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대답하는 대신 램프의 심지가 얼마만큼 타야 빛을 발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청년이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합니다. “그야 심지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라고 말합니다허드슨 테일러가 그 청년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생명의 빛이 그 영혼에 타오르게 된답니다.”

 

허드슨 테일러와 중국인 청년의 대화는 오늘 본문 말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방법, 절차, 과학, 상식 등과 같은 세상의 잣대로 거듭남, 관계, 구원 등의 영적 본질에 접근하려는 중국인 청년과 니고데모와 그들에게 비유를 통해 답을 주시고자하는 예수님과 허드슨 테일러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습니다그런데 어쩌면 이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닐런지요? 우리네 인생은 매번 우리의 수준에서 세상의 잣대로 질문을 하고, 예수님은 매번 하나님나라 수준의 영적 차원의 해답을 주십니다. 오늘은 니고데모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가들이 예수님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라는 존재 때문에 그 사회를 유지해 오던 정치적 종교적 질서가 흔들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특권을 빼앗기게 될까봐서 경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님께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만나러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랍비님 우리 모두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직접 오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3:2). ‘우리 모두라는 표현을 볼 때 니고데모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예수님을 찾은 때가 늦은 밤(Late one night)’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니고데모는 권력자인 자신이 자기들이 사이비 종교 지도자라고 비난하고 있는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해 늦은 밤에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왜 니고데모가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그가 처음 한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랍비님 우리 모두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직접 오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3:1-2)라고 말합니다다시 말해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을 당신이 일으키셨으니 당신은 분명 하나님께 보내심을 입은 선지자일 것입니다. 그러니 제게 진리를 알려 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니고데모의 간청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3) 여러분이 니고데모라면 이 말씀 이해하시겠습니까? 도대체가 맥락을 찾을 수 없는 대답을 하십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면서부터 거듭남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러려니 합니다만, 이런 지식 없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떻게 노인이 다시 태어 날 수 있습니까?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만 딱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One Point Lesson의 대가(大家)이십니다. 나다나엘에게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한마디로 제자를 삼으셨고(1:48),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는 남편 이야기로 여인의 마음을 뒤집으셨습니다(4:18). 또 베드로의 경우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하시더니 그를 제자 삼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에게도 주님은 거듭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이야기하신 이유는, 나다나엘에게는 무화과나무 아래 묵상, 수가성 여인에게는 남편, 베드로에게는 고기잡이를 말씀하셨던 것처럼 니고데모 내면에 자리한 본질적 문제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접촉점으로 거듭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동경대학교 총장이었던 야나이하라 다다오(失刺I忠雄)는 요한복음 주석서에서 보면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 네가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너의 지위와 경력과 연령과 자기 의에 의지하는 바리새인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에 의해 새로 태어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지위, 경력, 연령, 그리고 자기 의지를 버리고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가장 큰 관심사인 지위, 경력, 연령을 언급하심으로 그들 흔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만나서 영생에 대해서 물었을 때(19:16-26)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돈을 문제 삼으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위, 경력, 연령이 아니라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921).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자신이 포기하지 못하는 유일한 것을 건드리며 진리를 이야기하시자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의 삶에서 돈은 이슈가 되지않습니다. 재산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을 테니 버리라고 하면 버리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은 잘 늙는 것입니다. 명예롭고 기품 있게 늙는 것, 양심과 명예를 지키면서 세상과 이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니고데모는 그렇게 살았습니다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유대 민족의 중심 세력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대의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평생 붙들고 지켜 온 가치를 통째로 뒤집어야 하는 요구를 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 나라를 알고 싶으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네가 지금껏 붙들고 있던 것, 네가 명예롭게 생각한 것, 네게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네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신앙이 시작되고 자라납니까? 울타리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그 자리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르심 앞에서 이것만큼은 안 됩니다.’ 하는 생각으로 지켜 온 것들을 내려놓으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푸른초장 가족여러분, 예수님께 내놓기 어려운 것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까워서 못 내놓는 것,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못 내놓는 것, 아프고 슬픈 기억이라서 들추고 싶지 않은 것들, 설마 이런 것 까지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들을 내려놓고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앞에 모두 내어놓고 그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씌워진 죄와 사망의 올무를 벗고, 그것들에 놓임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니고데모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그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들을 내려놓는다고 해도 어린아이와 같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거듭나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니고데모는 다소 유치한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묻습니다. 그 속마음은 이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라는 말입니다. (3:4)


이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너는 다시 나야 한다는 내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3:5-7)  그러고는 아주 알듯말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이와 같다."(3:8)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 말은 엄마 배 속에 다시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고 해서 네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부정하겠느냐?

 

바람을 보아라. 바람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여기까지 불어오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렇더라도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빈 벌판에 서 있을 때 피부를 스치는 감촉을 통해 바람의 존재를 느낀다. 산에 올랐을 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을 알아차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것들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바람처럼 그렇게 , 성령으로 거듭났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성령으로 새로 난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이지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마진영 사관이 좋은 아내라고 설명한다고 해도 마진영 사관과 부부의 관계가 아닌 여러분들이 제 마음을 다 아실 수 있겠습니까? 김영국 부교님이 유수진 부교님을 아무리 자랑해도 그 마음을 제가 다 알 수 있겠습니까성령으로 새로 난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성령을 체험을 하면 그 관계를 압니다. 하지만 성령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하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방법을 묻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방법이 아니라 바람을 비유하여 그 관계, 결과를 설명하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니고데모는 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9).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질책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선생이면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느냐? 내가 세상일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 (3:10,12).

 

비유를 들어 본질을 설명했는데도 이해를 못하는데, 본질만을 설명하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하늘의 것을 직접 설명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나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 사람이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들이 뱀을 보고 믿게 한 것 같이 나도 높이 들려야 한다. 이것은 나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3-16).

 

이 말씀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도 아닌 니고데모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진리를 직접 듣고 니고데모가 이해했을까요? 여전히 이해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3년간 따라다닌 제자들도 이해 못했는데 어떻게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어찌 되었건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그 후 니고데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니고데모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만 니고데모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건 후 니고데모가 두 번 더 등장합니다.

 

한 장면은 요한복음 7:45-52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점점 강해지자 종교 지도자들이 불안해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온 그를 체포하러 사람들을 보냅니다그런데 예수님을 체포하러 간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님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는 말씀에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선지자,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고 경비병들도 큰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곃국 체포하지 않고 돌아와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이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7:46).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책망합니다. “너희도 꼬임에 빠졌느냐? 유대 당국자들과 바리새파 사람 중에 그를 믿는 사람이 있었느냐?”(7:47-48).

 

그때 니고데모가 나서서 예수님을 옹호합니다. “우리의 율법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7:51). 일단 사람의 말을 듣고 판결을 해야 한다는 니고데모의 말에 동료들은 당신도 갈릴리 사람이오? 성경을 찾아보시오.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이 어디 있소?”라고 비아냥거립니다(7:52). 이 이야기만으로 니고데모의 마음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인지, 정의로운 사람이라 원칙을 이야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요한복음 19장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시신을 달라는 요청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내고 예수님의 삶을 지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잔당을 소탕하는데 2차 관심을 두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크리스천을 죽이기 위한 사울의 다멕섹 원정 등의 박해가 벌어집니다. 이처럼 살벌한 상황이었기에 제자들도 전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범하게 아리마대 요셉이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5:43은 요셉의 이런 행동을 당돌히’(boldly)라고 표현합니다.

 

요셉은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이 시신을 요구하고 그 시신을 운반할 때, 니고데모도 동행합니다(19:38-39).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과 알로에를 섞은 향료 34킬로그램을 가져왔습니다니고데모가 몇 년 전에 예수님을 찾아와 우리 모두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3:2)라고 했을 때, ‘우리는 아리마대 요셉을 포함하는 말이었고, 그 둘이 함께 예수님께 관심을 갖고 마음을 나누다가, 니고데모가 대표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니고데모는 지금껏 몰래 예수님을 믿어 오다가 십자가 앞에서 오히려 용기를 냅니다. 제자들은 용기 있게 살다가 그의 죽음 앞에서 겁쟁이가 되거나 배신했는데, 두 사람은 겁쟁이처럼 살다가 예수님의 죽음 이후 용감해진 것입니다.

 

그들이 갑자기 용감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를 충분히 알 길은 없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던 세 사건을 되집어 보면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영적인 이끌림을 받아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제자로 살았을 겁니다. 아리마대사람 요셉도 마찬가지였을 거구요.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의 핍박과 억압 때문에 자신들이 예수님 따른다는 것을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무력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여인 몇 명과 요한을 제외한 모두 도망갔습니다. 니고데모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십자가를 올려다보고 있던 그때 문득 3년 전 그 밤 예수님과 나눈 대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3-15).

 

니고데모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을 3년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는 순간 그 말씀이 이해되었습니다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니고데모 마음속에 왔던 두려움이 씻겨 나갔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더 이상 바리새인이나 공회원이라는 자신의 신분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제자인 것을 숨기고 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니고데모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도 비로소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시신을 요구했고,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발랐습니다. 자신들이 주님의 제자임을 당당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처음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을 만난 후 용기 있는 사람으로 달라져 버렸습니다겁쟁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인가요? 그럼 용기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가요둘 다 아닙니다. 참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잃어도 되는 것은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를 잃을까 봐 자신의 지위를 포기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를 얻고 나서 지위를 내던져 버렸습니다. 러시아정교회 전승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니고데모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의 역사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용기가 생겨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밤에 왔다가 낮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푸른초장 군우 여러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깨달음으로 비로소 변화를 완성하였습니다. 용기가 생겨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후 비로소 용기가 생겼습니다변화되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용기가 있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결한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을 만나서 성결해 지는 겁니다. 온전한 구세군인이 되어서 병사입대를 받고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구세군의 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모습 이대로 예수님을 만나시는 푸른초장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만남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용기있는 신앙인으로 성숙되게 하고, 성결한 구세군의 정병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러한 변화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의 체험되기를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그들은 왜 당황했을까요? 황규홍 2019.10.17 0 410
다음글 고백 따로, 절망 따로 황규홍 2019.10.09 0 379

구세군 푸른초장교회는 2025년 5월 31에 폐교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계속되는 홈피는 20년간 푸른초장교회에서 올린 자료를 보관하고 회원들의 동정과 글을 나누는 모임방 용도로 변경되었습니다.

Copyright © 푸른초장교회모임방.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4
  • Total101,620
  • rss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