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Richard Niebuhr가 말하는 복음 선교적 사회주의(Evangelical Socialism)에 비전을 둔 Catherine Booth은 웨슬리의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정신을 강력히 주장했고, William Booth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구원(Salvation in the Slums)에 생애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Karl Marx(1818-1883)와 더불어 공산당 선언을 확립한 경제학자인 Frederick Engels는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의 영문판(1892) 서론에서 당시의 초기 구세군이 초대 교회의 전도 활동을 부활시켜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을 호소하고, 종교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대항하며, 초대 기독교 계급의 저항 주의적 성격의 공동체를 육성하려고 한다. 라고 사회 과학적인
측면에서 언급했다.
그러나 Frederick Coutts(1963-1969)대장은 엥겔스의 구세군에 대한 종교적이며 사회 과학적인 분석에 대하여
첫째 내용은 옳은 표현이고,
둘째 내용은 반 쯤 옳은 표현이며,
셋째와 넷째 내용은 전혀 틀린 내용이라고 비판하고
구세군의 입장을 바로잡아 주었다.
사실 William Booth는 당시 노동자 운동인 인민 헌장 운동(The Charter)에 서명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W. Booth는 노딩햄 웨슬리 예배당(Nottingham Wesleyan Chapel)에서 개심한 후 강렬한 느낌을 체험한 후 새로운 배출구를 찾게 되었다. W. Booth가 1908년 4월 W. T. Stead와 사회주의(Socialism)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할 때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구세 사회주의자(Salvation Socialist)로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구세 사회주의자는 점진적인 사회주의자인Fabian Socialist와는 다른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지요.”라고 한 내용이 매일 신문(The Daily Chronicle)에 기재되었다.
당시 역사가들은 Booth가 이끄는 구세군이 사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부스 처음부터 스스로 경제주의자나, 사회학자라고 주장한 적은 없고, 끝까지 복음 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오직 온전한 영혼 구원(full salvation)을 위해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전통적인 교회의 기능을 갱신해 진지하게 영혼에 대한 관심(concern for the souls of the people)을 다시 찾으려는 영적 개혁운동을 벌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보편적 교회의 복음 선교 기능을 넘어서 요즘에 재발견된 선교의 개념인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되어 갔다.
Booth는 복음 전도를 위한 사회사업(Evangelical Social Work) 즉 세상 속에서 죄악과 빈곤과 나태로 인한 잃은 양을 찾아 권면하고, 그들이 세상 속에서 처해있는 육체적, 물질적 난관을 극복하여 인간화 시킨 후 영혼을 구원 시키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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