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초장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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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손연숙 2006-12-19 추천 1 댓글 0 조회 320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생존하고 있는  한 세대속에서 이루어지는 재미있는, 그리고  때로는 씁슬한 일들을 가끔씩 생각해 보곤 합니다.

1950년대, 충청남도 예산의 어느 작은 마을, 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커다란 멍으로 남았던 때였습니다.

집이 먼 아이들은 멀리는 4Km가 넘는 거리에서  작은 산등성을 넘고 맨발로 시내를 건너면서 검은 무명 보자기에 달랑 국어책, 산수책, 사회생활, 음악등 그날의 시간표에 따른 교과서 몇권과 공책 몇권, 필통도 없는 몽당연필 몇자루 둘둘 말아서 등짝에 대각선으로  질끈 묶고 등교길에 나서곤 했습니다. 

여름철 장마로  냇물이 불어나면 어떤 땐 가슴을 지나  목에까지 차오는 물속을 건너며 그야말로 목숨을 건 대 장정의 코스로 찾아 오는 등교길이었습니다.

그리곤 하루 종일 젖은 몸으로 수업을 받던 내 어릴 적 친구들과 그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시켰던 강심장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계속 비가 오면 아예 공부를 접고 일찍 귀가를 시키기도 했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또 신이납니다. 이렇게 1년을 끝내면서 받는 개근상은 어느 우등생의 우등상 보다도 더 빛나는 상장이곤 했으며, 그런 상은 유난히 물을 건너 목숨을 걸고 학교에 다닌 친구들이 차지했던,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여름철, 따끈따끈한 햇볕속에서 조회를 할라치면 여기저기서 소리도 없이 퍽퍽 쓰러지는 아이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1950년대 말, 내가 중학생 시절에 가장 많았던 기억입니다.

처음엔 얼굴이 노오래지면서 픽 쓰러지는 친구를 보며 겁이나기도 했습니다만, 곧 바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업혀 시원한 그늘로 들어가는 친구를 보면서 은근히 그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생긴 일사병이라는 현상이었습니다.

 

또 겨울철의 기억은 초등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학교에서는 가끔씩 신체검사라는 행사를 가지곤 했습니다. 우리들로서는 결코 기쁘지 않은 행사였지요. 머리검사, 손톱검사. 이빨검사 복장검사등등.

그 중에서도 손 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손을 내밀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손등에 덕지덕지 덮인 때를 감추느라 짧은 교복 소매를 있는 껏 잡아다립니다. 그러나 그걸 모르실 선생님들이 아닙니다. 한 손에 든 회초리 끝으로  선생님들은 소매끝을 부추겨 올립니다. 겨우내 닦지못한채, 찬 바람과 진흙에 뒹구느라 철갑처럼 때를 얹은 아이들의 손등이 거북이등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얼어붙은 논밭에서 썰매를지치고, 자치기를 하며 그야말로 신나게 놀아제낀 남자 아이들의 손등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입니다. 그 때 선생님들은 어떤 기준으로 신체검사를 하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입니다. 여자 아이들은 조금 덜했던 것 같습니다. 

손등에 들러 붙은  까만때가 창피해서 돌멩이로 손등을 문질러 때를 벗겨내려 애쓴 표적을 들키기도 합니다.여기저기에 배어있는 피자욱이 이를 증명하니까요.

 

속옷 한벌 제대로 입지못한채, 살을 에는 찬 바람과 맞서 싸우며 너무나 순진한 소년기를 보내던 우리들의 먼 옛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뒹굴던 우리들이 지금은 환갑을 훨씬 넘어 머리에 허연 서리를 인 노인들이 되어 전 세계 여러곳에서 오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자, 정자, 지섭이, 정혜, 혜숙이 가끔씩 한국에서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멀리 지구 반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건 약과입니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나를 괴롭히고 짓궂게 굴던 동네 남자친구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 쌕쌕거리며 뒤쫓게하던 귀엽던 그 얼굴이 지금 내 생각속을 마구 뛰어 다닙니다. 그 시절엔관심을 끌고싶고, 호감이 가는 친구들에게 보인,아이들의 최대한의 표현방식이었으니까요.  

 

영어의 THINK 와 THANK는 한 어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감사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50여년이 훌쩍 넘은 그 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오늘의 내가 누리며 사는 이 최고의 혜택, 거기다가 옛날들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가장 큰 축복인 영원한 셰계를 향한 소망등이 여러가지 생각끝에 내가 내리게 되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하루의 나래를 접으면서 하나님앞과 내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는 보고를 내밀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기다리는 푸른초장교회의 사랑하는 모든 가족들과 우리의 친구들위에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더욱 풍성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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