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맨끝의 제주도에 많은 피해를 입힌 태풍' 나리' 가 이제 그 위세를 꺾고 지나갔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어봅니다. 그리고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고 눈물짓는 우리 이웃들을 생각하며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때에 꼭 한번씩 겪게되는 우리 모두의 아픔을 다시 한번 아픈 마음으로 절감하게 됩니다.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도 청량한 가을하늘이 유난히 파란 오후입니다.
파란 하늘과 누렇게 익어가는 논과 들, 그리고 온갖 벌레와 새떼들의 습격과 방해에도 꿋꿋이 열매를 맺은 탐스런 과일들이 따가운 9월의 태양 아래 자근자근 익어가는 소리가 우리 산하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것 같습니다.
또 한번의 가을을 맞으며, 작년과는 또 다른 감상에 젖어봅니다.
50대 때만 해도 소녀시절, 혹은 젊은 엄마였을 때,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던 날들을 그리움으로 되돌아 보았다면, 지금 60대 중반에 들면서 느끼는 가을은 그 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 젊음의 세월이 너무 오래전이어서 그럴까요?
이제는 오히려 지난 날 보다 이 앞으로 내가 이 땅에 머무는 날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촛점이 맞춰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렇다하게 이루어 놓은 일은 없고, 또 삶의 자리에서 나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음이 날마다 나를 따라 다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은 추석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금촌 기독교 묘지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기시고 육신이 그곳에 묻히신지도 벌써 34년째입니다. 1년에 두번 정도 늘 그리운 마음으로 찾는 아버지 앞에서 올해는 문뜩 얼마 후, 똑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누워있을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작년까지만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잠간의 생각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앞으로 남은 시간을 정말 귀하게 보내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난후에 밀려오는 마음의 평안과 지금까지 나의 삶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삼 놀라운 감사와 흥분으로 내 영혼에 밀려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시골집 마당에 펼쳐널은 빨간색 고추를 보면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안톤슈낙의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많이 흐려지긴했지만, 여러가지 예 중, 시골집 돌담위로 쏟아지는 초추의 양광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그 느낌이 너무도 슬프리만큼 쓸쓸해서 마음이 짜~안 했던 추억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 마음을 정리하는 나자신을 보게됩니다. 그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새 빨간 고추 한알 한알에, 그리고 담장위에서 익어가는 누런 호박의 숨결속에 배어있음을-
그리고 각자 자기만의 모양을 간직하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법칙과 창조주의 위대한 섭리를 숙연한 마음으로 깨닫는 나자신을 말입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마음으로 또 한번의 가을을 맞게 될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 그 방충망사이로 들어 오는 초가을의 바람이 너무도 시원한 오후입니다. 모두에게 풍요하고 감사한 가을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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