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을 울리며 모금을 했던 때는 구세군 사관학교 1학년이었던 1969년 12월이었다. 40년에서 2년이 모자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가히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것 같다. 한국의 겨울이야 북쪽의 추운 나라들에 비하면 그저 견딜만도 하지만, 그래도 추운 동안만은 매섭게 그 본분을 다하고 지나가는 것이 한반도의 겨울이다. 전체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난방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찬 바람을 막아 주는 포근하고 따뜻한 겨울의류들은 물론, 추위와 더위를 잠시라도 잊게해 주는 공공기관의 건물들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 안은 그야말로 계절을 잊은 최고의 쉼터역할도 하는게 요즘의 풍경이다. 1969년 그날도 추위에 수고한다고 자선냄비 기간 동안 정성껏 고아 뽀얗게 우러난 사골국물에 하얀쌀밥을 한 공기 때려넣고 맛있게 먹고 나온 아침이었다. 종로2가 화신백화점 앞, (현 삼성증권건물) 동기생인 유ㅇㅇ 사관학생과 둘이 선 자리였다. 오전인지라 햇살이 퍼지기 전, 빌딩사이로 불어 오는 겨울바람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다같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도 따뜻한 미소로 격려하며 사랑을 넣어 주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고 작은 일이나마 이웃을 위한 사랑의 운동에 참여한다는 사실 하나로 그저 감사하고 열정에 넘쳤던 내 젊은 시절이었다. 유난히도 추위에 약했던 체질인지라 꼬박 두 시간을 견디어 내려니 나중에는 맛있게 먹고 나온 점심이 소화가 안되어 호되게 고생을 한 기억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시카고영문을 개척하면서 자선냄비를 하게 되었다. 알려진대로 시카고의 겨울은 그야말로 세계적이다. 가뜩이나 windy city 라는 별명그대로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 오는 칼바람은 영하40도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 추위에도 자선냄비의 종을 흔드는 사람들은 여유만만하다. 대부분이 shopping center나백화점의 출입구 안쪽에서 의자를 펼쳐놓고 설렁설렁 종을 흔들어 댄다. 차리고 나온 입성이나 모양새가 그리 깨끗하진 못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처럼 자선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구세군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시민들의 참여는 한결같다. 겉모양이나 행사위주가 아닌, 항상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선냄비를 뜨겁게 한다. 그러나 거기도 악대를 동원하면 좀 다르다. 악대원들의 mouth piece가 얼어 붙어 제대로 소리가 안나도 악대들만 나오면 돈을 넣기 위해 줄을 서곤한다. 어쩌면 자선냄비는 12월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는 사랑의 운동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할 때에 밭 모퉁이까지 깡그리 베지 말고 일부러 조금 남겨 두고 땅에 떨어진 이삭도 깨끗이 줍지말고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인생이 이땅에 사는 동안 가난한사람들은 네 주위에 항상 있을 것이니 언제나 그들을 위하여 네 손을 펴라고도 말씀하신 것을 구약에서 볼 수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말씀이다.
올 한해도 함께 나누는 사랑으로 모두가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
추위에 수고하는 모든 봉사자들과 거기에 사랑을 넣는 모든 분들, 그리고 남이 보지않는 곳에서 사랑을 심는 모든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한 이 겨울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댓글0개