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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call)
홍성효 2019-07-22 추천 0 댓글 0 조회 360
[성경본문] 마태복음11:28 개역개정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초 청(Invitation)


κλητὀς(called)나 κλήσις(call)은 부르심이란 용어가 성서에 20회 이상 언급되었는데 καλέο(call, invite, appoint)와 함께 쓰인다. 구약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운명에 관해 사용했으며, 신약에서는 회개, 믿음, 봉사하는 개인의 부르심에 두고 있다.


성서에서 "부르다"는 단어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아들의 선물로 주기 위한 것이다(요 3 : 16-17, 마 11: 28, 눅 4 : 16-17, 계 22 : 17, 사 55 : 1)


복음의 부르심(Gospel Call)은 칼뱅주의 개념으로 Dr. Dick은 하나님의 선택(choice which God)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령의 은혜인 선행적 은총의 단계 (Prevenient Grace)혹은 예비 상태의 은혜(Preliminary States of Grace)로(요 15:19, 요 1:9, 6:44, 롬 1:19, 2:15, 14:17, 롬 5:6, 엡 2:8, 요 6:44, 15:5, 딛 2:11-14) 부르심이다. 복음 선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직접 전하고 있다(롬 10:17, 마 28:19-20).


부르심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죄에 있는 자들이 초기 구원(Initial Salvation) 받을 수 있도록 초청하고(마 9:13, 눅 5:32), 다른 하나는 신자 자신이 범한 자범 죄에서 완전 구원(Full Salvation) 혹은 온전한, 완전 성결(Perfection or Entire Sanctification)함을 받도록 부르신다(롬 12:1-2, 살전 2:13, 4:7-8, 벧전 1:15-16).


사람들이 그리스도 구원의 초청을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으로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부름을 받은 자 또는 택하신 자들이다. 그래서 교회를 부르심을 받은(ecclesia)자들이라고 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관해 언급했다(롬 1:6, 고전 1:24).

구체적으로 연구하려면
https://www.whdl.org/sites/default/files/resource/bruce/9780834127081.pdf
pp.334ff.


하나님은 인간이 그 은혜와 축복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은혜에 참여 시키려는 하나님의 초청을 의미하고, 받아들이는 측은 하나님께 충성과 감격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이 사용한 “부르다”는 동사와 “부르심”이라는 명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시는 부르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초청은 신학적 혹은 전도적 용어로서 기독교의 복음은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은혜는 죄의 용서, 새로운 삶, 평화, 영생 그밖에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복음 전도적 초청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 하라는 호소와 구원 받은 자들이 성결 생활을 하도록 재 결심 시키는 것이다. 즉 이 말은 적극적인 반응의 외적 표현으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규정한다. 실제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반응을 보이라는 온갖 종류의 호소이다.


라의도(Paul A. Rader) 대장은 나이젤 보비(Nigel Bovey) 사관이 저술한 『자비석(The Mercy Seat)』의 서문에서 “설교 시에 우리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되기 위해 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비석으로 초청한다.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곧 바로 새롭게 태어 나도록 돕기 위해서 초청한다.”고 했다.


크리프턴 J. 엘런(Clifton J. Allen)는 “초청은 영혼을 잡기 위한 미사여구가 아니며 보험의 결과를 믿는 미신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통을 확인하는 의식도 아니다. 초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한 주님의 요구이며 주님을 섬기는 특권을 주시기 위한 부르심을 말한다.”라고 했다.


아젤러 S. 데이비스(Ozora S. Davis)는 “복음적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청중들이 메시지에 호응하여 직접 결단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레이턴 포드(Leighton Ford)도 “그리스도에게 나오도록 하는 여러 종류의 초청이 신학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나, 감동적인 음성으로 초청해야 하는 것 만은 확실하다. 인간의 표현을 위해선 이러한 기회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께 향한 내적 결단은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과 같다. 그리고 초청 시에 공개 선언은 다른 편 손에 못을 밖 는 것과 같기에 쉽게 밖으로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 느낌을 표현한다면 억압으로 인도 받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초청이란 적극적인 반응을 외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행위라고 본다.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를 영접 하는 표시로서 자비석 앞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자비석 초청 사역은 이상적이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이 그것을 풀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는 오랜 동안 그 사슬을 풀려고 무척 애쓰고 결심도 하고, 가까운 친구에게 이제 금주를 한다든지, 종교를 믿어야 하겠다든지, 자기 중심에 쌓인 답답한 사연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다 수포로 돌아가고 자기의 생활이 바뀌어 지려면 아무래도 혁명적인 그 무엇이 즉 자비석을 향해 찾아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자비석(mercy-seat)은 자신의 죄, 과오를 깨닫는 자리이며 이 자리에 나와 부복하여 기도하는 일은 공석에서 부끄러울지 모르나 “나”라고 하는 체제에 혁명을 일으키는 일인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구세군 창립자는 회개석(penitent-form)을 “순종의 시련을 겪어야 하는 자리”라고 하면서 구세군이 되게 하려면 “개심자들로 하여금 이 시험을 받게 하라”고 했다. 초청을 받아 자비석에 나와 회개하는 구도자는 생애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거든 전환점이 되도록 기도해야 된다.


회개하는 그 시간이 바로 신생의 기쁨을 얻는 때이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요람이 될 것이다. 용서는 고백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석에서 고백하면 가장 마음이 시원하고 영적으로 품위 있는 개심의 표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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