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바뀌어질 때가 있다. 밤늦게까지 누구를 만난다든지, 어떤 모임이 있다든지 아니면, 흥분될 만한 좋은 일이 내 주위에 있든지 또는 걱정되는 일이 있든지 여하튼 어떤 이유로 든지 자야할 시간을 놓지게 되는 경우이다. 나이가 들면서 너무나 변해 가는 내 자신을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잠에 대한 습관(버릇?) 이다.
내 소녀시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었다. 어쩌면, 밤늦게 자리에 누우면서도 내일 아침에 그 단잠을 깨치고 일어나야 할 생각을 하면 정말 잠들기조차 싫었을 만큼 심각했던 것이 아침기상이었다. 게다가 한결같이 우리 8명의 딸들은 저녁 잠이 없었다. 거기다 한 수 더뜨는 어른이 바로 내 아버지셨다.
하루 종일 환자보고, 약 팔고 11식구 하루세끼 꼬박 밥해 먹고 하려니 내 부모님들의 삶의 고달픔이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는 일하느라고 고달프진 않았어도 많은 형제들 틈에서 한입이라도 맛있는 것 얻어 먹기 위해, 한순간이라도 집에서 빠져나와 뛰어놀기 위해 요리조리 눈치만 늘었던 게 많은 형제들이 함께 자란 그 시절의 일상이었다. 게다가 명색이 맏딸인 나는 정말 마음 놓고 싫컷 놀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 때 제일 재미있었던 놀이로 고무줄뛰기와 오랴, 찡놀이, 그리고 한참 뛰어놀다가 기운이 빠지면 앉아서 하는 땅뺏기 놀이등이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뛰어 놀고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야 마땅하지만, 밤이면 밤대로 우리는 너무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처럼 T.V도 Radio도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하얗게 바래이는 화로불을 다독거리며 들려주시던 달걀귀신 이야기, 떡 팔러간 엄마이야기 등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늦게 잠자리에 가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지옥일 수 밖에........
유난히 우리 식구중에 초저녁 잠이 많았고 아침형 이셨던 엄마는 어둑어둑할 때
저녁을 먹을라치면 밥 수저질도 못하실만큼 졸음이 와서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은채 꾸벅꾸벅 졸으시곤 했다. 그럴라치면 아버지는' 얼라리 꼴라리'로 리듬을 맞추시며 딸들과 함께 졸고 있는 엄마를 놀리시곤 했고,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졸으실까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졸고있는 엄마가 이상스럽게 느껴지던 철부지 아이였다. 그리고는 몇 시간동안의 정적을 깨고 아침이되면 우리 집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마친 엄마의 사명은 식구들 두드려 일으키기였다. 아버지로 부터 시작하여 자그마치 갓난이인 막내까지 여기저기 널부러져 죽은 듯이 잠든 딸들을 깨우는 엄마의 몸둥이와 목소리는 가히 전쟁터의 용사를 방불케 한다. 더구나 동생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눈을 떠야 하는 내게 엄마의 그 모습은 정말 미운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던 내가 이제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가지 좋은 건 있다.
새벽기도를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결론이다.
젊었을 적, 미국의 나성에서, 시카고에서 그리고 디트로이트에서 개척사관으로 일할 때, 원래 부지런한 성격의 나의 남편인 김민제 사관은 영문을 시작하자 마자 새벽기도부터 드리자고 들먹였다. 교인 한 사람도 없는데 누가 새벽기도엘 나오겠는가! 결국 이는 나를 잡을 생각이 아닌가! 나성에서는 기존의 교인들이 몇분 있었고 처음 맡은 영문이라 하는대로 따랐었지만, 1988년 시카고에선 얘기가 좀 달랐다. 그 때도 새벽기도를 바로 시작하자고 할 것 같아서 미리 선수를 쳤다. 제발 금방 새벽기도 시작하지말고 교인 10명만 되면 하자고, 아니면 추운 겨울만 지나면 하자고, (우리가 부임한 때가 11월이었으니까) 생각하면 나도 그렇게 꾀쟁이는 아닌데 워낙 우직한 사람하고 살다보니 나는 꾀만 파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쨌든 언제부터인가 나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카고에서도 많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1995년 떠나기까지 10여명의 교인들이 함께 모여 꾸준히 새벽기도를 드렸었고 그 기도의 소리가 있었음인지 지금은 시카고영문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구세군교회로 부흥하게 하셨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김민제 사관님은 생김새와는 달리 별로 잠이 많지 않은 체질이다. 그리고 좀처럼 졸고있는 것을 볼 수없다. 그저 그의 말대로 신호가 오면 바로 침대에 들어가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그야 말로 딴 세상 인물이 되어버리는 사람이다.
지금 나의 취침시간은 정상이면 저녁 10시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 5시 전후가 된다. 물론 중간에 한번 씩 깨기는 하지만...... 어쩌다 한번 씩 잠자는시간을 놓지는 날이면 오랜동안 시간의 구애없이 깨어있기도 한다. 그때가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있기를 원하시는 시간임을 인지하게 하셨기에....
그리고 은퇴한 것에 감사한다. 그 다음날, 출근하기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 잠을 즐길수 있는 여유가 내게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의 모든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축복받은 사람인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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