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초장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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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관절염
손연숙 2009-12-06 추천 1 댓글 0 조회 348

XXX 신경외과 물리치료실, 거의 30여개의 1인용 침대가 병원용 커튼으로 가리워진 채, 여기저기서 치료기계의 작동소리와 부지런히 환자들을 돌보는 물리치료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첫번째 단계인 20분간의 찜질시간, 무릎에 전해지는 온기를 받으며 하나님을 향한 독백이 시작된다.

 

1944년, 일찌기 넓은 대륙의 꿈을 안고 만주로 이주하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나도 그곳(지금의 심양) 에서 고고의 울음을 터뜨렸다. 1950년대초, 한국전쟁의 와중속에 온 식구가 북한을 거쳐 남하하면서 어린나이인 내가 겪었던 전쟁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고통으로 아직까지 내 머리속에 남아있다.

아무것도 모른채, 간간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데도 그리 힘들었는데 어른들은 어땠을까? 나이가 들면서 아직도 생생하게 그 기억을 간직하고 계신 엄마와 옛이야기를 나눌때면 어느새 나도 60이 넘은 노년이 되어있음을 새삼 실감하곤 한다. 엄마는 늘 내게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쪼그만게 어찌도 그렇게 걸음을  잘걸었는지" 지금도 기특한 마음이 드시는듯했다. 유난히 몸이 약하고 병치례를 했던 3살배기 내 바로밑의 동생을 짐보따리를 지고 가는 지겟군의 지게 꼭대기에 올려놓고, 막 돌을지난 3째동생을 등에업고 보따리 보따리를 안고 지고 넘어 온 피난길은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내 나이 6살에 하루에 80리정도를 어른들과 같이 걸었다고 하신다.(물론 조금씩은 에누리가 붙었었겠지).

그러나 군소리없이 그 힘든길을 걷던 어린딸에게 고마웠던 마음을 표현하시는 엄마의 말씀을 들을때마다. 내 자신에게 자랑스러웠던 마음이 들곤했었다. 

 

한 20여분 동안 가리워진 커튼속에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어린때부터 지금까지 6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나는 너무나 건강한 다리로 무엇이든, 어디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했고, 가고싶은곳을 갔으며, 가야할 곳을 아무 문제없이 다녔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나, 방과후 집근처에서 신나게 놀던 고무줄 놀이, 술래잡기를 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골목길, 한쪽발로 기왓장을 밀던 오랴 놀이등, 한시도 쉬지않고 뛰놀던 내 다리였다.

 

고등학교때는 예산 읍내의 이모집에서 역전에 있는 예산여고의 약 5리가 넘는 뚝방길을 3년간 매일 하루에 4키로미터씩 통학하며 풋풋한 꿈을 키우며 예쁜다리를 소원했던 때가 있었고, 서울로 올라온 1960년대 후반, 지금의 신정동에 한의원을 차리신 부모님과 함께 영등포영문에 우리 모두의 신앙의 짐 보따리를 풀었고 영등포 역 앞 영문에서 신정동까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거리를 정신없이 걸어다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뜻하심과 계획하심 가운데 주일학교  교사로, 찬양대로 봉사하면서 사관학교에 입교하기까지 매일 족히 4킬로가 넘는 거리를 새벽기도로 부터, 주일날은 하루에 두번, 혹은 3번씩을 그 먼길을 달려 예배에 참석했었다. 겨울엔 내뿜는 콧김이 얼음이 되어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아야 숨을 쉴수 있을 정도의 혹독한 추위가 으르렁댔었다. 그래도 마음속에 얼마나 뜨거운 감사가 있었는지! 하루에 거의 5-60리를 걸어 주일을 지내고 자리에 누우면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속에 잠속으로 빠져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많은 걸음을 걷게하신, 튼튼한 뼈와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는데, 이제 아픈 무릎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으며 이제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게 된다.

X-ray 필름을 보면서 의시가 말한다. " 퇴행성 관절염의 시작단계입니다. 심한경우는 아니고요. 그러나 절대 낫는병은 아닙니다. 다만, 조심하면 좀 낳아지고 무리하면 나빠지는거죠."  분수도 없이 나이를 느끼지 못했던 이 60대 철부지가 나를 볼 수있는 시간을 갖게된 것이다.  

오늘 아침, 하나님을 향하여 그 동안 내게 건강한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뒤늦은 감사를 돌려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 하나님,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다리가 아프면 아픈대로 조심하면서 주님 부르실때 까지 살겠고요. 또 하나님이 예쁘게 보셔서 만져주시면 하루 하루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께요. 어쨋든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동안 주위에서 퇴행성 관절염이란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도 귓가로 흘려보냈는데 이제는 길을 가는 내 나이또래의 어머니(?)들의 걸음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또 하나 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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